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로마시대의 기사
1. 군사적으로 중요성이 크지 않았다.
->로마의 강성을 가져온 군사력의 주력부대는 보병이었다. 2차 포에니 전쟁 기간에 보병의 보병전술이 한계를 드러내, 용병대를 이용하지만 카이사르 시기에 이르러 로마인 출신 기사는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2. 원로원을 제친 경제적인 과실
->당시 로마인들의 부의축적에 관한 사고방식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시 기사의 활동분야는 원로원 귀족들에게 혐오할 만한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영리추구의 행위를 대수롭지 않거나 명예롭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였다. 로마의 귀족들이 영리추구를 전혀 도외시한 것은 아니었지만 대토지의 보유자인 귀족들에게 기사들의 영리활동은 대수롭지 않은 것이었다.
3. ‘푸블리카니’라 불리운 조세징수청부업자
->로마의 팽창에 따라 로마 정부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가 ‘재정’이었다. 이 재정에 관한 업무는 전문적인 실무과 관련되어있을 뿐 아니라 영리추구활동을 명예롭지 않게 여겼던 원로원귀족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직종이었다. 자연히 이런 분야에 진출하게 된 계층이 기사신분이었다.
B. 2차 포에니전쟁 이후
1. 전쟁의 결과 로마는 지중해 세계를 재패하면서 로마에 복속된 속주들이 이들을 위한 상업 금융 활동의 무대가 되었다. 게다가 기원전 218년 제정된 ‘클라우디우스 법’은 원로원 의원들은 토지를 소유하고 경작하는 것 이외에는 상업에 종사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기사들의 성장에 더욱 유리하였다.
2. 한니발과의 전쟁으로 인해 로마의 국고 고갈.
이에 청부업자들은 국고가 채워지면 우선 상환할 것을 조건으로 군량과 기타 군수물자를 제공할 것을 제안하고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군복무를 면제해 줄 것과 운송에 따르는 손실에 대해서는 국가가 책임질 것을 요구하였다. 이 요구는 국가에 의해 받아들여졌다.
3. 이 시기까지 기사는 특별한 정치적인 영향력을 형성하지 못하였다. 이 시기의 로마의 팽창을 낳게 한 동기가 경제적인 것에 있다기 보다 정치적인 것에 있다는 주장이 우세한 상황에서 기사는 정치적으로 독자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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