1. 공리주의
(1) 정의
공리주의는 행위의 정당성은 그 결과의 좋고 나쁨에 의해 결정된다는 신조이다. 이는 행위의 문제를 목적, 수단의 범주 속에서 파악하고, 그 목적을 행복이나 복지, 실질적 쾌락에 두는 특색을 보여준다. 공리주의는 개인적인 범주를 넘어선 포괄적인 사회적인 기획을 포함한 개념이다. 공리주의는 가장 선진적인 자본주의 체제로의 이행을 완료해 가던 영국의 경험론적 토양에서 발생했다. 자본주의의 윤리학, 사회공학으로서의 공리주의는 이렇게 선취된 권리는 어떤 방식에 따라 조화롭게 향유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대답인 셈이다.
(2) 벤담의 공리주의
공리주의에 고전적인 정식을 제공한 인물은 벤담이다. 그는 인간의 자연적인 경향에 대한 사실적인 판단으로부터 논의를 시작한다. 그에 따르면 쾌락의 추구와 고통의 회피가 인간이 가지는 근본적 동기이기 때문에 모든 인간의 행위는 쾌락에의 욕망과 고통에 대한 반감을 따를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자연필연성을 설명하는 맥락에서 행복의 추구는 그 자체로 정당화되며, 이러한 인간들로 구성된 사회는 타자의 이익을 동시에 고려하면서 개인들이 자신의 행복을 추구 할 때,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산출할 수 있게 된다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개인의 행위와 사회정책은 자신을 포함한 사회전체의 이익과 행복을 얼마나 증진시키는지에 의해 평가되어야 한다.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이 어떻게 사회적 공리와 같은 것을 추구할 수 있느냐의 문제에 대해서 벤담은 사회의 상호적인 제약으로 인해 개인은 타자의 이익을 고려함이 자신에게도 이롭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고 응답한다. 이와 같은 벤담의 논의는 일종의 쾌락과 고통의 양적인 대차대조표로서의 도덕개념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것이 타당하려면 쾌락과 고통이 만인에게 동일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가정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쾌락과 고통을 측정할 수 있는 몇 가지 기준들을 제시함으로써, 그 가정을 당연시 하고 있다는 점을 보일뿐이다. 그는 산업의 분업 체계와 상업상의 교환이란 현실을 바탕으로 자신의 이론을 구성한 듯 한데, 그 현실이란 이질적인 두 물건이 화폐란 추상을 통해 하나의 양으로 환원되는 것이 가능하며, 분업화된 산업에 의해 구성되기 시작한 사회시스템의 각 요소들은 상호적인 제약과 화폐에 의해 추상적으로 동일화된 가치를 통해, 사회적인 부와 자신의 이익을 동시에 실현하기 때문이다.
벤담의 이론은 몇 가지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우선 벤담의 논의는 기술적인 인식과 규범적인 평가 행위를 뒤섞고 있다. 그는 인간의 자연필연적인 경향성을 바탕으로 하나의 윤리적인 정당화를 시도하고 있는 셈인데,사실상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을 뒤섞고 있다. 행복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는 것이 인간 행위의 사실의 문제라면,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추구해야만 한다라고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둘째로 그는 모든 욕망을 동질화시키는 양적 판단을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는데, 그 기준이 되는 내용이 문제될 때 수긍할 만한 대답을 제공하지 못한다. 셋째, 벤담은 각각의 행위를 항상 최대행복을 산출할 수 있게 하는 공평무사한 숙고를 통할 것을 주장하는 셈인데, 이는 역설적으로 인간의 행위에 과도한 짐을 지우는 셈이다.
