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애(草涯) 장만영론 - 모성과 동심으로의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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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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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초애(草涯) 장만영론
1. 생애
우선 시대사적으로 볼 때 그는 일제 강점기, 해방, 전란, 4.19 혁명과 5.16 군사쿠데타 등의 험란했던 시기와 이를 통한 다양한 변화를 겪으면서 살아왔던 시인이다.
그에 대하여 조금 더 살펴보면 장만영은 1914년 음력 1월 25일 황해도 연백군 은천면 영천리 87번지에서 부친 장완식과 모친 김숙자 사이에서 3대 독자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공무원으로 자주 집을 비웠으며, 모친은 적지 않은 머슴들을 데리고 양조장을 경영 했다. 이러한 가정 형편으로 장만영은 부친의 영향보다는 모친의 영향을 크게 받으면서 성장하게 되었다. 양조장을 경영하여 집안 형편은 부유하였지만 장만영은 쓸쓸한 유년시절을 보내게 되었다. 모친은 유년시절에 옛날 이야기 같은 것을 들려주었으며, 할머니는 예수를 믿어서 성경에 있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장만영은 어머니와 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문학적 상상력을 키워나갔다. 이러한 편모 아래에서의 성장환경은 장만영의 여성 편향성의 시세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여겨진다.
그의 시작(始作)은 1929년, 16세 때 경성 제2보고(현 경복고) 시절, 같은 학교 선후배인 정현웅, 이시우, 한노단(훗날 삼사문학을 창간) 등과 교내 회람지에 습작시를 발표하면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어렵지 않은 집안환경에서 세계위인전과 여러 잡지 등을 읽게 되고 특히 그 가운데서도 『소녀구락부』, 『영려계』, 『신여원』 등과 같은 여성 잡지를 빠짐없이 읽으며 성장한다. 이 역시도 그의 시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리라 생각된다.
1933년 학교를 졸업하고는 잠시 고향에서 지내게 된다. 신석정과 친교를 맺고 지내던 중 문학 강연회를 듣기 위해 서울을 오르내리며 타고르 인도 시인. 벵골 문예 부흥의 중심이었던 집안 분위기 탓에 일찍부터 시를 썼고 16세에는 첫 시집 《들꽃》을 냈다. 초기 작품은 유미적이었으나 갈수록 현실적이고 종교적인 색채가 강해졌다. 교육 및 독립 운동에도 힘을 쏟았으며, 시집 《기탄잘리》로 1913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등 해외 전원시의 영향을 받게 된다. 1934년 동경으로 건너가 미사키 영어학교(三崎英語學校) 고등과에 입학한다. 그곳에서 주로 문학 서적과 외국 서정시집을 읽게 된다. 그렇지만 1936년 부모의 분부에 못 이겨 학교를 그만 둔 채 귀국하게 된다. 후에 서울로 이향할 때 까지 줄곧 고향에서 지내게 된다.
1938년 고향 생활을 청산하고 상경하여 관수동 22번지에서 어려운 삶을 살아가면서 어려움, 고독, 비애 등의 다양한 체험들을 시화한다. 또한 이때 자신의 연인 순이와 동거를 하게 된다. 이후 몇 번의 연애경험을 말하며 그가 사랑했던 여인들에게 순이라는 애칭을 사용했다고 술회하기도 한다. 1940년 다시 귀향하여 1944년 아버지가 경영하면서 해방이 될 때까지 고향에서 일제의 암흑기를 보내게 된다.
이후 1950년 6.25가 터져 홀로 부산으로 피신하였으며, 종군작가단에 편성되어 서부전선과 적지를 순회하며 전쟁의 상처들을 직접 체험하게 된다. 1953년 종전으로 다시 서울로 돌아와 문학 활동을 하게 된다. 1954년 서울신문사에 입사하여 출판국장을 역임하면서 『신천지』와 학생 문예지 『신문예』 등을 주관한다.
그는 40여 년에 걸친 시작생활을 통해 첫 시집 『양(羊)』에 이어 『축제』, 『유년송』, 『밤의 서정』, 『저녁 종소리』, 『저녁놀 스러지듯이』, 『놀따라 등불따라』를 남겨놓기에 이른다. 이는 1930년대, 한국현대문학의 정초기로부터 60년대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시작활동을 전개한 결과의 적지않은 수확물인 것이다.
또한 그는 자신의 자작시 해설서인 『이정표』를 통해 스스로 자신의 문학수업과 문학의 여정, 그리고 시작(詩作)의 근거를 제시, 자신의 작품에 비교적 쉽게 접근할 계기를 남겨 놓았다.
2. 시적 경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