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 아시아 에큐메니칼 운동사 서평
기독교가 개발도상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생각은 수 많은 종교학자들 사이에서 신뢰를 받고 있다. 이러한 생각의 이면에는 기독교가 북구 즉 서양의 종교로 존재해왔다는 가정이 있다. 기독교가 전 세계에 널리 퍼져서 정착하고 그 교리를 떨치는 데에는 다 그만한 장점이 있고 수용될 만한 교리가 있다고 생각되어지는데 서양의 종교로 국한된 것이아닌 제 3세계와 더불어 다른 대륙에까지 떨친다고 생각한다. 다시말해 기독교가 유럽의 종교로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소리다. 서 아시아에서 창시된 기독교는 그 첫 천년 동안 유럽보다는 아시아와 북아프리카에서 더 강력했고, 주후 1400년 이후에야 비로소 유럽과 북미는 결정적으로 “기독교의 고향”이 되었다. 이 설명은 기독교를 나머지 세계 안에 억지로 삽입시킨 백인 혹은 서양 이념으로 보는, 이상하게도 지배적인 견해를 거부한다. 아시아에서 초기 기독교의 역사는 주후 1500년경에 끝이 났다. 그것은 거대한 지리적 시대 위에 현상적 확장으로 인해 초래된, 무거운 부담에도 불과하고, 역동성, 신념, 그리고 영웅적인 노력으로 특징 지워지는 종교역사였다. 아시아에 기독교가 정착해서 현재까지 그 세를 띄는 것은 그만한 보이지않는 노력들과 생활 깊숙이 스며들기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교사들의 실패는 부분적으로 아시아의 역동적인 반발과 아시아인들의 종교적 차원을 이해하지 못한 데 원인이 있다. 맞는 말이다. 유럽이 기독교의 고향으로 불릴 만큼 유럽쪽의 정서로 이해되어지다가 타종교를 믿는 아시아에 스며들기 위해서는 그 이해가 많이 필요했을 것이다. 사소한 부분도 수용되기까지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1938년 12월 마하트마 간디의 방문기간 동안 일부 미국인 교사들은 그가 건설을 돕고 있는 새로운 인도에서 기독교 선교부지는 무엇이 될 것이냐고 질문했다. 그는 대답했다. “인도가 무엇이며 인도가 하고 있는 것을 바르게 인식하도록 하기 위해. 지금까지 그들은 인도와 인도의 위대한 종교들에 대해 야릇한 개념을 가지고 교사와 설교자로 왔다. 우리는 미신적 이교도들로, 아무것도 모르고, 하나님을 부정하는 민족으로 묘사 되어 왔다.” 간디는 기독교출판물과 다른 매체들이 힌두교를 풍자하는 것에 대해 기회 있을 때 마다 그의 불편한 감정을 표현했다. 그는 그것을 그리스도인들의 관용 부족으로 보았고, 그들이 독점을 주장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진리에 대해 이상한 개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으로 보았다. 간디는 아시아적 그리스도의 메시지는 서양에 의해 파괴되었고 로마황제를 지지하는 제국적인 수단으로 축소되었고 그 경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이런 현상에 대해 대응했다. 간디에 대해서는 그저 비폭력무저항운동으로 인도의 운동을 이끈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그의 종교관념과 생각에 대해서 알고보니 인도에 존재하는 다신교 종교에서 신 한명을 추가하는 것 뿐인데 다른 생활 양식의 종교로 간디 또한 받아들이기보다는 생활 양식의 강요가 불편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강압적인 종교 강요도 있었을거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아시아에 기독교가 전파되기까지는 여러 가지 일이 있었겠구나하는 당연한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이제 에큐메니컬 운동이 나오는데 에큐메니컬 에큐메니컬 참 신학생으로 공부하면서 많이 듣는 말인데 이 운동이 정확히 어떤 것을 뜻하는지 잘 몰랐었기 때문에 지금도 그렇지만 이 운동의 중요성을 잘 알지 못했다. 에큐메니칼 운동은 진공 속에서 단순히 자신의 내적 역동성에 의해 발전된 것이 아니다. 역사적,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요소들이 이 운동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에, 갱신을 위해 노력하는 어떠한 시도라도 오늘날 세계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깊은 변화를 고려해야만 한다. M. M. 토마스는 아시아인의 투쟁의 기독교적 요소에 관해 언급하였다. 첫째, “아시아의 투쟁은...사회정의를 위한 투쟁이다. 