(3) 밀의 공리주의
밀은 벤담의 공리 또는 최대행복의 원칙을 수용하면서도, 위와 같은 벤담의 난점을 피하고자 한다. 우선 그는 왜 행복은 추구될 만한 것인가에 대한 증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양심에 대한 호소로 가능하다고 전제하면서도, 행복이 그 자체로 가치 있는가를 증명하는 것은, 어떤 대상이 보여 질 수 있는가를 증명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실제로 보는 것이고, 어떤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의 유일한 증명은 사람들이 실제로 그것을 바란다란 맥락에서 증명을 시도한다. 사실 이러한 논증 역시 사실과 가치의 문제를 뒤섞는 것이라 적절히 비판될 수 있는 사항이고, 유해할 수 있는 쾌락도 그렇다면 바람직하다는 것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의문이다. 사실상 여기서의 밀의 관점은 일종의 직관주의적인 통찰을 요구하고 있는 것에 가깝다고 보아야 할 것인데, 그의 이와 같은 관점은 행위의 선택의 문제를 쾌락의 양과 괄ㄴ련하여 언급하는 벤담의 논리에 대해 쾌락의 범주를 정신적인 차원으로까지 확장시키고, 공리의 원리를 질적 쾌락주의로 변형하면서, 쾌락의 양을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 결정할 수 없지만, 어떤 다른 행위를 선택하는 이유를 비교를 통한 질적 차이의 직관을 통한 선호의 문제로 설명하는 것과 맞닿아 있다. 밀의 질적 쾌락주의는 한편으로는 인간의 정신적 실제를 배제한 채, 단순히 육체적이거나 물질적인 쾌락으로 문제를 환원시키는 벤담의 논리에 대한 교정이란 의미를 가지면서도, 그러한 벤담의 논리가 도출할 수 있는 급진주의적인 요소에 대한 제거이기도 하다. 밀의 질적 쾌락주의는 일면 보통선거권의 확대와 그것이 가질 수 있는 우둔한 다수에 의한 현명한 소수의 억압이란 민주주의적 평동의 논리에 대한 경계이기도 한 것이다. 벤담과 밀의 세대가 갖는 미묘한 차이는 또한 벤담이 최대다수의 행복을 위한 적극적인 사회 정책적 개입을 옹호한 반면, 밀의 경우 최대다수의 전제를 수용하면서도 불행의 방지나 감소에 방점을 찍는다. 보다 소극적, 부정적 공리주의의 측면은 자유주의자인 밀이 위치한 시대분위기 속에서 이해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밀은 벤담의 행위 공리주의가 과도한 짐을 지운다는 비판에 대해 규칙공리주의의 입장의 단초를 보여주고 있다. 그에 따르면 공리주의는 모든 인간이 항상 공리주의적 동기에서 행동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행위를 인도해 주는 규칙이 최선의 결과를 낳는 방향으로 제정될 것을 요구한다.
(4) 양적 공리주의와 질적 공리주의의 차이
벤담은 양적 공리주의자이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주장한다. 강아지를 놀리면서 얻는 쾌락이든,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서 얻는 쾌락이든 그 질에는 차이가 없다는 주의이다. 쾌락의 양을 측정하는 방법으로 강도, 지속성, 확실성, 근접성, 다산성, 순수성 그리고 범위의 일곱 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반면 밀은 질적 공리주의자이다. 벤담이 말하는 쾌락에는 동물적, 관능적인 쾌락과 인간적, 지적인 쾌락을 구분하지 않고 양의 차이만을 강조함으로써 인간의 고유한 삶이 양식을 간과하고 있다고 비판되었는데 밀은 바로 이런 점을 수정, 보완함으로써 공리주의를 좀 더 설득력있는 이론으로 발전시켰다. 그는 어떤 종류의 쾌락이 다른 종류의 쾌락보다 더 좋고 더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공리의 원리에 조금도 어긋나지 않는다고 전제하고 쾌락에는 질적인 차이에 따라 고상한 쾌락과 천박한 또는 저급한 쾌락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만족해하는 돼지이기보다는 불만스러워 하는 인간인 편이 더 낫고, 만족해하는 바보보다는 불만족스러워 하는 소크라테스인 편이 더 낫다"고 역설했다.
쾌락에 질적인 차이를 인정함으로써 밀은 벤담의 양적 공리주의 이론에 반감을 갖는 많은 사람들에게 공리주의를 보다 받아들일 만한 것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공리주의의 이론적 난점 하나를 해결한 셈이 되었다. 즉 왜 나 개인만의 쾌락이 아니라 최대 다수의 행복을 추구해야 하느냐라는 물음에 대해 밀은 보다 높은 쾌락 가운데는 남의 행복에 대해서도 쾌락을 느끼는 것이 포함된다고 대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는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록 그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개인에 대한 참된 사랑과 다른 사람들이 행복을 바라는 진지한 관심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쾌락 추구의 원리가 결코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굳게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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