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 타인의 취향을 보고 타인의 취향 감상평 타인의 취향 영화 감상문
헐리우드식 영화를 즐겨보며 자랐던 나에겐 프랑스 영화는 낯설게 느껴졌다.
왠지 어렵고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영화를 거의 다보고 타인의 취향이란 제목 그대로 받아들였더니 그리 난해하진 않았다. 이 영화를 보며 나는 여기서 취향이라는 말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특히 요즘만큼이나 각자의 취향이 존중받는 시대도 없을 것이다. 취향은 우리들 모두 가지고 있으면서도 절대 동일하지 않는 것 같다. 만약 동일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면 끔찍한 일일 것 이란 생각이 든다. 그런데 우리는 타인에게 취향을 강요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 영화 속에는 그런 장면들이 나온다.
한 공장의 사장인 카스텔라는 어느 날 조카를 보러간 란 연극의 주연 배우 클라라가 자신의 영어선생임을 알고 그녀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클라라는 문화적인 소양이 없고 경박한 카스텔라를 경멸한다. 카스텔라는 연극과 미술 분야에 있는 클라라의 친구들을 따라다니지만 항상 놀림감이 된다. 카스텔라는 마침내 클라라에게 애정을 고백하지만 거절당한다. 하지만 카스텔라가 변화된 모습을 보이자 클라라도 카스텔라에게 호의를 느끼고 자신의 연극에 그를 초대하게 된다. 카스텔라의 보디가드인 프랑크는 전직 경찰시절의 경험과 옛 애인의 배신 등으로 세상을 불신하는데 카스텔라 부인의 운전기사인 브루노는 그런 프랑크의 생각을 바꾸려고 애쓴다. 브루노는 약혼녀가 미국에 연수간 사이 예전에 만난 적이 있는 마니란 여자를 우연히 다시 만난다. 마니는 브루노를 통해 알게된 프랑크와 사랑에 빠지지만 프랑크는 편견 때문에 마니의 마약거래와 고집을 수용하지 못하고 떠난다.
한편,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카스텔라의 부인 앙젤리끄는 이혼한 카스텔라의 여동생 베아트리스의 집을 꾸미는 걸 돕게 된다. 하지만 타인의 취향을 수용하지 못하는 앙젤리끄는 베아트리스가 원하는 걸 무시해서 사사건건 부딪친다. 결국 앙젤리끄는 카스텔라가 사온 그림까지 치워버리고 이에 화가 난 카스텔라는 집을 나가게 된다.
카스텔라의 아내 앙젤리크.. 그녀는 시누이의 집의 인테리어 가정생활에 있어서도 심지어는
tv프로그램의 선택 모든 것들을 그녀 자신의 취향에 맞추려 든다. 그리고 그의 남편 카스텔라는 좀 다르다. 클라라는 여인을 사랑하게 되면서 자신의 취향과는 전혀 상관없는 그녀의 취향을 맞추려한다. 또 그는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문화적 취향의 차이로 웃음거리가 되기도 한다. 그의 동생은 그의 아내가 자신의 취향대로 꾸민 인테리어를 결국엔 바꿔버린다.
이 영화에 나오는 장면들처럼 개개인의 취향은 너무나도 다른 것 같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듯이 사회속에서 타인과 함께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다. 흔히들 우리가 경험하는 일상생활속에서 예를 들자면 함께 여행을 가거나 옷을고를때 음악을 들을때 사소한 음식을 먹을때도 각자의 취향은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럴때 나는 살아가면서 과연 얼마나 내가 다른사람의 취향을 생각하고 있을까 그리고 알려고 노력하고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됐다.
나는 취향을 뛰어넘어 흄의 취미론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그리고 흄의 견해에 대해 비판해 보았다.
흄은 다른 학자들과 달리 ‘취미기준의 가능성’을 제기하고 취미기준을 구하면 취미기준이 어떻게 해서 보편성을 지니게 되었는지 에대해 논한다. 흄에게 있어서 취미란 미적감정을 의미하는데 이 미적감정은 그것을 경험하는 주관의 성질이지 대상의 객관적 성질은 아니다. 이런한 맥락에서 흄은 “아름다움이란 사물 그 자체 안에 존재하는 성질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그것을 관조하는 인간의 마음에 존재할 뿐이며, 각 사람은 다 제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지각한다.”고 말했다. 흄의 주관적이라는 말도 동의한다. 그러나 아름다움이라는 예를들어 보자 아름다움이란 자체는 주관적일 수 밖에 없는 개념이지만 아름다움에 대한 평가는 일시적인 개인의 주관적 감정 이상의 것이어야만 할 것을 요구하여 미적 판단은 보편성을 띠어야만 했다. 미적가치나 비평가들의 견해를 평가하는 미적판단은 어느것이 다른것 보다 더 우수하다는 객관적 근거가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취미는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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