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군도를 읽고서
남양군도라는 단어는 나에게는 생소하였다. 군도라 함은 모여 있는 섬을 말하는 것인데 어느 지역의 섬들을 말하는 것일까. 놀랍게도 이는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이 지배하던 지역을 말하는 것 이었다.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오늘날의 동남아시아 지역들을 일본인들은 남양이라고 지칭하는데, 남양군도는 미크로네시아, 즉 캐롤라인, 마리아나, 마셜의 3개의 제도로 이루어진 지역이며 원래는 독일의 지배하에 있었지만 1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에게 넘어가게 되었다.
남양군도의 속해있던 괌, 사이판, 팔라우 등과 같은 지역에는 아직도 일본제국의 흔적들이 주민들의 생각 속이나 길거리에, 문화적으로나 실체적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물론 7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그 흔적들은 많이 사라지고 약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제국 통치 당시에 일제가 감행했던 악행들은 너무나도 잔인하고 가혹했기 때문에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이고, 아직도 국제 사회에서도 논란이 존재하는 이유일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지역에 있는 섬의 이름과 지역의 이름은 과거 현지인 들이 쓰던 지명이 아니라고 한다. 여러 나라들의 지배를 받았었기 때문에 지배하는 나라가 바뀔 때마다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현지인들이 부르던 이름은 이러한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졌을 것이다.
이 지역이 이처럼 서구 열강들에게 알려지게 된 것은 대항해시대이다. 당시 사람들은 바다 끝으로 가면 떨어져서 죽는다는 인식이 있었으나 마젤란이 세계일주를 한 뒤로는 너도나도 바다로 나가게 되었으며, 그러한 과정에서 이 태평양 지역까지 유럽이 넘어오게 된 것이다. 마젤란은 처음 이 태평양 제도를 탐험하는 도중 필리핀에서 죽었지만 그 부하들은 살아남아 다시 귀향하여 그 항로와 정보들을 국가에 넘겨줌으로써 스페인은 이 지역을 지배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이게 된 것이다. 선교활동에도 많은 힘을 쏟았는데, 이 과정에서 신부가 죽게 되어 스페인과 괌 현지인 차모로족과의 전쟁이 일어났고, 스페인의 승리였다. 또한 유럽인이 가져온 전염병에 태평양 모든 섬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였다. 이런 이유로 태평양 제도는 유럽인의 지배하에 놓이게 된 것이다. 괌 말고도 다른 지역의 식민지화도 비슷한 양상으로 진행되어져 갔다. 종교를 전파하고, 경제적인 이득을 취하기 위한 지배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독일은 유독 경제적인 이득에 중점을 두었으며, 여러 독일 기업들이 진출하였다. 하지만 이 미크로네시아를 독일이 지배한 후에도 경제적인 상황은 독일 편이 아니었다. 지리적으로 일본이 미크로네시아와 더 가까웠기 때문에 일본 기업의 영향력이 강했으며, 일본은 당시 서구 열강들의 아시아 식민지화를 보며 ‘탈아시아’를 꿈꾸었기 때문에 식민지를 만드는데 많은 노력을 했을 것이다. 유일하게 동양에서 제국주의 국가로 성장한 것이다.
일본은 어떠한 이유로 미크로네시아에 눈독을 들이게 된 것일까. 미크로네시아는 섬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그 면적을 합쳐도 그렇게 넒은 영토가 아니며, 자원도 풍부하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일본은 미크로네시아 너머 동남아시아 전역을 일본제국의 영역으로 만들려는 야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미크로네시아는 일본제국의 태평양 진출의 전략적 요충지였던 셈이다. 따라서 일본은 독일로부터 지배권을 뺏어온 뒤 교육, 경제, 군사 등 여러 부분에서의 식민지화를 시작하였다.
경제적인 부분에서 눈여겨 볼 것은 ‘설탕왕’ 이라 불리는 마쓰에 하루지라는 일본 경영인이다. 이 인물은 북마리아나 제도에서 남양흥발이라는 제당회사를 설립한 인물인데, 이 회사는 일제 통치 당시에 남양군도 최대 규모의 제당회사 이다. 사이판에는 이 사람에 대한 동상까지 설립되어 있다고 하는데, 어떠한 이유로 한 회사의 사장 신분으로 이러한 칭송을 받게 되었을까. 일반적으로 동상은 어떤 사람이 역사에 남을 만한 업적을 남겼을 때, 그 사람이 죽은 후에 그 공적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 세우는 데 이 동상은 마쓰에가 살아 있을 당시에 세워졌다고 하니 당시 그의 위치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알 수 있다. ‘남양의 개척왕’ 이라 불리는데, 그는 사이판 섬과 티니안 섬을 대자본의 힘으로 개발에 성공했다고 한다. 광대한 토지에 사탕수수를 심고 도로를 넓혀 대중교통을 발달시키고 공장, 주택, 병원 등 여러 건물을 짓고 오키나와현의 노동자들을 대량으로 이주시켰다. 섬의 문화와 산업을 한 회사가 지배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처럼 신격화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후에 남양흥발은 일본 해군에 의해 전쟁자본의 핵심 역할을 맡게 되었으나 패전 후에는 모든 해외 자본을 상실하게 되었으며, 폐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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