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 - 나의 경험 - 6학년 - 1 성실한 생활 - 동수의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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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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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
아리스토텔레스는 존재하는 세계에 살고 있는 오직 현재적 삶 밖에 없다고 하였다. 그에 따르면 ‘육체와 영혼이 결합되어 있는 상태를 살아 있다고 하는데 죽음은 이를 분리시키므로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모든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일’이라고 했다. 선과 정의는 바로 지금, 현실세계에서 실현되어야 하므로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주의자라 할 수 있다.
‘무엇이 좋은가?’ 하는 물음에 아리스토텔레스는 각자가 추구하는 욕구가 좋은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어떤 종류의 선을 말하던 간에 만약에 그것을 우리가 받아드릴 수 없다면 그것은 소외된 가치에 불과하며 우리의 삶을 강제적으로 억압하는 것이라고 한다.
모든 행위는 좋은 것을 지향한다. 그때마다 지향하는 것이 우리가 하는 행위의 목적이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행하는 모든 행위는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아무런 목적도 갖지 못하는 행위는 비정상적인 집착에 불과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의 모든 행위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라고 묻고 우리의 삶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목적은 모든 것들 가운데 최고 좋은 것이라고 하면서 그것을 행복이라고 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불행해지길 원하지 않으므로 행복은 보편적으로 추구되는 가치이다. 또한 행복은 그것이 아닌 다른 것을 위해 수단적으로 추구되는 것이 아니며 행복은 그 자체로서 추구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현실주의는 선을 어떤 당위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원천적인 자연적 욕구라고 하였다. 각자가 자신의 행위에서 원하고 바라는 것 그 자체가 좋은 것이며 그것이 선이다. 또한 최고의 선은 당위적으로 강제되는 도덕적 가치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자연적으로 추구하고 욕구하는 행복인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현세적인 욕구와 가치가 어떤 이념적 초월성에 따라 부정될 수 없으며 모든 자연적 욕망이나 욕구는 원칙적으로 긍정할 수 있다고 하였다. 중요한 것은 욕망을 억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있는 다양한 욕구들에게 질서와 통일을 부여하는 일이다. 그는 자연적 욕구에 질서와 통일성을 부여해 삶을 완성시키려 했으며 행복이란 그러한 욕구의 표상이라 하였다.
“대다수 사람들은 행복이 쾌락이나 부, 명예처럼 보이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서로 다른 것을 행복이라 한다. 같은 사람일지라도 때에 따라 다른 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병들었을 땐 건강을, 가난할 땐 부유함을...”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행복이다. 행복을 추상적인 어떤 것으로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행복이 아닌 것을 행복이라고 착각하는 것을 교정하기 위함이다. 즉 무엇이 행복인지 묻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행복은 그 자신에 고유한 일과 기능을 완전히 수행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우리가 자신에게 고유한 일, 자기에게 어울리는 일을 탁월하게 수행하는 상태가 바로 행복이며 그때 느끼는 내면의 희열과 기쁨이야말로 참된 행복에 수반되는 참된 기쁨이자 쾌락이라고 하였고 인간의 참된 행복이 인간에게 본성적으로 고유한 일에서 비롯된다고 하였다. 인간의 고유한 본성을 그는 ‘이성의 능동적 활동’ 이라 한다. 먹고 자는 본능과 감각에 따른 운동은 동물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성은 오직 인간의 영역이며 인간의 행복은 자신에게 주어진 고유한 일을 소질에 맞게 이성적 능력을 완전히 발휘하고 실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성의 능력에도 차이가 있기 마련이므로 참된 행복은 고유의 이성이 탁월하게 발휘되는 그 때 실현된다고 할 수 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덕에 따른 정신적 활동’이라 한다.
인간은 모두 행복을 추구한다. 그러나 모두가 행복을 추구한다고 해서 모두에게 그에 상응하는 행복이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제일 좋은 일이라고 해서 선택한 일도 그렇지 못한 일이 되어버릴 수 있는 것을 보면 항상 좋은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닌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좋고 나쁜 것을 선택함에 있어서 우리가 보여주는 지속적인 경향성을 가리켜 ‘성품’이라고 했다. 이 성품의 탁월함이 ‘윤리적 덕’이다. 항상 좋은 것을 선택하는 성품을 갖는다면 윤리적으로 덕이 있는 사람이며, 나쁜 길로 빠지는 것은 ‘정념’의 영향을 받는다. 정념이란 ‘욕망, 분노, 공포, 태연, 질투, 환희, 사랑, 증오, 동경, 경쟁심, 연민 그리고 일반적으로 쾌락이나 고통을 수반하는 감정’들이다. 우리가 어떤 성품을 갖는가 하는 것은 정념을 어떻게 다스리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정념은 무조건 누른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며 아리스토텔레스도 지극히 자연적인 것으로 보았고 도덕적 판단물이 아니라고 하였다. 정념은 그 자체로 선이나 악이 아니며 그것을 판단하는 명확한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상태 즉 중용을 가장 안정적인 상태라고 하였다.
중용의 상태는 사람마다 다르며 스스로 중용의 길을 걷고 있다는 믿음에도 부족하거나 지나치거나 하다. 도덕적으로 성숙한 인격을 실현하기 위해서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악한지 판단할 수 있는 도덕적 판단력을 길러야 하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을 ‘프로네시스(실천적 지혜)’라고 하였다.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선한 마음씨만을 갖는 것으로 부족하며 그것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실천적 지혜는 추상적 암기를 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법칙을 구체적인 사례에 적용시키는 훈련을 통해서 점차 나아진다. 결국 우리가 올바른 길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성찰을 통해서 삶을 되묻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필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최고의 행복을 정신활동 즉 사유와 관조에서 찾았지만 다른 요소를 배척하진 않았다. 정신적 선, 신체적 선, 외부적 선까지도 필요하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