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 우리가 배워야 할 교사의 자세 -파울로 프레이리의 프레이리의 교사론 기꺼이 가르치려는 이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고
-파울로 프레이리의 『프레이리의 교사론 :
기꺼이 가르치려는 이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고
, 이 책은 프레이리가 가르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10개의 편지가 담겨져 있다.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내용은 학생들의 권리와 교사의 권익과 교육여건의 개선을 위해 교사가 투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프레이리가 들어놓은 예들의 상황을 봤을 때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몇 차례의 대통령 선거를 거치며 민주화가 크게 진전되었고, 정치적 억압이라는 말이 생소한 용어로 바뀌었고 억압과 그 억압에 대항하는 선명한 대립구도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교사들이 투쟁을 해야 하고 교사는 교육을 행하는 일종의 정치가라는 말은 사실 잘 공감이 되지 않는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는 말 같다. 프레이리는 교사는 정치적 중립성을 가져야 한다는 기본 전제는 맞지 않다고 말하지만 사실, 어떤 측면에 보면 맞는 말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사가 정치적인 신념을 가지는 것은 옳다고 본다. 교사도 이 나라의 국민이니까. 하지만 그 정치적인 신념을 학생들에게 드러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교사가 특정 당이나 정치적 성향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 여건의 개선과 학생, 교사의 권익을 위해 싸우는 것을 일종의 ‘정치적 행위’라고 본다면, 교사는 정치적이어야 하나든 말도 맞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프레이리는 가르치는 일은 무엇보다도 전문적인 과업이라고 말한다. 이 전문적인 과업은 끊임없는 지적 엄격성을 필요로 할 뿐 아니라 인식론적 호기심, 사랑할 수 있는 능력, 창의성, 과학적 능력 등을 자극할 수 있어야 하고, 과학적 환원주의를 거부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가르치는 일은 또한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능력을 요구하며, 이런 역량이 없다면 가르치는 일은 무의미한 일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가르침의 문제는 교육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나아가 교육함은 결코 쉽지 않은 과업, 즉 우리들이 앎을 향한 애정 어린 탐험에 참여하도록 만드는 지적 열정을 내포한다. 이런 까닭에 가르치려고 하는 사람들은 정의를 위해 싸우는 성향을 지녀야 하며, 학교에서 좋은 교육조건을 창출하려는 요구를 대변하는 한줄기 서광이어야 함을 강조한다.
프레이리는 네 번째 편지에서 진보적인 교사의 자질 4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겸손이다. 겸손은 결코 자기의 존중감 결여나 비겁함 같은 의미를 함축하는 말이 아니라 자기 확신, 자기와 타인에 대한 존중을 필요로 한다. 겸손은 모든 것을 아는 사람도 없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도 없다는 명백한 진리를 이해하게 해준다. 교육은 우쭐함과 수치심에서 벗어나 겸손함을 가르치는 것이다. 겸손하지 않으면 자신보다 능력이 낮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에게 존경심을 가지고 그들의 말을 들어주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둘째, 사랑이다. 사랑이 없다면 교사들의 활동은 큰 의미를 잃게 되고, 사랑이란 학습자들을 향한 것 뿐 아니라 가르치는 과정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교사와 학습자 사이의 인간적이고 민주적인 상호 소통을 위해 교사에게는 사랑이라는 평범하지만 본질적인 가치가 필요하다. 무장된 사랑이 없다면 쥐꼬리만 한 봉급과 교사들에 대한 홀대 등 정부의 멸시와 모든 부조리 속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셋째, 용기이다. 사랑을 떠받칠 수 있는 가치로 프레이리는 용기를 꼽는다. 용기는 내가 모르는 일을 정복하여야 하기 때문에 두려움을 포함하고 있다. 그 두려움을 껴안고 그것을 이겨낸 상태의 마음이 용기인 것이다. 따라서 두려움 없는 용기는 있을 수 없고, 학습현장에서 교사가 모르는 질문을 학습자가 하였다면 교사는 두려움이 몰려올 것이다. 이때 교사는 어떻게 이야기 하는 것이 교사로서 올바른 것인가, 모르는 것을 아는 척 하면서 학습자들에게 나쁜 영향을 줄 것인지 아니면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것인지를 선택하여야 한다. 여기서 진정한 교사의 모습이란 후자에 대답한 것처럼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교사’야 말고 진정한 용기 인 것이다.
넷째, 관용이다. 관용도 교사에게 요구되는 가치 중의 하나이다. 관용은 우리로 하여금 서로 다른 것에서 배우고 서로 다른 것을 존중하도록 가르친다. 관용이 없다면 어떤 진지한 교육활동도 불가능하며 진정한 민주주의도 경험할 수 없다. 관용은 존중, 절제, 윤리를 요구한다. 아이들의 차이를 인정해야 진정한 교육이 가능하다. 삶이란 저마다 다르기에 하나하나 존재의 차이를 다르게 감지해야 한다. 변화무상한 아이들의 차이를 끈기 잇게 받아들이고 참을 줄 아는 사람이 진보적 교사이며 참을 줄 모르는 교사는 진정한 교사가 아니다.
겸손, 사랑, 용기, 인내 외에도 능력, 결단력, 인내와 조급함, 그리고 말을 절제하는 삶을 통해서 실수나 모순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있건 없건 간에 우리는 행복하고 즐거운 학교를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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