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월(木月) 박영종(朴泳鍾)론 - 박목월의 생애 & 전통적 자연과 향토적 정서

 1  목월(木月) 박영종(朴泳鍾)론 - 박목월의 생애 & 전통적 자연과 향토적 정서-1
 2  목월(木月) 박영종(朴泳鍾)론 - 박목월의 생애 & 전통적 자연과 향토적 정서-2
 3  목월(木月) 박영종(朴泳鍾)론 - 박목월의 생애 & 전통적 자연과 향토적 정서-3
 4  목월(木月) 박영종(朴泳鍾)론 - 박목월의 생애 & 전통적 자연과 향토적 정서-4
 5  목월(木月) 박영종(朴泳鍾)론 - 박목월의 생애 & 전통적 자연과 향토적 정서-5
 6  목월(木月) 박영종(朴泳鍾)론 - 박목월의 생애 & 전통적 자연과 향토적 정서-6
 7  목월(木月) 박영종(朴泳鍾)론 - 박목월의 생애 & 전통적 자연과 향토적 정서-7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목월(木月) 박영종(朴泳鍾)론 - 박목월의 생애 & 전통적 자연과 향토적 정서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목월(木月) 박영종(朴泳鍾)론
Ⅰ. 박목월의 생애
▷ 출생-성장
박목월은 1916년 경북 경주에서 2남 2녀 중 맏이로 출생하였고 개화의식을 지닌 조부 박훈식과 기독교 신앙을 가진 어머니의 영향을 받으며 자랐다. 그는 건천보통학교, 대구계성중학교를 거친다.
▷ 등단
중학교 재학 시, 본명 영종으로 아동잡지 『아이생활』에 동요를 투고하였고, 1933년 『어린이』에 「통딱딱 통딱딱」이라는 동시를 발표하였으며, 그 해 6월 『신가정』에 「제비맞이」가 당선되면서 정식 동요 시인으로 등단을 하였다. 1935년 중학교를 졸업하고 경주금융조합 서기로 취직해, 1938년 유익순과 결혼했다. 이 후 동시뿐만 아니라 성인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해 목월은 아동문학에서 일반적인 시로의 자기 탈피의 동기를 "동시로서는 내적인 충족을 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라 밝히고 있다. 박목월, 「보라빛 소묘」, 1958, p.63
, 1939년에 정지용의 추천으로『문장』지에 「길처럼」「그것은 연륜이다」(9월),「산그늘」(12월)이 추천된다. 그 후, 1940년에「가을 어스름」,「연륜」으로 마지막 추천을 받아 성인 시인으로 등단된다. 일제 말기에 이르러 1941년에 『문장』,『인문평론』이 폐간되고, 1941년 12월에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시 발표는 중단되고 이때 목월은 자신이 쓴 작품을 땅에 묻어둔다.
▷ 해방 후
목월은 김동리의 권유로 청년문학가협의회에 가입하면서 조지훈, 박두진 등과 교류를 나누게 되고, 1946년 6월에 박목월, 박두진, 조지훈 세 사람의 합동시집 『청록집』을 낸다. 1949년 서울로 집을 옮겨 이화여고 교사와 한국문학가협회의 사무국장으로 바쁘게 활동한다. 이 기간에 박두진, 조지훈과 1950년 6월 『시문학』을 발간하지만, 한국전쟁으로 인해 창간호가 종간호가 된다.
▷ 전후
1955년 12월 첫 개인시집 『산도화』를 간행하였고, 1956년에는 부친이 노환으로 별세하였고, 폐결핵을 앓던 동생이 세상을 하직한다. 이때 서라벌예대와 홍익대에 강사를 나가고 있었으나 수입이 형편없어 경제적 시달림을 받았다. 따라서 출판사에 기획을 해주거나, 많은 수필을 쓰면서 생활비를 벌었는데, 이때 『구름의 서정』(1956),『토요일의 밤하늘』(1958),『여인의 서』(1959) 등의 수필집과 자작시 해설『보라빛 소묘』(1958),『문학강화』(1959) 등을 잇달아 펴냈다. 그러면서 시 창작도 활발히 하여 1959년두 번째 개인시집『난기타』를 발간한다. 1962년 한양대 국문과 교수로 임용되었고, 1964년 세 번째 개인시집『청담』,수필집『행복의 얼굴』을 내기도 했다. 1968년에는 한국시인협회 회장직을 맡게 되면서 후배시인들과 자신의 시집 발간에 힘쓰는데, 이때 많은 목월의 시집이 발간되었고 또 많은 상을 수상했다.
-시집 : 『경상도의 가랑잎』(1968), 『어머니』(연작시집,1968), 『청록집 기타』(청록파,1968)
-시전문지 : 『심상』 (박남수, 김종길, 이형기, 김광림과 함께, 1973) 창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