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리주의 *
- 아이들에게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힘 길러주고자 하는 사명을 가지고..
1. 들어 가기에 앞서
레포트를 적어 내려 가기 전에, 초등학교에서 도덕교육의 실효성과 초등 도덕 교과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 해 보게 되었다. 도덕교육은 다른 수학이나 영어 같은 과목 (문제해결의 답이 떨어진다/정해져있다 고도 볼 수 있는)과는 다르게 우리의 삶/인생 전체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그 목적 또한 아이들에게 지식을 전수하는 것 이외에 아이들에게 도덕적 생활을 내면화 시켜 의도적으로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에 두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도덕 교육은 아이들의 훌륭한 인간 형성에 큰 영향을 주고, 이 때문에 도덕교육은 다른 교과들의 기본이 되고, 주춧돌이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요즘, 입시에 치우친 학교교육이 행해지면서 아이들은 가치혼란을 겪는 것 같다. 산업사회의 발달 이후에 윤리적 통제받지 않은 기술과 지식이 우리의 생활에 혼란을 야기시키고 있다. 예를들어, 생명공학의 발달은 생명윤리라는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과학의 발달이 인간의 존엄성을 침범하는 사례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렇듯 복잡해진 사회에서 다양한 관점이 생겨나고 있고, 옳다고 믿었던 것이 더 이상 옳지 않은 것이 될 수도 있다.
이렇듯 혼란한 사회에서 도덕 교육이야말로 아이들이 흔들리지 않게 방향을 잡아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게 되니, 초등학교에서의 도덕 교육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아동은 백지상태와 같아서 처음부터 어떤 사회적 규칙이나 도덕적 규범을 알지 못하며, 외부세계와 접촉하면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비도덕적 행위에 대하여 규제받았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지는 어떠한 의미와 개념에 대해서는 인식하지 못하며, 아동은 자극제적인 생각을 빨리 흡수하여 그것을 쉽게 바꾸거나 잊어버리지 않는다. 그래서 아동에게 도덕교육은 다른 아동의 발달단계보다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어린 아동에게 올바른 것, 도덕적인 것을 보여주는 것은 올바른 인간, 훌륭한 인간으로 변화에 좋은 것이 되며, 어린 아동에게 나쁜 것을 보여주고 올바르지 않은 것을 보여주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기억된 행동이 일상생활을 하면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초등교육은 모든 교육의 바탕이 된다고 생각한다.‘학교’라는 공간에서‘교사’에게‘교육’을 받는 행위는 본격적인 교육활동이 시작되는 것을 의미하며, 올바른 인간을 목표로 하는 교육은 어떤 교과를 배우든지 그것은‘올바름(善)’을 지향한다. 따라서 도덕적 인간을 길러야 된다는 요구를 받는 도덕교육은 전반적인 교육의 바탕이 되고 특히 초등아동에 있어서는 더욱더 중요한 일이 되는 것 같다.
2. 공리주의
칸트의 의무론과 더불어 가장 큰 호소력을 지니는 규범 윤리학의 체계 중의 하나인 공리주의는 기본적으로 목적론적인 태도를 취한다. 즉 어떤 행위의 결과가 추구하는 목적에 도움이 된다면 그 행위는 옳은 행위이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 행위는 그른 행위이다. 바꾸어 말하면 한 사람이 어떤 행위를 한 결과나 모든 사람이 어떤 행위를 한 결과가 좋다면 그 행위는 옳은 행위가 된다는 것이다. 목적론적인 윤리설에서는 옳고 그름이 좋고 나쁜 결과에 의존한다고 말할 수 있다. 반면에 의무론적인 윤리설에서는 어떤 행위를 옳거나 그르게 만드는 것은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행위 자체의 종류이다. 즉 어떤 행위가 모든 도덕적 행위자가 행해야 하는 의무에 속하는 것일 경우 그 행위는 옳지만 의무에 반하는 것일 경우 그 행위는 그르다. 의무론적인 윤리설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은 칸트의 윤리설이라면 목적론적 윤리설의 전형은 공리주의라 할 수 있다. 공리주의는 19세기의 영국에서 경험론을 배경으로 벤담이나 밀과 같은 철학자들이 등장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철학의 무대에 등장하게 되었다.
공리주의는 한마디로 결과주의 윤리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인간 행위의 궁극적 목적은 (어떤 의미의) 행복이라는 가정에 기초하며, 이런 견해는 쾌락주의라고 한다. 공리주의자는 좋다를 그 무엇이든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가져오는 것으로 정의한다. 이는 최대 행복의 원리(the Greatest Happiness Principle), 혹은 유용성의 원리(Principle of Utility)로 알려져 있다.
공리주의의 입론
- “행위란 그것이 행복을 증진하는 경향에 비례해서 옳으며, 불행을 산출하는 경향에 비례해서 그르다.” 이러한 주장을 가능하게 하는 전제는 첫째, ‘쾌락만이 유일하게 그 자체로서 바람직한 본래의 선이다, 둘째, 행위란 바람직한 본래의 선을 도와주는 경향에 비례해서 옳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으로부터 도출되는 중요한 사실 하나는 행위의 도덕성, 즉 행위의 선악 여부는 그 행위의 결과에 의해서 판정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어떤 행위가 쾌락의 증가나 고통의 감소라는 결과를 낳는다면 그 행위는 선한 행위이다. 반면에 어떤 행위가 고통의 증가와 쾌락의 감소라는 결과를 낳는다면 그 행위는 악한 행위이다. 특히 벤담은 어떤 행위도 그 자체로는 선도 악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즉 결과가 고려되지 않은 행위 자체만으로는 선악을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행위를 구성하는 다른 여러 요소들, 예를 들면 행위의 동기, 결단, 의도 등의 요소 또한 행위의 결과와는 직접 관련되지 않기 때문에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것이라고 벤담은 주장한다. 특히 그는 칸트와 같이 내면적인 심정이나 동기를 도덕성의 기준으로 채택하려는 입장을 단호하게 반대한다. 내면적인 심정과 동기는 결코 확인이 불가능하며 얼마든지 행위자가 자신의 심정이나 동기를 속이는 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행위에 대한 평가는 결국 경험적으로 드러나며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행위의 결과를 통해서 이루어져야만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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