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월(木月) 박영종(朴泳鍾)론 - 박목월의 생애 및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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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월(木月) 박영종(朴泳鍾)론 - 박목월의 생애 및 활동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목월(木月) 박영종(朴泳鍾)론
Ⅰ. 박목월의 생애 및 활동(1916~1978)
1916년 1월 6일 경북 고성에서 태어난 그는 경북 경주 월성군 모량이란 마을에서 자라났다. 그의 시에서 자연에 대한 탐구는 집근처의 신라의 고도 경주에서 자라면서 받은 영향으로 생각된다. 목월은 "그 당시에 나는 경주라는 좁고도 너른 지역에서 자연에 몰입하고, 자연의 섭리와 변화를 응시하며,
젊은 날의 슬픔과 고독, 사모를 노래하였고, 그것을 통하여 혼탁한 감정의 승화를 지향하였다"고 밝혔다.
본명은 영종(泳鍾)이며, 소국(素國)이란 아호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의 모친은 열렬한 기독교 신앙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에 입각하여 ‘법도있는 사랑’의 가르침으로 자녀들을 교육시켰다. 목월은 7세 되던 해인 1929년 3월 건천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0년 4월에 어머니의 신앙과 그에 영향을 받은 자신의 희망에 의해 대구에 있는 계성학교에 입학한다.
계성학교 재학 시절인 1932년 16세 때 아동잡지 『아이생활』에 동요를 투고하였고, 1933년 『어린이』에 「통딱딱 통딱딱」이라는 동시를 처음 발표하였으며, 그 해 6월 『신가정』에 「제비맞이」가 당선되면서 본명인 영종으로 정식 동요 시인으로 등단을 하였다.
1934년 겨울방학 때 목월은 동향의 선배인 김동리를 만나 친교를 나누기 시작하고 이후 두 문학인은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문우인 동시에 문학의 열정을 자극하는 일종의 경쟁자 역할을 한다. 동리와 목월의 작품에는 유년시절을 보낸 경주의 향기가 배어있다.
1935년 3월에 계성학교를 졸업한 후, 경주금융조합에 서기로 취직해 있다가 1938년 공주 제일 예배당에서 유익순(劉益順)과 운명적인 결혼을 하였다. 결혼 후 성인시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목월은 아동문학에서 일반적인 시로의 자기 탈피의 동기를 "동시로서는 내적인 충족을 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박목월, 「보라빛 소묘」, 1958, p63
내적 계기는 동시로서는 내적 충족을 기할 수 없기 때문이었고, 외적 계기는 1932년 2월 창간된 지의 출현이었다.
1939년 정지용의 추천으로 『문장』지에 「길처럼」, 「그것은 연륜이다」(9월호), 「산그늘」(12월호)이 추천된다. 그 후, 1939년에 「가을 어스름」, 1940년 「연륜」으로 마지막 추천을 받아 성인 시인으로 문단에 정식 데뷔를 했다. 이때 필명을 목월 목월이 좋아했던 두 시인 중, 수주(樹州) 번영로에게서는 나무 수(樹)자를 나무 목(木)자로 바꾸고
소월(素月) 김정식에게서는 달 월(月)자를 그대로 따서 붙인 이름이다.
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