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학개론 - 삶에 대한 성찰
『 삶에 대한 성찰 』
가. 과거
아버지, 어머니 모두 직장 일 관계로 해외에 나가신 관계로 저의 유년기는 시골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서 보냈다. 할아버지 댁은 전남 고흥으로 고향인 광주와는 꽤나 멀리 떨어진 곳이다. 이제는 폐교가 되어버린 초등학교에 딸려있는 유치원을 졸업하고 7살에 다시 광주로 돌아왔다. 북구에서 버스로 YMCA에 다녔고 1년 뒤, 북구 운암동의 경양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별탈 없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북구 진흥중학교에서 반배치 시험까지 봤으나 집을 서구 풍암동으로 이사하는 바람에 다시 풍암중학교에서 반배치 시험을 봤다. 중학교도 평범하게 지나갔다. 1지망으로 광주인성고를 지망했고 1지망으로 배치되어 광주인성고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리고 광주인성고를 졸업한 지금 공주사대 국어교육과에 입학하였다.
초등학교 시절의 나는 무척이나 활발한 아이였다. 물론 공부를 썩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반장 등의 학급간부를 하는 것을 즐겼고 친구들과 축구 같은 운동을 하는 것도 좋아했다. 늘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떠들썩하게 생활했지만 중학교에 진학할 때 서구로 전학오면서 그같은 생활은 뒤집어졌다. 서구에서 초등학교를 나오지 않아 당연히 나의 초등학교 동창 친구들은 없었다. 당장 교복부터 낯설은 중학교 생활에서 초등학교 동창 친구는 큰 버팀목이 되어주었을 것이나 나에게는 없었다. 물론 중학교에서 친구들을 사귀기도 했지만 시간이 꽤 흐를 때까지 어색함을 지울 수 없었다. 따로 ‘텃세’같은건 없었으나 나혼자라는 강박관념이 나를 소극적으로 만들었고 말 수 도 많이 줄게하였다. 이 같은 환경은 나의 성격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중학교 시절 초기를 힘들게 보냈던 나는 점점 친구들을 사귀고 학교에 적응해 나가면서 다시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만큼 공부에는 소홀해지고 고1 성적만을 보면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 할 정도였다.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고 공부를 시작한 것은 중2 겨울이었다. 350명중 200등에 위치한 나는 단 몇 달의 공부로 100등을 뛰어올랐다. 부모님을 포함해 주위사람들 모두 날 칭찬했다. 하지만 그 뿐 이었다. 나름 공부한다고 했지만 80등 이상을 넘지 못했다. 그 뒤 쭉 100등 내외를 왔다갔다하며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1학년 2학기 반장을 하면서 학교생활을 활발히 시작한다.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만 해도 성적은 신통치 않았지만 수필부문에서 통일부 장관상을 수상하면서 문학에 대한 흥미를 찾은 뜻 깊은 때 였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진짜 공부를 시작한 것은 고2 여름방학 때 부터였다. 그 때 까지만해도 내가 잡은 목표는 좋은 대학이 아니라 단순히 고등학교 기숙사에 들어가는 것 이었다. 광주인성고의 기숙사는 2학년 겨울방학에 입사해서 수능이 끝나고 퇴사하는 시스템을 가졌다. 기숙사에 입사하기 위해서는 문과에서 적어도 20등 정도의 성적을 가져야했다. 기숙사를 목표로 꾸준히 공부했지만 맨 처음에 나온 기숙사명단에 나의 이름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미리 기숙사로 내정되었던 몇몇 친구들이 기숙사 입사를 거부하면서 순서는 차례차례 밀려왔고 내 차례까지 돌아왔다. 기숙사에 입사는 성적향상은 물론 친구 관계도 더욱 두터워 지는 계기가 되었다.
정리해보자면 부모님 품에서 자랄 때부터는 나는 많은 자유를 갖지 못했다. 부모님의 과도한 관심 때문에 무슨 일이든 부담을 가졌고 특히 학교 성적에 관련해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억압’받는 생활이었다. ‘억압’이란 자유롭게 행동하지 못하게 힘으로 억누른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대학 입학 이전의 나의 생활은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학 입학 후 나의 생활은 급격하게 변화했다. 아예 수업이 없는 수요일을 포함한 널널한 시간표와 누구에게도 제재 받지 않는 자취생활은 나에게 너무도 많은 자유를 주었다. 그에 따라 나의 생활은 많은 결단력을 요구하게 되었다.
나. 현재
나는 현재 공주사대 국어교육학과에 진학중이다. 아버지, 어머니 모두 교육자의 길을 걷고 계시고 외가 친척에도 많은 분들이 교편을 잡으셨다. 이 같은 가정환경 나의 교사로서의 적성이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사범대학의 많은 학과 중에서도 국어과를 지망한 것은 일단 ‘흥미’가 많은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적성’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수필을 통해 통일부 장관상을 받고, 교내 문예부를 통해 지속적으로 백일장에 나가면서 몇 개의 상을 수상했다. 이러한 결과를 종합해 볼 때 ‘국어’를 더욱 깊게 공부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학생활은 생각해왔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 대학 새내기의 넘치는 자유는 술, 군것질거리, pc방 등으로 채워져 나갔고 급기야 허망하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강의와 강의사이 시간은 하릴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때우기 일쑤고 대면식, 해오름식, 체육대회 등 여러 과행사는 바쁜 새내기 생활을 더욱 정신없이 만들었다. 이러한 흥청망청한 생활로는 훗날 임용고시라는 벽 앞에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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