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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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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 내용 요약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전세계 경제가 흔들리고 있는 현 시점에서 지난 100년간의 세계 경제사의 흐름을 훑어 보는 방식의 다큐멘터리인 커멘딩 하이츠는 현실의 위기상황을 극복해 나가기 위한 방향을 설정하는데 많은 시사점을 남기고 있다.
지난 100년간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국가들 이외, 즉, 자유주의,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들의 주요 경제 정책은 두 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 하나는 케인즈 식의 큰 정부, 나머지 하나는 하이에크 식의 작은 정부이다. 1차 세계 대전 전후인 20세기 초에는 작은 정부, 2차 대전 이후인 20세기 중반에는 큰 정부, 다시 1차, 2차 오일 쇼크 이후에는 작은 정부로 돌아서고 현시점인 글로벌 금융위기에서는 다시 한번 큰 정부로 돌아서려는 움직임으로 경제구조가 순환하고 있다.
20세기 초 철도와 통신 등의 발전을 통하여 세계화가 가속화되면서 전 세계의 경제구조는 변화의 물결을 맞게 되었다. 그 와중에 오스트리아 왕세자의 저격으로 인해 발발되기 시작했던 1차 세계 대전에 참가한 하이에크는 국가와 정부에 확실히 문제점이 생각하였다. 그러나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성공하고, 1929년 작은 정부를 지향하면서 경제를 자유시장에 내맡겼던 미국에서 주가폭락과 더불어 찾아온 대공황으로 인하여 작은 정부는 그 이론적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이 시점을 파고들어 성공을 이룬 경제이론이 바로 케인즈 이론이다. 케인즈는 정부의 시장규제와 더불어 재정지출을 늘림으로써 대공황의 문제, 즉 물가의 상승을 억제 할 수 있다는 그 유명한 일반이론을 내세움으로써 그 이론을 전 세계 국가에 정립시켰다.
이 후 2차 세계 대전은 큰 정부가 확실히 자리매김하게 만드는 장을 마련하였다. 루즈벨트 당시 미 대통령은 군수 사업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산업에서 또한 큰 정부의 역할은 앞으로 지속될 것이고 또한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반면에 전쟁의 종식 후 영국 총리인 윈스턴 처칠은 하이에크의 ‘예종에의 길’, 즉 작은 정부를 옹호하는 이론을 내세웠지만 국민들의 불신으로 그의 집권은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다.
케인즈의 이론은 전 세계 국가의 주류 경제 정책으로 채택이 되었고 하이에크의 작은 정부 정책은 비주류로 밀려나게 되었다. 1940년부터 약 30년간 큰 정부의 역할로 인하여 미국, 일본, 유럽은 고도의 경제발전을 이룩하였고, 국민들의 후생은 향상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 1차, 2차 오일 쇼크로 인하여 30년간의 경제 호황은 위기에 봉착하였다. 바로 인플레이션과 함께 실업률이 급속히 증가하는 스테그플레이션 때문이었다. 이는 큰 정부를 지지하는 경제적 이론인 케인즈의 이론으로는 해결 할 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 하이에크나 밀턴 프리드먼이 주도하여 작은 정부, 즉 자유시장(free market)을 주창하는 시카고학파는 이 위기상황을 기회로 잡아 당시 미 대통령인 닉슨에게 작은 정부로 돌아갈 것을 권고 하였으나, 닉슨은 케인즈 주의를 자신의 경제 정책으로 선언하였다. 물가와의 정쟁을 선포하면서 재선에 성공하였으나 경제는 호전 되지 않고 여전히 물가와 실업률은 계속해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1973년 영국식 혼합 경제 또한 스테그플레이션이라는 암초에 걸렸다. 영국은 명목상으로는 자유시장을 표방하였으나 실질적으로는 가격통제등과 같은 케인즈 이론을 토대로 문제점을 해결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는 실패를 거듭하였다. 이 후 보수당의 키스 조셉과 마가렛 대처가 영국식 혼합경제를 비판하고 자유시장을 옹호 하면서 하이에크의 이론을 경제정책의 주요 밑바탕으로 깔기 시작하였다.
자유 시장 경제가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가장 좋은 본보기로는 1974년 미국에서 국가주도의 가격통제를 받고 있던 항공시장을 자유시장에 맡기는 것이었다. 이는 탈 규제를 통해 항공사들간의 경쟁은 치열해지면서 가격은 떨어지고 다시 수요가 창출, 일자리가 늘어나는 식의 호 순환이 계속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터는 1979년까지도 여전히 케인즈의 이론을 토대로 경제정책을 펼쳐나갔다. 이는 2차 오일쇼크와 맞물리면서 스테그플레이션의 심각성을 재차 확인 시켰다. 그 후 로널드 레이건은 영국의 수상인 대처와 같은 경제철학을 가지고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있는 한가지 길은 바로 통화 긴축정책이라고 하였다. 3년간의 계속되는 시도와 실패 끝에 1982년 드디어 물가는 하락하고 경제는 안정되기 시작하였다.
로널드 레이건의 경제정책이라 불리는 레이거노믹스는 다음의 네 가지로 기본으로 하고 있다. 첫째는 건실한 금융, 둘째는 규제철폐, 셋째는 적정한 세율, 그리고 마지막은 제한적 정부지출이다. 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바로 자유시장경제체제인 것이다. 이러한 감세정책은 재정 적자를 남기게 되었으나 자유시장의 가장 좋은 결과인 경제는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게 만드는데 기여하였다.
1982년 영국의 아르헨티나와의 포클랜드 전쟁에서의 승리는 전세계로 영국 수상 대처의 경제정책을 퍼트리는데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대처는 이 승리로 인하여 정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고 커멘딩 하이츠, 즉 국영화된 주요산업을 시장에 맡기는 민영화 작업을 통해 기업간의 경쟁을 통해 경제를 발전 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의 국영산업의 민영화 정책은 전 세계 대부분 국가가 채택하는 기본 경제 정책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