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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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오키나와 감상문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일본에 대해 흔히 생각을 할 때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일본이 전쟁을 일으켜서 우리나라를 괴롭혔다는 사실은 모두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이 다른 나라와 메이지 유신 이후에 많은 전쟁을 일으켰는데, 일본 내의 자국민에 대한 희생이 얼마나 많았을지에 대한 생각은 대부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에 대한 관심은 거의 대부분의 국민이 없었을테니 말이다. 나 역시 그 사실에는 중요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단지 일본은 자신들의 국익을 위해 우리나라 사람들을 괴롭혔고, 그 사실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사실에 대해 반성을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일본이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잘못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행동을 보이는 것에 대해 너무나 화가 났다. 특히 조선의 여성들은 위안부로 전쟁터에 끌려 다니면서, 일본군의 놀잇감이 되어 농락당한 것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 정부에 대해 많은 화가 났다. 이렇듯 일본에 대한 나쁜 감정은 많이 가지고 있다. 그건 한국의 국민이라면 대부분 그렇다고 생각이 든다.
우연히 오키나와란 섬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일본은 다른 나라뿐만 아니라 자국민에게도 굉장히 못된 행동을 많이 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키나와의 경우 일본의 가장 남쪽에 있는 지역에 있는 섬이라고 한다. 이 오키나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뭔가 제주도와 굉장히 비슷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오키나와는 일본 본토와 어떻게 보면 많이 떨어져 있는 곳이다. 마치 제주와 같게 말이다. 오키나와에서 일본 정부는 태평양 전쟁에서 거의 패전이 임박할 때 쯤 이 섬에서 최후의 공격을 펼치기로 하고 오키나와에서 마지막 전쟁을 준비를 한다. 전쟁의 패배를 쉽게 인정하지 않는 일본군 때문에 그들이 살고 있던 터전은 전쟁의 한복판에 놓이게 된다. 일본군과 미군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천황과 일본의 고위층들이 미국과의 협상을 할 때 굉장히 많은 오키나와 주민들을 자신들이 살고 있는 땅에서 전쟁이 벌여져 많은 희생을 당했다. 그리고 무자비하게 자신들의 국민들이 전쟁의 피해를 보고 있는 동안 일본의 고위층들은 자신들이 지위를 보장 받는다는 미군의 협상을 듣고 난 후에야 자신들의 패배를 인정을 하였다. 이미 오키나와는 많은 주민들이 전쟁 때문에 많은 수가 사망을 한 뒤였다. 그 후 일본은 패전국이 되었고, 미국의 군인들은 일본의 감시 목적으로 일본의 미군이 주둔을 하게 되었다. 미군은 오키나와 섬에도 주둔을 하게 된다. 오키나와 주민들은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미군에게 빼앗기다 시피하게 되었다.
전쟁을 하면서 일본군들은 자신들의 패전이 확실해 지자 일본군이 오키나와 주민들을 상대로 주민들이 있던 가마와 묘로 들어가 주민들을 밖으로 몰아낸 다음 자신들이 살기 위해 안으로 숨었다. 밖으로 나가지 않거나 말을 듣지 않는 주민들은 총칼로 위협을 하거나 죽여 버려면서 말이다. 쫓겨난 주민들은 숨을 장소를 찾지 못하고 들판을 헤매다 폭격에 죽었다. 오키나와 주민의 입장에서는 일본군 병사들은 자살을 강요하고 식량을 빼앗았으며 동굴 밖으로 즉, 그들을 죽으로 내몬 악마같은 존재 였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일본군은 오키나와 주민들에게 엄청나게 잘못된 행동을 저지른 것이다.
오키나와가 전쟁 후 일본이 미국에 넘겨 줬다가 1972년 미국이 일본군에게 다시 돌려주게 되었다. 그 후 오키나와 현정부 주도로 기념공원이 생기게 되었다. 1975년 6월 평화기념자료관을 개관하면서 개장을 하였다. 그런데 이 곳에는 굉장히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이 곳의 개관 초기 전시 내용이 ‘군인 중심’, ‘황군현창’의 육군 박물과노가 다름이 없었으며 오키나와 주민들에 대한 내용이 있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비판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전시개선을 요구 했고, 처음 전시내용을 철거 한후 1977년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평화기념자료관 운영협의회를 설치해 전면 재검토를 하였고 주민들의 체험을 수집하고 이를 전시에 도입하는 계획을 수립하였다. 군의 논리를 민의 놀리로 재편화 하는 과정을 한 것이다. 이 후 1978년 다시 문을 연 자료관은 일본군에 의해서 오키나와 주민들이 죽임을 당하고 피해를 입었다는 점을 분명히 부각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분명한 문제의식에 따라 오키나와 주민의 입장에서 일본군의 만행을 고발하는 내용을 담은 반전 평화박물관으로 다시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오키나와 주민들이 어떻게 피해를 당하고 죽어갔는지를 증언을 통해서 체험하도록 만든 증언의 방도 존재하였다. 그리고 이 자료관이 존재하면서 반전평화박물관으로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평화단체, 노동단체, 수학여행을 오는 많은 관람자 수가 계속 증가하였다고 한다. 1998년 오키나와 현 지사 선거에서 보수계의 이나미네가 현직 지사인 오타 후보를 누르고 당선이 되는 일이 있었다. 지사의 교체로 새로 짓는 평화자료관에 대해서도 상당히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는 전시 작업 막바지에 일으렀던 1999년 현 당국이 비밀리에 전시내용을 전면적으로 변경하려한 사실이 매스컴 보도로 폭로 되었다. 전쟁 다시 상황을 재현하는 전시 계획이었는데 계획대로라면 굴 안에 피난민에게 총검을 겨누고 있어야 할 일본 병사 인형의 손에서 총검이 사라진 것이라는 점이다. 지사가 바뀌면서 교체된 지사는 일본군의 잔학성을 강조하지 않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린 결과로 이루어진 결과라고 한다. 이것은 일본군이 오키나와 주민들에게 한 사실을 왜곡하려는 것으로 보여진다. 평화기념관의 의미가 왜곡된 것이다. 일본군의 만행을 고발하겠다는 기념관의 의미는 사라지고 오키나와 전투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조차 애매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직 나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가본적은 없다. 하지만 여러 가지 언론매체나 강의를 들으면서 일본에 한번쯤은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키나와에 대한 강의와 책들을 읽으면서 오키나와가 정말 제주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키나와는 원래 일본 본토와는 별개의 섬으로 존재했던 곳이라고 한다. 마치 제주의 모습과 비슷하게 말이다. 예로부터 제주는 탐라국이라고 해서 한반도와는 별개로 존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리고 오키나와 역시 섬이라는 것과 일본군의 전쟁 준비로 인해 굉장히 많은 피해를 입었다는 점이 말이다. 그리고 둘다 전쟁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게끔 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리고 오키나와에는 현재에도 미군이 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의 땅인데 미군이 주둔해 있다. 이것은 한국 역시 마찬가지인데 말이다. 그리고 오키나와를 일본에서 바라보면 우리나라에서 보는 평화의 섬의 이미지를 가장 잘 나타나고 있는 곳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런 생각도 해 보았는데 만약 오키나와처럼 제주도에서도 전쟁이 진짜 일어났더라면 정말 어땠을까..정말 너무나 끔찍했을 거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고,제주도에는 해군기지가 생기게 되는 것과 오키나와에는 미군기지가 있는거랑 뭔가 비슷한게 굉장히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키나와에 한번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