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화론 - 작가의 생애와 작품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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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임화론 - 작가의 생애와 작품활동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임화론
1. 작가의 생애와 작품활동
본명은 임인식(林仁植). 성아(星兒), 임화 · 김철우(金鐵友) · 쌍수대인(雙樹臺人) · 청로(爐) 등의 필명을 썼다. 그는 1908년 10월 13일 서울에서 태어났고 보성중학교 재학 시절에 문학에 흥미를 느껴 시를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보성중학교 5년 시절 집안의 파산, 어머니의 죽음, 새로운 세계에 대한 열망 등으로 학교를 중퇴하고 가출을 하게 된다. 그 후 1926년부터 시와 평론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수려한 외모를 가졌던 그는 이 무렵 친구 윤기정과 함께 영화배우로도 활동했다.
임화라는 필명은 1927년 경부터 계급문학에 관심을 보이며 쓰기 시작했다. 1929년에 시 〈우리 옵바와 화로〉, 〈네거리의 순이〉 등을 발표하여 대표적인 경향파 시인으로 자리를 잡고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을 대표하는 작가로 부상했다.
약 1년 동안 일본 유학을 다녀와 1931년 귀국한 이후로도 참여적인 성향을 대표하는 카프에서 좌파 문학 이론을 생산하고 김기진, 김화산 등을 공격하는 각종 논쟁에 적극 참여하면서 활발히 활동했다. 카프 활동으로 제1차 카프 검거 사건 때 체포되어 수감되기도 했다.
제2차 카프 검거 사건 이후 1935년 자신이 서기장까지 지낸 카프가 강제적으로 해산된 이후 순수 문학으로 전향하는 듯하였으나, 태평양 전쟁 종전 후 조선문학건설본부, 조선문학가동맹 등 좌익 문학 단체에 적극 참여하면서 박헌영에게 매료된 그는 이후 남로당 노선을 걸었다
1947년 두 번째 부인이며 소설가인 지하련과 함께 월북하였고, 1948년 9월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수립에 동참하기도 하였다. 1953년 박헌영, 이강국, 리승엽 등 남로당 수뇌부와 함께 스파이 혐의로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해 총살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상세한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임화는 흰 피부에 수려한 외모로 조선의 루돌프 발렌티노로 불렸다고 하며, 김유영이 연출한 영화 《혼가》(1929)에 주연으로 출연한 적도 있을만큼 다재다능한 인물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초창기에는 임다다라는 필명을 쓰면서 다다이즘 성향을 보였고, 카프 시절에는 마르크스주의에 기반한 ‘이식문학론’을 내세우는 등 외국의 최신 문화 이론을 수입하여 자생적으로 소화하는데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2. 작품경향
제 1기는 처음 발표된 〈무엇 찾니〉(1926)에서 시작하여, 카프 가입 이후 프롤레타리아적 세계관을 번역해 창작을 시도했으나 이를 제대로 된 시 형식 속에 녹여내지 못 했던 시기이다. 이 당시의 발표된 시들은 〈젊은 순라의 편지〉(1928)에 이르는 총 13편의 작품들이며, 여기엔 가출 소년 임화가 노동계급적 세계관에 의탁하기까지 거쳤던 정신적 방황의 흔적들이 감상적 허무주의, 다다이즘,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등으로 표출되고 있다.
제 2기는 1929년에서 1933년까지 쓴 이른바 ‘단편 서사시’들을 포함한 11편의 작품을 발표한 시기이다. 카프 가입 이후 자신을 전투적 프롤레타리아트의 일원으로 조정한 임화는 자신의 삶을 사사로운 감정이나 고민, 불안정한 정서에 탐닉시키지 않고 오로지 민중의 삶과 행복을 위하는 데에 투신하고자 노력한다. 〈네거리의 순이〉, 〈우리 오빠와 화로〉, 〈우산 받은 요꼬하마의 부두〉 등으로 대표되는 이 단편 서사시들은 ‘소설화된 서정시’ 로서 대화를 통해 전개되는 이야기의 서사성과 그 속에 담겨 있는 서정성이 성공적으로 결합되어 이전까지의 경향시들이 지녔던 공식주의를 극복하고 대중화를 이루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제 3기는 카프 2차 검거가 행해진 1934년부터 시작을 중단하기에 이른 1939년까지의 6년 간이다. 이 시기에 임화는 53편의 시들을 창작하는데, 여기에는 당시 점점 더 강대해지고 있던 군국 파시즘(독재적인 전체주의)의 폭압을 카프라는 조직이 해체된 상태에서 오로지 하나의 고립된 존재로서 감당해야만 했던 그의 시련과 힘겨운 고투가 고스란히 담겨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세월〉(1934), 〈적〉(1936), 〈바다의 찬가〉(1937) 등으로 대표되는 이 시기의 시편들은, 그러나 임화가 주창했던 주체의 재건과 낭만 정신이라는 시적 전략이 파시즘의 궁극적 수락으로 귀결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