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을 통해 살펴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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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을 통해 살펴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차이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을
통해 살펴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차이
라파엘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와 함께 이탈리아 르네상스 3대 거장이라고 불리는 천제화가 이다. 라파엘로는 아테네 학당이라는 작품을 남겼는데 이 작품은 그리스 철학의 거장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 그리스 철학의 지적인 구조물을 묘사한 것 이다. 영국의 철학자 화이트 헤드는 플 라톤을 두고 플라톤 생후 지난 2000년 간의 철학은 단지 플라톤 철학의 주석이 라고 평하였다. 그만큼 플라톤의 철학은 인류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 외에도 기하학, 수학, 생물학, 화학, 물리학 등 여러분야 에 영향을 끼쳤고 그 의 제자인 알렉산 더는 세계를 정복해 헬레니즘을 창조하 였다. 이렇게 위대한 두 명의 철학자가 사제관계라는 극적인 관계로 만나게 되었다. 플라톤은 아카데미아라는 철학 학당을 운영하였다. 플라톤이 아카데미아의 원장이라면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수석조교쯤 되었을 것이다. 플라톤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애정을 가지고 수제자로 여겼지만, 그 둘의 사상은 극 과 극이었다.
오른쪽 그림을 보면 왼쪽에 머리가 벗겨진 사람이 플라톤이고 그 옆에 젊고 풍채 좋아보이는 사람이 아리스토텔레스 이다. 토론이 막이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두 명은 의견일치를 보지 못하여 계속 토론을 나누며 나오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때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손 위치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플라톤은 손을 하늘 위를 가리키고 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땅을 가리키고 있다. 이 둘은 세상의 진리가 어디에 존재하는가를 두고 논쟁하고 있던 것이다. 플라톤은 손가락으로 하늘 위를 가리키고 있다. 그는 세상에는 두 가지 원리 이원론이 존재한다고 하였는데 그것은 현상세계와 이데야라고 불리는 이상세계로 구분된다. 플라톤은 이데야를 두고 영원불멸의 영원한 세계라고 정의하였고 현실은 단지 이데야의 모방이라고 주장하였다. 즉 플라톤이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것은 바로 이데야이다.
그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은 동굴에 갇힌 죄수와 같다고 보았다. 그들은 육체라는 쇠사슬에 매어있고 이데야라는 태양에서 비춰지는 그림자를 보고 있다. 그림자란 현상세계의 모상으로, 플라톤은 우리가 현실세계에 보고 있는 사물들은 이데야의 모상 즉, 허구의 세계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이러한 허구라는 동굴에서 구원해줄 통치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말하는 통치자는 현상세계의 그림자를 보고 태양의 존재를 인식하는 철학자를 뜻한다. 그는 인간이 머리, 가슴, 배로 나뉘며 머리가 발달한 사람은 철학자 즉, 통치자 가슴이 발달한 사람(용감한 사람)은 군인, 배가 발달한 사람(절제력이 뛰어난 사람)은 농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철학자가 통치자가 되어 공동체를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세상의 진리가 우리가 발을 붙이고 있는 현실세계에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손을 땅으로 향하고 있다 이는 그가 세상의 진리는 현실세계에 존재한다고 주장함을 알 수 있다. 그는 일원론을 주장하였고 4 원인설을 주장하였다. 그는 모든 물질은 형상과 질료로 나뉠 수 있다고 하였는데 형상은 물체의 겉모습이며 질료는 그것이 그것이게 하는 이유 즉, 재료이다. 그리고 물체는 운동인(변화, 작용)에 의해서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현실세계의 사물들이 모두 다른 모습을 하는 이유를 이데야의 모상이기 때문이 아니라 각각의 사물들이 끊임없이 운동을 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마지막으로 ‘현실세계의 물체, 사람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라는 질문을 두고 가능태와 현실태라는 개념을 만들어내었다. 가능태란 모든 목적의 종류로 행동을 일으키게 하는 원인을 뜻한다. 현실태는 가능태가 현실에서 이루어진 상태를 의미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현실태는 현실태인 동시에 가능태라고 얘기한다. 즉 특정한 목적을 이루려는 이유는 그 목적을 이루었을 때 더 고차원적인 목적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예를 들어 철수가 반장이 되고 싶다고 해보자. 그리고 철수가 반장이 되었다고 가장하자. 철수는 반장이 되고 싶다(가능태)를 지니고 반장으로 선출됨으로서(현실태) 목적을 이뤘다. 하지만 철수가 반장이 되고 싶은 궁극적인 이유는 반 아이들의 주목과 사랑을 받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이때 현실태(반장선출)는 현실태인 동시에 가능태(반장이 되어 사랑을 받고 싶음)인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계속 도출해나가다 보면 궁극적인 목적, 즉 완벽한 현실태가 나온다고 보았고 그 현실태를 행복이라도 주장하였다. 즉, 모든 행동의 궁극적인 이유는 행복을 얻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완전태에 다가가기 위해서 완벽한 덕을 실현할 것을 요구하는데 그 덕이 바로 중용이다. 중용은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는 덕을 뜻한다.
플라톤이 이데야론과 철인통치사상에서 보았듯이 그는 정치적 급진주의자이고 과격주의자였다. 이러한 그의 철학은 당대 그리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중우정치에 빠지고 있던 시대적 배경 때문에 등장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플라톤의 사상은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끼쳤지만 그의 사상은 워낙 급진적이라 정치적으로는 별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