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비평론 모든 존재하는 것의 허무 하일지 그는 나에게 지타를 아느냐고 물었다 비평

 1  현대비평론 모든 존재하는 것의 허무 하일지 그는 나에게 지타를 아느냐고 물었다 비평-1
 2  현대비평론 모든 존재하는 것의 허무 하일지 그는 나에게 지타를 아느냐고 물었다 비평-2
 3  현대비평론 모든 존재하는 것의 허무 하일지 그는 나에게 지타를 아느냐고 물었다 비평-3
 4  현대비평론 모든 존재하는 것의 허무 하일지 그는 나에게 지타를 아느냐고 물었다 비평-4
 5  현대비평론 모든 존재하는 것의 허무 하일지 그는 나에게 지타를 아느냐고 물었다 비평-5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현대비평론 모든 존재하는 것의 허무 하일지 그는 나에게 지타를 아느냐고 물었다 비평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현 대 비 평 론
모든 존재하는 것의 허무
-하일지, ‘그는 나에게 지타를 아느냐고 물었다’ 비평-
어둠, 실존적 불안과 은폐
‘너는 어둠 속에 서 있었다.’라는 전언으로 개방되는 글의 초점주체는 ‘너’라는 존재자다. ‘너’의 이름은 글의 초반에 제시되기는 하나, 그저 가끔씩 ‘수(Soo)’(p.18)혹은 ‘자이언트 수’(p.22)로 불릴 뿐이며 대부분은 ‘너’라 지칭된다. 그렇기에 서술주체는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정체성을 드러내는 이름보다는 독자가 ‘수’ 혹은 ‘너’로 인식할 수밖에 없는 자연스러운 장을 형성하면서 한 인간에 대한 규정적 정체성을 흐리고 만다. 특히나 이인칭의 구성은 ‘나’를 드러내지 않고 ‘너’로서 그 초점주체를 독자에게 떠넘기며 진술자는 스스로를 은폐하고자 한다. 스스로를 숨기려는 태도는 ‘예기치 못한 낯선 곳에 온 암담함’(p.15)과 ‘이 예기치 못한 공간 속에 웅크리고 있는 네 온몸에 일어나고 있는 아릿한 미열과 한기, 그런 가운데 느끼는 알 수 없는 암담함’(p.100)의 지속과 연관된다. 곧 은폐에의 시도는 불안과 미궁에 대한 서술주체의 공포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 불안의 양태는 ‘너는 어둠 속에 서 있었다’(p.11)에서 ‘너는 그때 어둠 속에 혼자 서 있었다’(p.100)로, 나중에는 ‘너는 어두운 바닷가 바위 절벽 위에 혼자 서 있었다’(p.191)로 그 존재불안의 지평이 점점 넓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처음에는 어둠을, 그 어둠 속에서 홀로 있는 주체를, 이후에는 어둠속에 홀로 서 있는 공간을 드러내는데 까지 확대하는 것이다. 이 개방은 다름 아닌 어둠의 이미지를 점층적으로 증폭시켜 존재적 불안의 이미지를 상기하는 것이다.
그는 언제나 어둠 속에 있으며 의미 없는 불안감을 지속한다. 그의 삶 전반에 깔린 불안은 결국 지타의 부재, 궁극적으로는 자기존재의 무화에 대한 공포인 것이다. 그렇기에 서술주체의 은폐와 어둠에게 느끼는 공포와 불안은 하이데거적 불안과 같은 맥락이다. 현존재와 세계 사이에 놓인 무를 자각함으로써 느끼는 불안, ‘존재의 비존재’라는 필연적 가능성에 대한 불안. 곧 그의 불안은 실존적이다. 실존적 불안에 따른 그의 허무주의는 극복·초월을 통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내는 니체적인 적극적 니힐리즘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소극적 허무주의를 표방한다. 스스로가 피투된 존재임을 자각하는 현존재적 인물이지만 스스로를 기투하는 삶으로까지 나아가지는 못한 것이다. 결국 소설은 무에 대한 불안을 통해 실존적 의식을 드러내고는 있으나 환멸의 낭만주의에 머무르고 만다.
공간적 중력의 부재
주인공 수에게는 일정한 안식처로서의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산타페, 제주도, 페쩨르부르그, 미네아폴리스, 뉴욕 등 공간의 이동이 활발하게 나타난다. 이는 어느 한 장소에 정착하지 못하는 수의 존재적 불안과 맥을 같이한다. 떠돌아다니며 사는 사람일수록 어쩌면 집이라고 하는 공간에 대한 애착을 더 갖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일수록 그때그때 마음 붙일 곳이 없으면 안될 만큼 더 외로울 테니까. 그러나…오래지 않아 집은 너에게 일상을 요구함으로써 너의 자유를 제한하는 공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급기야는 다시 다른 어떤 곳에 대하여 동경하게 될 것이다.(p.94)라는 문장에서 집이라는 공간은 단순한 너의 습성일 뿐이다.(p.94) 영원한, 절대적으로 고귀한 가치로서가 아니라 결국 변질되고 상실되고야 마는 그저 일상적인 습성일 뿐이기에 그 상실은 당연하다. 이 습성의 상실은 곧 지타를 찾아 헤매는 너, 진정한 사랑의 표본을 찾아나서는 너의 습성과 연결된다. 그러나 이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단순한 습성에 불과하기에 결국 상실되고야 마는 허무한 것이다.
