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론 김기택의 먼지의 음악
시집의 수많은 시들 중에서 하나를 꼽는 것은 시 속의 의미를 대입해보려고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보는 것만큼 시간이 걸리고 힘든 과정이다. 여러 방편으로 고민을 해봐도 무언가가 애매하고 우유부단해 질 때는 아무래도 약간은 평소보다 멍한 상태로 나아가 보는 것이 정답인지도 모르겠다. 시를 읽을 때도 그러한 느낌이 약간은 들었다. 이 시에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하고 고민하고 읽으면서 시를 골라내려하기 보다는 조금은 무념무상한 상태로 읽어 나가다보면 파격적이거나 굉장히 순수한 시들이 어느새 뇌리에 박혀 기억나곤 했다. 그러면 의미들도 자연스레 이렇지 않을까하고 생각이 들거나 아예 그 시는 의미가 드러나서 있는 그대로 보이곤 했다. 하지만 그렇게 읽어나가도 한 편을 고르는 작업은 어려웠다.
고민 끝에 고른 시는 [먼지의 음악]이었다. 대체로 [바늘구멍 속의 폭풍], 이 시집은 일상생활에 대한 농도 있는 관찰력을 뿌리로 삼은 작품들이 많았는데, [먼지의 음악]은 먼지보다 작은, 공기보다 보이지 않는, 들리지 않는 소음에 대한 역설적인 관찰법을 토대로 하고 있다.
우선, 나는 이 시의 시어들이 너무나도 담백해서 좋았다. 그런 점에서 [구로공단역의 병아리들]이나 [너무 잘 크는 화초 하나]도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일상의 흔한 소리와 시각적 요소들이 묘사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들과 행위들에 대비되는 과정이 유사하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순수의 힘이 맑은 음 열어 잔뿌리들이 마지막까지 움켜쥔 생명을 놓지 않으리라. 하지만 시각적으로 연상되는 과정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관찰한 [먼지의 음악]에서 나는 시적으로 묵은 퀴퀴한 냄새가 더 좋았다. 눈과 귀로 들어오는 자극보다는 작은 먼지의 냄새가 더 자극적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김기택 시인의 필력은 내가 닮고 싶은 것이었다. 아마도 [먼지의 음악]이라는 이 시가 많은 것, 사회적이고 비판적인 것을 많이 담지 않으면서도 사과 껍질에서 당분이 썩는 소리가 야금야금들리듯 아주 감각적이게 무언가를 담아내고 있다. 내가 글로 담아보고 싶었던 시의 모습이라서 [먼지의 음악]이 더 와 닿았던 것이 아닐까 하고도 생각해본다. [먼지의 음악]은 일상생활에 대한 창의적인 관찰력이 시인의 손끝으로 아주 잘 요리된 것 같았다. 지루할 수도 있는 요소들의 나열일지도 모르지만, 살갗이 부서진 비듬 속에서 떨어져 나와 공기의 현으로 옮겨앉는...이란 표현은 지루함을 달래다 못해 또 무엇이 나열될지 기대하게 해준다. 책과 종이의 소리를 떠올리다가 옷과 실의 소리는 어떤 것일까 생각하게 되고, 살과 비듬의 소리에서 비듬의 소리는 어떤 것일까 생각하는 내 자신의 모습이 우스워지면서도 표현의 참신함이 마음에 들었다.
시인은 문장들에 일부러 힘을 주려 하지 않는 것 같다. 무언가를 표출하고 싶고 강하게 주장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작고 세세한 것들로 작은 소음을 만들 듯이 소곤소곤 말하고 있다. 겉은 소소하면서도 그러한 일상적 요소들에 담긴 힘을 시인은 인위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시어들 속의 본디 내재된 힘으로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말하고 싶은 바를 소심하면서도 고집 있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게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진 소음은 먼지들을 움직이고, 그 움직임에서 뽑혀 나온 긴 선율은 내가 지나던 길의 경적이 되고 매연이 되고 격렬한 진동이 되어 결국은 바람이 된다. 시인은 [틈], [바늘구멍 속의 폭풍], [고요한 너무나도 고요한], [한 명의 육체를 위하여]등의 시들에서 보이듯이 틈이라는 시어나 틈처럼 빈 공간의 개념을 자주 사용한다. 공기의 틈을 불순물로 가득 채우듯, 틈을 채우거나 빈 공간을(존재하지 않는, 보이지 않는) 잘 포착해내고 그려내는 것 같다.
저녁 시간으로 넘어가 마치 먼지들이 술에 취해 먼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듯한 모습들. 거리의 오후를 채우던 불순물 같은 많은 질량의 소음들은 점차 작아지고 고요함 속에 흔적도 없던 공기의 현들이 조금씩 아물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고 고요해진 거리의 모습. 이윽고 소음이 모두 가라앉고 즐거운 소리를 내며 녹이 스는 문고리며, 깎아내버린 사과 껍질에서 나는 당분 썪는 소리가 야금야금 들리는 일상의 소박함과 녹이 슬고 썪는 현상마저도 손바닥에 담기듯 아담하고 매력적인 표현이 아닐 수가 없다.
시인의 시들을 읽으며 내 귀는 산만하게 여러 소리들에 귀 기울이게 되고, 수정체는 눈 앞에 보이는 여기저기를 더듬게 되었다. 바늘구멍 속에 폭풍이 일 듯, 비염으로 막힌 후각은 열심히 일상의 냄새를 쫒아가 보았다. 온 몸으로 느껴지는 이 모든 것들을 생각과 손끝으로 표현 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경이로운 과정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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