즉, 현재의 국가, 경제 질서, 사회의 구조를 변화시켜, 가난한 자와 억압받는 자가 사회의 전 영역에 완전히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둘째, 토마스는 아시아인의 투쟁에 나타나는 결정적인 과제는 "현존하는 권력 구조의 변화를 향한 투쟁이며, 그 목적은 가난한 자와 억압받는 자들이 힘의 행사와 결정의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셋째, 토마스는 아시아인의 투쟁을 해석하고 그 방향을 제시할 수 있도록 국가주의 대신에 보다 적절한 이념을 요구하였다. 넷째, 토마스는 야나사크티(민중의 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다섯째, 토마스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아시아적 투쟁에 진정한 특성을 인식시키고, 그들이 세상에서 자신들에게 주어진 삶을 통해 이에 응답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전략을 요구하였다. 아시아 에큐메니컬 운동에 계속해서 정보를 주는 기본적인 신학적 입장을 요약하면, 하나님은 하나님이시지 결코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종교가 기독교라고 하는데 여기서 말한 하나님은 하나님이시지 기독교인이 아니다라 참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지 기독교가 아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일뿐이지 하나님 즉 유일신이신 이 분은 기독교에 얽매여계시지 않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에큐메니컬 운동과 위의 토마스에 대해선 어떤 관계가 있는지 정확히 언급하지 않았지만 아시아의 투쟁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이 운동과 관련있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 같다. 아시아 에큐메니칼 운동이 보여준 신학적 관심을 평가하면서 우리는 운동에 참여하는 기구들이 신학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공간을 만드는 일에 관심을 가졌다는 점을 기억해야만 한다. 실제 작업은 각 기구들의 성격을 형성한 특별한 상황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발전의 대체적인 윤락은 다음과 같이 그려질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비록 아시아 교회의 출현이 교파 교회에 대한 충성심의 표현으로 나타났지만, 교회의 일치는 서구의 교파적 정체성에 매달리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이러한 입장에 대한 기본적인 이유는 아시아 그리스도인은 이런 저런 고백의 신학적 입장을 견지하기 보다는, 오히려 신앙을 고백하도록 부름 받았기 때문이다. 둘째, 비판적인 방법으로 아시아 교회는 아시아 민중과 연대를 천명하도록 요구받았다. "인류 공동체 안에 존재하는 기독교 공동체”라는 주제는 이러한 도전을 표현하고, 민중이 “민족”과 “가장 작은 자”로 이해되도록 응답을 환기시키는 방법이었다. 이 때문에 민족들 사이에 흩어져 살아가는 기독교 공동체는 수적인 약함을 걱정하지 말도록 권고 받았다. 아시아 교회가 아시아 사람들의 충만한 인간성을 향한 투쟁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의 현존을 분별하는 일에 관심을 가졌을 때, 그들은 심판하고 구원하는 그분의 현존을 가리키면서 자신들의 신앙을 고백하였다. 모든 교회가 일치의 부르심에 응답하거나 신앙고백으로 응답하지는 않았지만, 여러 역사적인 위기의 시대마다 소망의 표시로 많은 고백하는 교회가 등장하였다. 셋째, 아시아 신학은 종파주의적 입장을 거부하였고, 서구신학의 유입을 거부하는 일종의 ‘모라토리움’을 주장했다. 아시아 교회들은 세계 교회에 속해 있고, 자신의 상황 속에서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계속하기를 갈망한다. 아시아 교회들은 세계 교회 속에 속하지만 그 환경에 따라 어느 정도 융합되어왔다. 유럽이 기독교의 고향인만큼 그 문화와는 다른 아시아 문화속에서 그 세를 키웠다. 위에서 언급한 고백하는 교회들도 있겠지만 하나님 속에서 그 의미를 찾고 하나님을 향해서 자신의 믿음을 펼치는 경우가 많으므로 그 속에서 아시아 교회의 의미를 찾고 이것을 계승해나가야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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