글의 후반부에서 그가 있는 공간-제주도-은 자의적, 의지적인 곳이라기보다 타인에 의해 수동적으로 선택‘된’ 곳이다. 그렇기에 제주도라는 공간 자체에 대해서 ‘몹시 음산’(p.99)함을 느끼고 ‘너로 하여금 이런 곳으로 가도록 종용한…무책임한 처사가 떠올라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p.99)오르기도 한다. 또 호텔 엘리베이터에서의 ‘느닷없이 코피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p.103)한 것과 양의사인 줄 알았으나 ‘뜻밖에도 자신의 가방에서 무수히 많은 침들을 꺼낸’(p.104) 한의사의 등장은 그를 더욱 불안으로 내몬다. 일련의 사건들은 그가 왜 여기에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낳으며, 그가 지금 발 딛고 서있는 공간과 그 사이의 양립 불가능성을 제시한다. 결국 제주도에서 머무르게 된 것은 공허한 지속일 뿐이다. 일반적으로 과거의 경험은 현재의 연장선에서 지속되는데 반해 제주도에서의 삶은 이전의 삶과 완벽한 단절과 불연속성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그의 삶은 그저 바다에 홀로 떠있는, 방향성 없고 무의미한 산책에 지나지 않는다. 포스트모던에 대한 바우만의 철학과 같은 맥락에서, 제주도에서 그의 생활방식은 ‘재핑(zapping)’, 즉 일정한 방향성이나 추구점 없이 리모컨으로 여러 채널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에 불과하다. 인간과 공간, 그 무엇에도 연결되어 있지 않고 기존의 자기 삶과도 불연속적인 공간에서 혼란을 느끼는 그의 삶은 결핍이다. 이전에 사랑했던 여인과 형의 자식이라는 정서적 유대 결핍의 관계인 ‘동준’과 낯선 ‘제주도’라는 장소는 그를 내면적 공허에 빠뜨리고 결국 ‘모든 일과는 대부분 동준이에 의해 주도되었고 너는 다만 그가 하자는 대로 따를 뿐’(p.115) 그 어떤 선택도 하지 않는다. 중력의 부재는 결국 무균형과 혼란을 낳고 결국 스스로를 이방인으로 만들어버린다.
추구대상의 소극적 개방
제목에서부터 호기심을 유발하는 ‘지타’라는 존재는 사실상 텍스트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지타가 어떤 존재인지 설명해주지도, 그렇다고 뚜렷한 암시조차 해주지 않는다. 단지 변해버린 혜숙을 보면서 ‘그때 너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여인, 네가 만났던 지타를 생각’(p.98)하고 정신병원에 들어가는 난희를 보면서 ‘지타!’(p.297)라고 소리치는 일련의 문장들에서 ‘변하지 않는 사랑’ 정도로 두루뭉수리하게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지타’는 단일한 한 존재자라기보다는 어떤 특성을 지닌 존재들의 묶음 다발 정도일 것이다. 글에서는 지속적으로 바다, 파도소리, 갈매기를 내세운다. 그는 언제나 바다를 보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 바다는 일종의 추구대상이다. 그는 끊임없이 미열에 시달리는 그는 한 마리의 갈매기를 본다. 그 새는 고꾸라져 그가 안아 올렸으나 미열이 있는 것을 느끼고 ‘필시 오래 살지는 못할 것’(p.14)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에게 저항하면서 결국 그의 도움으로 하늘로 날아가는 이 갈매기를 보면서 하늘을 나는 것이 얼마나 자유로운 행위인가를 생각하는데, 결국 바다라는 추구대상을 그와 매개해주는 것이 갈매기라는 존재다. 바다와 갈매기는 단순히 배경의 묘사라기보다는 그와 갈매기가 미열에 시달리고 불안한 존재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는 갈매기와 그의 동일시다. 뿐만 아니라 갈매기는 바다로 비유되는 ‘지타’를 보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의 매개물이다. 결국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는 바다에의 추구를 매개해주는 존재이며, 곧 죽을 것이라 생각한 떨어진 갈매기는 지타를 동경하는 자신의 이상, 관념과의 동일시이기에 결국 파괴에 대해 넌지시 암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바다가 지타와 같은 층위에 있다는 것은 난희가 그를 거부했을 때 발에 떨어진 갈매기가 떠올랐다는 점(p.200), 그러나 그녀와 관계를 맺은 뒤 수많은 새의 영상이 그의 눈앞에 일렁이고 그녀의 웃음에 파도소리가 들리(p.206)는 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난희가 그와 가까워질수록 새와 바다의 환영을 보고, 그녀와 멀어질수록 떨어진 새의 모습을 떠올리는 몇몇 장면들에서 그저 풍경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는 바다와 새의 의미발생이 이루어진다. 지타의 의미를 완벽하게 내세우지 않는 이유도, 서술방식이 스스로의 존재를 은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과 관련 있다. 전반적으로 글은 전면에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모든 존재자를 ‘암시’라는 얇은 막을 투과한 뒤에 서술한다. 지타를 바다에 투사하는 행위도 결국 ‘지타에의 추구’가 무화되는 것에 대한 무의식적인 불안에서 비롯된 것이다. 내면의 욕망이 드러나는 것, 더하여 내면의 욕망이 충족되지 못할 것에 대한 공포로 지타를 소멸시키고 바다를 대신 내보내고 있다. 결국 일련의 매개체들은 지타에 대한 이미지적 현현에 다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