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어학「원미동 사람들」- 심리 주의적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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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원미동 사람들」- 심리 주의적 비평
처음 이 과제를 받으면서 어떤 작품을 할까? 생각하다가 인터넷 무슨 기사에선가 양귀자를 보고는 그저 대중 소설가로만 알고 있었던 그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궁금해 한번 찾아봤는데 제목만 대충 알고 있었던 이 작품을 몇 페이지 읽고 나서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매우 틀린 면이 이 작가에게 존재하는 것 같아 호기심에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되었다.
제목은 에서의 심리 주의적 비평인데 아마도 전기적 비평과 종합 될 것이다. 이란 작품은 양귀자가 1986년 연작으로 발표하면서 몇 개의 단편이 발표되었고, 1987년 모든 작품을 묶어 이란 책을 내고 다음해 유주현 문학상을 수상한다. 양귀자가 작가의 색깔을 달리하기 전까지 이 작품은 양귀자를 대표했고 지금도 이 작품으로 양귀자를 평가하는 사람이 많을 만큼 그녀의 작가적인 면모를 가장 잘 드러내고 평론에서도 환대를 받았던 작품이 아닌가 한다.
작품을 잠깐 소개하면 서울이 아닌 주변 도시 중 하나인 부천 거기서도 원미동이란 동네와 그곳의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옴니버스식으로 묶었다고 할 수 있겠다. 가장 흔히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는 주변도시 소시민의 삶과 애환 정도랄까? 양귀자는 이런 소시민의 모습을 잘 그려내고 있다.
작품을 다 읽고 나는 그녀의 삶이 더 궁금해졌다.
우선 80년대라면 민주화 항쟁으로 온 나라가 들끓고 있었을 때일 텐데 어떻게 그녀는 다른 작가들과는 이리도 다른 어떻게 보면 잔잔하다고 하기까지 한 아무런 해결책도 투쟁도 눈에 보이는 희망도 없는 것 같은 이런 작품을 쓸 수 있었을까? 그 시절의 누군가가 이 작품을 읽었다면 어쩌면 뭐하는 작가냐라고 까지 이야기 할 수 있을 만큼 어떻게 보면 그 때의 주로 소설을 읽었던 젊은 층들은 특히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작가가 시대를 아예 모른척한 것은 절대 아니다. 슬프게 삶을 바라보고 뭔가 절망 속인 것 같지만 그녀는 그곳에서 반드시 희망을 제시한다. 그러나 그 시절에는 이러한 소설의 강도도 심심할 수 있었단 것이다.
어째서 그녀는 남들처럼 흥분하지 않은 것일까? 거리로 뛰어나가는 것이 아닌 작가는 글로써 투쟁하는 것이었다면 그 시절의 여느 문학처럼 흥분하고 광분하며 마구 민주의식을 고취시켜서 승리를 쟁취하자라고 했어야 그것이 보통 사람인데 그녀는 그렇지 않았다. 그런 항쟁가운데 있는 주인공들도 등장시키긴 하지만 그것이 주된 이야기는 아니며 흥분하지도 목이 터져라 소리치지도 않고 그녀는 아주 차분하게 아파하고 슬퍼하면서 누구나 아무나 볼 수 없는 곳에서 시대의식과 때로는 희망을 찾아낸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양귀자는 6.25 휴전 직후인 1955년에 태어났다. 그 시대상황이라 함은 뭐 이루 말할 것도 없다. 휴전직후 정말 못 먹고 못 입고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라는 것은 입에도 올릴 수 없던 시절이다. 그런 상황에서 그녀의 어린 시절은 보릿고개와 수많은 실직의 인파들을 어린 몸과 마음으로 겪으며 자라야 했다. 더욱 컸던 것은 아버지의 죽음이었다. 차라리 그녀에게 술고래 아버지나 집나간 어머니가 있었다면 그녀의 소설은 좀 달라졌을지 모른다. 더 처절하고 뼈가 시리게 아픈 아픔들과 시대상들을 그리며 세상을 원망할 수도 있었을 것이고 독하게 이겨나가는 그림을 그렸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환경가운데 너무나 큰 상실을 그녀는 경험했다. 상실감. 그것도 죽음이라는 것으로 세상에서 자기를 지켜 줄 가장 큰 울타리를 잃어버린 그 상실감은 어른이라도 견뎌내기 힘든 것이다. 그런데 열 살도 채 되지 않은 그녀가 그러한 상실감을 겪었다. 어떤 밖으로 드러나는 고통과는 차원이 다른 아픔이다. 깊게 아주 깊게 칼을 찔렸지만 그 엄청난 출혈은 안으로만 안으로만 흘러 들어간다고 할까? 그녀는 고통과 아픔을 당하고 그것을 느끼고 이겨내는 방법을 남들과 다르게 독특하게 배워나간 것이다. 남들이 아프면 아프다고 소리치고 고통을 표현하다면 그녀는 그 고통을 마음에서 깎고 삭혀가면서 수만 가지의 생각으로 그리고 깊이로 승화시키고 표출했던 것이다. 결국 남들과 어떤 상황을 받아들이는 이성과 감정의 모든 체계가 다르게 발전했던 것이다. 느끼는 것도 표현방식도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녀가 이러한 아픔만을 경험했다면 어쩌면 그녀는 깊은 우울증으로 발전했을 수도 있고 아예 세상의 아픔 따위는 그저 외면하려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다섯 오빠 밑에 첫딸로 태어났다. 뒤로 여동생도 하나 있으니 일곱 형제라는 대가족 사이에 있었다. 더군다나 위로 오빠만 다섯이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죽음이란 그 상실감을 어느 정도 반감시켜주는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세상가운데 혼자는 아니며 나이차이가 컸을 큰 오빠를 아버지마냥 생각하며 어느 정도의 울타리가 되어주었을 것이다. 실례로 그녀가 대학생 시절을 보면 큰 오빠가 돈을 벌어 거의 모든 동생을 대학까지 뒷바라지 했다. 가정에서 여자라고 무시하며 대학을 보내지 않거나 한 것이 아니라 막내 여동생은 성악까지 전공시킬 정도로 가정에서의 보호와 지원은 꽤 컸다. 동생들을 위해서 오빠들은 휴학을 감행했고 그렇게 서로 배려하는 가운데 생활해 갔다.
그녀의 어린 시절에서 그녀가 소설가로 성장하는데 가장 큰 게기는 독서였다. 그녀의 독서는 대부분 오빠들의 책으로 이루어졌다. 초등학교 내내 그녀는 자신의 시절을 회상하기를 오빠들의 책을 중구난방으로 미친 듯이 읽어댔다고 말한다. 만약 그녀를 지켜주고 보살피는 사랑하는 관계 형성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독서는커녕 오빠들의 뒤치다꺼리로 유년을 회상했을 것이 뻔하다. 철길과 독서와 눈물로 기억되는 그녀의 유년 시절의 기억으로 미루어 보아 그녀는 분명 지켜지는 보호받는 어린 시절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