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과 교육] - 아리스토텔레스
1. 이론의 개괄
먼저 아리스토텔레스 이론에 대한 개괄에 들어가기에 앞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종종 그의 대극이라 일컬어지는 플라톤의 철학과 대비시켜 보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에 비하여 감각적이고 경험적인 지식을 훨씬 더 중요시 하였다. 따라서 플라톤이 이상주의라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주의로, 플라톤의 신비주의적인 선의 형상 이론을 거부하고 우리가 현실의 구체적인 삶을 살면서 도달할 수 있는가를 탐구했다. 이는 라파엘로가 프레스코 기법으로 로마 바티칸 궁 서명실에 그린 벽화인 아테네 학당에도 잘 표현되어 있는데, 중앙에 있는 왼쪽 사람이 관념세계를 대표하는 플라톤이고 오른쪽의 파란 옷이 과학과 자연계의 탐구를 상징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이다. 옆구리에 티마이오스(Timaeus) 플라톤의 자연학에 대한 대화편으로서, 《크리티아스》 《헤르모크라테스》를 포함하는 3부작의 첫 부분으로 계획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완성한 저작은 《티마이오스》뿐이다. 주제는 물리학·생물학·천체학 등과 관련된 것이다. 플라톤에게 있어서 우주는 지성에 의해 파악된다. 이것은 우주의 창조 원리가 발견될 수 있음을 의미하고 동시에 우주가 지성적 원리에 의해 창조되었음을 의미한다.
라 쓰인 책을 끼고 있는 플라톤은 이데아에 대해 설명하듯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으며,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윤리학(Eticha)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로서 세계 최초의 체계적인 윤리학서이며, 그의 만년의 가장 원숙한 사색을 나타낸 책이다. 아들 니코마코스가 편집하였기 때문에 니코마코스윤리학이라 불린다. 원리론(제1권∼제3권 5장)과 덕의 현상론(제3권 6장∼제10권)으로 이루어졌다.
이라는 책을 허벅지에 받치고 지상을 가리키며 현실세계를 논변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기본적으로 자신이 속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소유한 윤리적 신념들을 거부하지 않는다. 특히 그는 사회의 윤리적 신념을 철학적으로 명료화함으로써 옹호하고 더 나아가 다시 그런 신념들을 통해서 구성되는 도덕적 세계를 체계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를 보인다. 따라서 어떤 절대적인 도덕적 기준과 그의 연역적 확장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귀납적인 방법론을 취한다고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신중하게 행해진 인간의 모든 행위는 어떤 목적 곧 선을 추구하는 행위이며 그에 다라 움직인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일부 목적은 수단적 목적, 즉 일부 선들은 수단적 (도구적) 선이 되며, 도구적 선들과는 대조적으로 본래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들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어떤 궁극 목적이 존재하는가? 아리스토텔레스는 만일 어떤 궁극 목적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른 모든 욕구들은 공허하고 허무한 것이 되고 말 것이라고 주장하여, 유한소급과 욕구의 연쇄의 제일 끝에 놓이는 유일한 궁극 목적을 “최상의 선” 또는 “행위를 통해서 추구되는 모든 선들 중 최고의 것”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결국 그 궁극 목적이 최고선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최고선이 갖추어야 할 조건은 우리 인간이 오직 그것을 위하여 다른 모든 것을 추구하는 그러한 목적이어야 한다는 것과, 무조건적으로 완전하여야 한다는 것이며, 또 최고선은 자기 충족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은 이 세 가지 조건 모두를 만족시킨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서 행복이란 우리 인간만이 고유하게 지니고 있는 본성을 가장 완벽하게 표현하는 것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세에서 최선의 것을 성취하고 가능한 가장 완전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인간으로서 지니는 수많은 잠재성을 완전히 실현하는 것이 곧 우리의 목표이며 본성적 인간의 선에 도달하는 것이 도덕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최고선으로서의 행복은 쾌락이거나 주관적인 행복과는 동일시 될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 본성의 고유한 측면은 바로 이성에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인간의 기능을 파악하고 이를 통하여 인간의 선은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이성적임에 대한 분석을 필요로 한다. 그는 인간에게는 능동적인 사고와 추론을 담당하는 이성적인 부분과 비이성적인 부분으로 구별하였는데, 결국 인간의 기능은 추론 활동과 이성에 따르는 활동으로 이루어진 이성적 능력을 현실적으로 발휘하는 일과 동일시되며, 행복이 최고선이 되기 위해서 행복은 반드시 활동을 포함하여야만 한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주장한다. 어떤 활동을 함에 있어 탁월함은 덕(arete) 이다. 따라서 각각의 기능은 거기에 알맞은 적절한 덕과 더불어 완전하게 표현될 경우에만 가장 완성된다. 결국 한 인간이 자신의 본성 전체를 모든 측면에서 완전히 발휘하는 것이 최고선이며 이는 지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욕구와 감정의 측면 모두와 관련된다.
행복이 우리 삶의 총체적인 좋은 상태를 표시하는 말이고 선이 각각의 일과 행위가 추구하는 객관적 목적을 뜻하는 것이라면, 덕은 우리의 주관적 태도를 표시하는 말이며, 그것은 우리의 주관적 성품 혹은 성격을 표현한다고 할 수 있다. 좋고 나쁜 것을 선택함에 있어서 우리가 보여주는 지속적인 경향성을 가리켜 성품이라고 부르며, 만일 매사 객관적으로 좋은 것을 선택하는 성품을 가진다면 우리는 윤리적으로 덕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윤리적 삶의 일차적 목표는 꾸준한 훈련을 통해 매사에 좋은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성품을 얻는 일이다. 훌륭한 성품이 습관처럼 굳건해진다면 우리의 덕은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행위와 선택은 정념에 의해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인간은 항상 선할 순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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