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 남양군도를 읽고
이 책은 수업을 해주시는 교수님께서 지은 책이다. 처음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남양군도에 관하여 짧게 이야기했었다. 남양군도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던 나는 어떠한 것인지 아예 예측도 하지 않았다. 알고 보니 태평양에 모여 있는 섬들을 일컫는 말이다. 남양군도는 제 1차 세계 대전 이후부터 태평양 전쟁 때까지 일본이 지배하여 미크로네시아 섬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교수님께서는 제주도의 전적지의 특징을 파악하고 자 연구를 하였는데 제주도의 것들이 일본 본토 보다는 오키나와, 괌, 사이판 등 태평양 지역 섬들의 방어시설과 비슷한 것을 알아 무엇이 다르고 같은지에 대해 비교해 보고자 연구를 하였다고 한다. 내가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직까지 한번 가보지 못한 곳이기 때문에 여행을 좋아하는 나로써 가고 싶었던 여행지인 곳이다. 그리고 이 지역은 많은 신혼여행지로 유명한 곳이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고 보고만 듣던 여행지가 무서운 역사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교수님처럼 사회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아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남양군도에서 어떠한 일들이 일어났었는지 역사적 모습들과 일본과 어떤 관련이 있고 제주도와는 또 어떤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먼저 태평양 바다를 크게 폴리네시아, 멜라네시아, 미크로네시아 3권역으로 나누는데 태평양에 흩어져 있는 섬들의 한 구역인 미크로네시아 지역이 일본이 통치했던 지역을 남양군도라고 한다. 남양군도는 태평양 지역의 섬 이름 인데 이 곳의 이름을 배를 타고 섬을 찾아다닌 서양인들이 제멋대로 붙인 이름이다. 그 말은 즉 이름이 무엇이든 주민들은 상관하지 않았고 이름을 붙이는 건 최초 발견자의 권리였다. 그렇게 정착하여 유럽인들이 붙인 이름, 일본식 이름, 미국이 점령한 이후 붙인 이름 현재까지의 이름이 수시로 바뀌어왔다. 하지만 주민끼리 부르던 이름이 이었지만 그 이름들은 무시하였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 이 지역의 주민들의 세력이 빼앗겨 나라를 지배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듯이 많은 고통과 고난을 겪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왜 많은 나라에서 이 지역을 지배하려고 하고 전쟁까지 일으키며 일본은 어떻게 지배할 수 있었을까?
지난 과제인 ‘일본이라는 나라’의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일본은 세력 확장을 위해 많은 여러 나라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고 하여 영토 확장에 불타올라 제 1 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였지만 기존의 열강들에 비해 재정적으로, 군사적으로 약하였기 때문에 당시 초강대국이였던 영국과 동맹을 맺었다. 영국도 동남아 지역에서 독일 제국군을 봉쇄하여 했기 때문에 양쪽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동맹을 이루었다. 그렇게 해서 일본은 남양군도를 점령하고 21개조 요구를 발표하였다. 21개조 요구는 일본의 권익 확대를 위해 중국에 요구한 것으로 일본 제국이 소유한 만주 남부의 이권을 확장하고, 독일 제국이 가지고 있던 산둥을 일본에 이양하여 제국주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시작되면서 일본은 이 지역 섬들을 발판삼아 아시아에 있는 여러 나라를 제국의 영역으로 삼고자 하였다.
그 이후 1919년 베르사유 조약이 발표되면서 패전국인 독일이 가지고 있던 식민지들이 승전국에게 배분되며 이에 따라 남양군도는 1919년 6월, 위임통치령의 형태로 일본제국에게 배분되었다. 여기서 위임통치는 민족자결주의에 따라서 통치하는 지역이 장래 독립하는 것을 전제로, 통치지역의 주민을 돕는다는 생각에 기초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정쟁에서 승리한 국가의 영토분할 요구에 기초한 것이므로 반영구적인 위임통치로 즉, 식민지의 성질을 갖고 있는 것 이다.
1922년에는 남양청을 설치하였다. 그 전까지는 남양군도는 사실상 일본 해군의 군정체제나 다름이 없었으나 남양청을 설치된 이후에도 일본 해군의 관활하였다. 1920년대부터 일본 해군은 남양군도의 주요 섬에 군사시설을 설치하였다. 이는 미국의 태평양 진출을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일본 해군에 의해 항만시설, 해군기지, 비행장 건설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렇게 일본이 지배한 식민지에서는 교육을 시켰다. 남양군도를 점령한 후 학교를 설치하여 일본인자녀가 다니는 학교와 원주민이 다니는 학교로 분리 시켰다. 원주민이 다니는 학교에서는 공학교라는 특수한 제도를 만들어 식민지 조선, 대만과는 다른 남양군도만의 독자적인 교육체계로 독자적인 교육방향을 정하고 교과 과정도 편성했다. 물론 교육을 하는데 일본어는 기본중 기본이였으며 일본에 대한 애국심을 길러 일본군이 승리하면 일장기를 흔들며 제등행력을 하도록 했다.
그 이후 일본인 이주민이 크게 늘어나면서 남양흥발주식회사, 남흥 수산, 남양석유 등 일본의 민간 기업이자 국책기업이 남양군도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남양흥발 주식회사는 남양청으로부터 사탕수수 독점권을 부여받아 사탕수수를 지배했으며 설탕의 주요 생산지가 되었다. 남양 무역은 해운업, 야자 재배를 수행하여 남양청과 조선총독부가 추진하여 남양군도에 조선인 이주가 이루어졌고 이들은 사탕수수, 카사바 재배 및 무산 알코올을 생산하기 위해 이용되었다.
이열악한 환경 속에서 이주 조선인들의 생활을 참혹하고 이렇게 자신의 땅도 아닌 곳에 가서 다른 나라에게 견제를 하는 일본군에 의해 병사로 징용되거나 위안부로 끌려가고 노동자로 끌려가 저러한 전적지를 만들 때 수많은 인원을 동참해야 하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고통 속에서 살아남았는지 상상도 안된다. 이러한 점을 보면 남양군도 또한 우리나라와 같은 아픈 역사를 담긴 땅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만의 문화를 지키며 살아가던 그들에게 한 순가에 들이 닥쳐 생활터전을 뺏기고 수많은 주민들이 상처를 입은 모습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나라를 빼앗기는 모습을 그대로 놓을 수 없어 많은 저항 운동을 하고 독립을 하려했는데 남양군도에서는 왜 저항운동을 안했는지 의문점이 든다. 그리고 아까 앞에서 말했다 시피 남양군도에서 군사시설, 비행장을 설치하여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하였는데 제주도 내에 비행장만 해도 4개가 있다. 이 또한 미군을 견제하기 위해 만들었다. 또한 해안 특공기지로 태평양전쟁에서 패전위기에 몰려 건설 한 것이다. 일본은 이러한 여러 전적지를 만들어 자신들을 방어해 나갔는데 이러한 전쟁 시설들로 인해 여러 유적지들이 파괴되고 사려져 버린 것들이 많다. 끝으로 많은 아픔과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들에게 평화의 소중함을 인식해주고 많은 사람들이 남양군도라는 지역과 우리나라의 역사와 함께 알아 줬으면 하고 하나의 평화를 위해 국가적으로도 이 지역이 널리 알려 질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며 나 또한 역사에 관심을 가져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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