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 관계의 본질과 교육에 대한 고찰
- 관계의 본질과 교육에 대한 고찰
레옹 베르트에게
이 책을 어른에게 바친 데 대해 어린이들에게 용서를 빈다. 그럴 만한 중대한 이유가 내게는 있다. 이 어른은 이 세상에서 나와 가장 친한 친구인 것이다. 또 다른 이유도 있는데 그것은 이 어른이 모든 걸, 어린이를 위한 책들까지도 모두 이해한다는 점이다. 세 번째 이유는 이 어른이 프랑스에서 살고 있는데 그곳에서 굶주리고 추위에 떨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위로받아야 할 처지에 있다. 이 모든 이유들이 그래도 부족하다면 예전의, 어린 시절의 그에게 이 책을 바치기로 하겠다. 어른들은 누구나 다 처음엔 어린아이였다(그러나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그다지 많지 않다). 따라서 내 헌사를 이렇게 고쳐 쓰련다.
어린 소년이었을 때의 레옹 베르트에게
어린 소년이었을 적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위로받아야 할 처지에 있는 어른에게 바친다. ‘어린 왕자’의 저자인 생텍쥐페리의 헌사이다. 가장 친한 친구에게 자신의 글을 바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책이 시작하는 첫 페이지에 ‘어린 소년이었을 때’라는 구절이 들어가 있는 것은 앞으로 필자가 살펴 볼 책의 내용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주로 저자가 이 글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와 그에 대해 교육이 갖는 바를 비교하여 볼 것이다.
필자에게 ‘어린 왕자’는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현재 갖고 있는 책은 1972년 초판이 발행되었고 후에 중쇄 발행된 것으로, 1999년 초등학교 5학년 때에 선물로 받은 것이다. 혹자는 이 책을 두고 ‘이해할 수 없고 횡설수설하여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 모르겠다.’라고 하거나 ‘그냥 어린이들 읽으라고 쓴 동화책 아니냐.’라고 말하기도 하더라마는, 선물로 받은 그 때부터 지금까지 최소 일년에 한두 차례 읽으며 곱씹어보았던 글이다. ‘어린 왕자’의 매력은 읽을 때마다 그 때의 상황에 맞게 해석이 되어 공감하고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 있다. 그러면 화자와 어린 왕자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필자가 느낀 바를 서술해보겠다.
어른들은 속이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하는 보아 구렁이의 그림들을 집어치우고
차라리 지리, 역사, 계산 그리고 문법 쪽에 관심을 가져 보는 게 좋을 것이라고 충고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여섯 살 적에 화가라는 멋진 직업을 포기해 버렸다.
... 중략 ...
어른들은 언제나 스스로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자주자주 설명을 해주어야 하니 맥 빠지는 노릇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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