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구보씨의 1일을 보고 감상문
이 연극에 대해서 교수님이 말씀하실 때 걱정이 되었다. 연극 제목이 소설가 구보씨의 1일으로, 박태원의 동명의 소설을 희곡화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과연 재미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수능 공부할 때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약간 읽었는데 연극으로 만들기가 쉬워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내용이 몹시 지루했기 때문이었다. 딱히 빼어난 갈등도 보이지 않고 자극적인 사건도 없이 장소이동만 많은 소설을 과연 무대에 올릴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있었다. 또 무대에 올렸다손 치더라도 그게 과연 재미있을까 싶었다. 이런 염려는 결국 1인 예매로 이어졌다. 두산아트센터의 의자에 앉아 팜플렛을 펼쳐 들고는 애써 안심하려고 했는데, 연출가가 3부작을 연출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생명과학 수업을 예전에 들으면서 과제로 을 보았다. 이것이 내가 머리털 나고 처음 본 연극이었고 나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연극을 연상하면서 사실적이고 조용하면서 대사에 신경을 많이 쓴 그런 연극이 등장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연극 의 눈에 띄는 특징이라면 단연 대사일 것이다. 대사로 원작 소설의 내용을 읖는 것을 보면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을 맡았던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상했는데, 이유는 이 영화도 셰익스피어의 원작 대사를 손질하지 않고 그대로 영화 속에서 배우가 읖도록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매우 느끼한 영화였다. 지인 중 한 명은 그 영화를 돈내고 본 영화 중 가장 돈아까웠던 영화라고 혹평했는데 그래도 나름 재미는 있었다. 그런데 소설가 구보씨의 1일의 경우는 정도가 좀 심해서 간신히 참아낼 수 있는 수준이었다. 눈앞에서는 정교한 조명과 영상이 비춰지고 배우들은 과장된 동작으로 열연을 펼치는데 머릿속에는 그 모든 것들을 다 제끼고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인쇄된 수능 모의고사 시험지가 왔다갔다하는 것이었다. 종이를 줄줄 읽는 기분이어서 재미가 없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중간에 휴식 시간을 갖기 위해 막이 내려졌을 때 이대로 연극이 끝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나마 이런 식으로도 연극을 올릴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그 외의 특징이라면 앞서 말한 정교한 조명과 투영되는 영상일 것이다. 이 연출가가 번역과 연출을 맡았던 에서는 조명 변화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는데 그 당시 읽었던 프로그램을 기억해 보자면 각본 쓴 사람의 특징이라고 했었다. 구보씨의 1일에서는 조명 변화가 많았고 중간에 특수한 막을 통해 소설 속의 이미지를 배우들이 연기하도록 하는 등 여러 가지 실험적인 시도들이 엿보였다. 연출가가 각본도 썼다고 하는데 한 사람의 두 가지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재미있었다. 이 연극에서 유일하게 재미있었던 점이었다.
약간 빗나간 인상일 수도 있지만, "코미디가 성공하려면 관객이 제3자가 되어야 한다"라는 박명진 교수님의 말씀을 정말 실감한 게 바로 이 연극이었다. 이 연극에서는 "박태원"역과 "구보"역을 맡은 두 배우가 똑같은 옷을 입고 동시에 등장하여 소설가 역과 소설 속 구보의 역을 연기한다. 대사 중 "명랑하게 경성을 돌아다니는 구보"비슷한 대사가 있는데, 구보가 과연 명랑한 인물인가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할 수가 없었다. 원작 소설을 읽을 때는 꽤 암울한 인물이 암울한 시대상에 대해서 깊이 자신의 내면 속에 침잠해서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다는 인상을 받았었기 때문이다. 구보가 명랑하다고 일단 양보를 하더라도 정말 힘들게 한 점이 있었는데, 구보 역을 맡은 배우와 정말 똑같이 생긴 사람이 지인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명랑하고 과장된 동작을 취해 보여도 함께 즐거워할 수가 없었다. 머리스타일과 마른 체구 웃는 얼굴에 목소리에 말투까지도 똑같아서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싶었다. 한마디로 연극 운이 나빴다. 연극 속 구보와 지인이 정말 똑같았는데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지인은 아주 권위적인 인물이라는 점이었다. 안경 언제 바꿨냐고 물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낄 정도였다. 코미디가 성립하려면 웃는 사람들이 제3자가 되어야지 당사자가 되면 안 된다는 교수님 말씀을 2시간 30분동안 실감하고 왔다.
장점을 하나 꼽자면 이 연극은 보는 사람을 1930년대의 경성으로 시간이동 시켜 주는 나름 특이한 연극이었다. 특히 음악이 기여하는 바가 컸는데,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영화 이 떠오르고는 했다. 연극에 소설적인 요소(대사)와 영화적 요소(영상)를 결합시킨 아주 실험적인 연극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특히 무대 위쪽에 대사 자막이나 정보 등이 표시될 때마다 TV브라운관이나 영화관의 은막을 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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