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마다 다르게 다가왔던 역사 이야기 - 우리가 놓칠 수 있는 역사적 사실들을 살려보자
우리 집은 아버지는 애월읍, 어머니는 한림읍이라 동쪽 지역에는 우리 가족 모두가 문외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친척들 중에서도 동쪽에 거주하시는 분은 한 분도 계시지 않는다. 따라서 도민임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동쪽 지역은 관광지가 아니면 거의 갈 일이 없었다. 성산일출봉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우도를 지나가다가 몇 번 눈으로 보기만 했을 뿐이었다. 물론 어렸을 때 가본 기억이 어렴풋이나마 남아있기는 하지만, 당시에는 성산일출봉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모르고 갔을 만큼 어린 시절이었다.
가는 날에는 때마침 날씨도 참 좋았다. 최근에 꽤나 추웠었는데, 날씨도 그다지 춥지도 않고 나들이가기에 매우 좋은 날씨였다. 답사를 가는 목적마저 잊게 할 만큼 주변의 자연경관과 날씨는 조화롭게 펼쳐져 있었다.
일상적인 성산일출봉의 관광 코스를 벗어나서, 우리는 성산일출봉의 측면을 돌고, 그 후에는 조천에 있는 항일 기념관을, 그 후에는 모충사를 돌고 저녁을 먹으면서 답사의 모든 일정을 마쳤다.
이 답사를 마치면서 든 생각은, 우연인지 교수님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점점 흥미가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물론 답사를 하면서 점점 피로가 가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초두효과 때문에 점점 흥미가 떨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성산일출봉에서의 날씨가 가장 좋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것이 주된 이유는 아닌 것 같았다. 이 생각들을 한번 정리해 보고 싶었다. 답사를 마치고 나서 밥을 먹고 나서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우선 비슷한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는 성산일출봉의 동굴들(신요부대 터)과 항일 기념관에 대한 차이이다. 두 개의 비슷한 역사적 배경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왜 이렇게 다르게 와닿았을까? 솔직히 말하면, 왜 성산일출봉에서는 흥미를 느끼고 오 할아버지와 전 이장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항일 기념관에서는 왜 해설사분의 이야기를 흘려듣게 됐을까?
나는 이것이 직접경험과 간접경험의 전달 차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우선, 오 할아버지는 실제 그것을 보고 느낀 이야기를 우리에게 직접 생생하게 전달해주었다. 당시의 자그마한 이야기보따리들을 소소하게 하나씩 하나씩 현장을 배경으로 설명해주시니 머리에도 잘 들어오고, 당시의 시대에 대한 감정 이입도 훨씬 쉬웠다. 정말 어느 책에도 나오지 않는 조그마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주셨다.
요카렝(젊은 군인들)들은 훈련을 제외하면 매우 좋은 대우를 받고 생활하였고, 그들이 자주 출입하였던 위안소는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높은 벽이 쳐져 있어서 그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볼 수 없었다는 사실, 또, 전라도에서 탄광기술자들이 내려와서 굴을 파는 동굴작업을 했다는 사실, 당시에 군 복무를 했던 사람들 중 한 명이 다시 돌아와서 마을주민과 조우했다는 사실, 주민과 헌병(헌병과 특경 포함)이 약 1:1의 비율이 되었을 만큼 많은 군인들이 내려와 군인들의 기강을 유지하려 했고, 마을에 군인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사실들은 정말 생생했다. 당시의 배경들을 지금 현 세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배경에 한번 씩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게 되었고, 상상할 수 있었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는 것을 느끼면서 할아버지와 이장님이 그 당시 어떤 느낌이었을 것 인지까지도 상상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것은 예전에 나의 경험도 떠올리게 하였다. 우리 할아버지께서는 일제 강제 징용 대상자였다. 할아버지께서 일제 강점기 당시 징용된 사진을 보여주시면서 당시의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었는데, 그 이야기를 들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이러한 역사적 이야기들은 아마도 우리가 흔히 교과서나 책에서 잘 다루지 않는 역사의 작은 부분이어서 매우 신선했고, 마치 아무도 몰랐던 비밀들을 알게 된 느낌이었다.
아마도 내가 이런 느낌이 들었다는 것은 아마도 나에게 가장 친숙하게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할아버지가 징용이야기를 한 것과 오 할아버지의 증언은 마치 어머니아버지에게 직접 들은 그들의 러브스토리나 청춘이야기가 더욱 더 재미있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친근감이나 뛰어난 접근성을 보여준다면, 역사는 더욱 더 우리 생활 깊은 곳까지 들어올 수 있을 것 이라는 상상을 해보았다.
반면에 항일 기념관에서는 시간자체도 촉박하기는 하였지만, 내용이 크게 와 닿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책으로나 구전으로만 배운 사람이 그것을 다시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다보니 더욱더 깊은 공감을 형성하기가 힘들었던 것 같았다. 해설사분께는 죄송한 이야기지만, 교과서를 줄줄 읽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항일 기념관의 경우 매우 한국의 흔한 역사 전시실이었는데, 당시의 역사를 나타내기 위해 여러 기법들을 사용했다는 것을 알았지만, 제대로 집중할 수 없었다. 내 자신의 태도 문제이기도 하지만, 역사의 생산, 유통 방식의 선택은 역사의 소비를 위해서는 매우 중요한 선택적 요소임을 깨달았다. 이처럼 비슷한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매우 다르게 다가온 것은 나 자신에게도 조금은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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