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리주의 - 이론과 사례 - 교과적용 - 6 나와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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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공리주의
1. 벤담의 양적 공리주의
1) 공리성의 원리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은 그의 최초의 공간 저서인 ‘정부론 단편’의 서문에서 자신의 기본공리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척도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다”라고 천명하였는데 이것을 공리성의 원리 혹은 공리주의라고 한다. 공리성의 원리는 쾌락주의와 최대행복의 원리로 분해될 수 있다.
벤담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자연은 인류를 고통과 쾌락이라는 두 주권자의 지배하에 두어 왔다. 우리들이 무엇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가를 지시하고, 또 우리들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다만 고통과 쾌락뿐이다.”
인간은 심리적으로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구하게 되어 있으며, 따라서 고통은 유일한 악이고 쾌락은 유일한 선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공리성의 원리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공리성의 원리란 그 이익이 문제되어 있는 사람들의 행복을 증대시키는 것처럼 보이는가, 또는 감소시키는 것처럼 보이는가 하는 경향에 의하여 모든 행위를 시인하고 부인하는 원리를 의미한다.”
쾌락이 유일한 선이라는 쾌락주의는 벤담의 독창적인 사상이 아니고 18세기 영국도덕철학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합의된 공리였다고 한다. 그래서 벤담 자신도 그것을 확신한 나머지 철학적으로 논증하는 것보다 구체적인 사회문제에 적용하는데 관심을 기울였다.
벤담이 말하는 쾌락과 고통이란 어떤 것인가? 쾌락에는 감각의 쾌락, 부의 쾌락, 숙련의 쾌락, 친목의 쾌락, 명성의 쾌락, 권력의 쾌락, 경건의 쾌락, 자비심의 쾌락, 악의의 쾌락, 기억의 쾌락, 상상의 쾌락, 기대의 쾌락, 연상의 쾌락, 고통경감의 쾌락 등이 있으며, 고통에도 거의 유사한 목록이 있다. 벤담은 이러한 여러 가지 종류의 쾌락과 고통의 질적인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경건의 쾌락, 자비심의 쾌락 등의 고등 쾌락과 악의 쾌락 같은 저급 쾌락의 질적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모든 쾌락은 질적으로는 동일하며 단지 양적으로만 다를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벤담의 양적 쾌락공리주의는 후에 밀의 비판을 받게 된다.
벤담은 여기서 두 가지 명제를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첫째, 심리적으로 인간의 모든 행동의 원인은 쾌락추구와 고통회피로 환원될 수 있다는 명제이다. 둘째, 첫째 명제로부터 바로 고통이 유일한 악이요 쾌락은 유일한 선이라는 가치판단을 도출한다. 벤담은 첫째 명제를 당연시하여 이 심리법칙의 지배를 받지 않는 예외적인 존재는 없다고 단정하였다. 만일 이 주장이 심리적 이기주의를 의미한다면 규범윤리학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지 의문의 소지가 있다. 왜냐하면 이기적으로 밖에 행동할 수 없는 인간이라면 이들에게 윤리적 행동을 요구하는 것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또한 공리주의 심리학은 경험적 증거에 의해 보강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사실판단으로부터 가치판단을 도출하는 것은 소위 ‘자연주의적 오류’에 관계된다.
공리성의 원리는 단순히 개인의 행복만이 아니라 고려되는 당사자 전체의 행복의 증진에 관련되어 있다. “어떤 행위가 사회의 행복을 증대시키는 경향이 그것을 감소시키는 경향보다도 큰 경우에는 그 행위는 (사회전체에 대하여) 공리성의 원리에, 간단히 말하면, 공리성에 합당하다고 말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서설’에서는 최대행복의 원리가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으나 ‘단편’에 나타나 있는 것을 고려할 때 벤담이 사회의 행복을 극대화시키는 행위를 옳은 행위로 간주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