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금작물과 제주농민문화』를 읽고
『환금작물과 제주농민문화』를 읽고
그저께 마당에 단호박을 심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자연을 좋아해서 관심이 많이 있습니다. 2000원에 단호박 모종 4개와 피망, 오이, 고추, 상추 등등 많은 모종을 사와서 마당에 심고는 물을 주었습니다. 금세 단호박이 주렁주렁 열릴 것만 같았습니다. 장난처럼 ‘나도 단호박 많이 키워서 장사나 해볼까?’ 라고 하며 웃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환금작물과 제주농민문화’를 처음 읽을 때는 ‘이게 무슨 말일까’ 하고 갸웃둥 했었습니다. 두 번째 읽을 때에는 ‘내가 단호박 키우는 농민이다’라고 생각하고 농민의 입장이 되어 농민을 다시 바라보았을 때 그 느낌은 처음 단순히 책을 들었을 때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환금작물과 관련하여 환금작물의 도입이전과 이후, 경제적 상황, 노동형태와 사회적 갈등, 그 밖에 친목계와 토신제등 다양한 방면으로 제주농민문화에 대해 전반적으로 살펴볼 기회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제주도는 화산질 토양으로 이루어져 물 빠짐이 수월하며 강수량이 많은 편에 속하지만 지표수가 적고 토양의 입자가 굵어 물이 모두 땅으로 스며들기 때문에 지표면에 물을 대기가 어려워 논농사는 거의 발달하지 못하였으며 경지면적 가운데 2.4%정도 차지합니다. 그나마 조금밖에 없는 논농사마저도 한림읍과 한경면, 대정읍 등의 서부지역과 한라산 남쪽의 서귀포에서 주로 행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밭농사가 성행하게 되었습니다. 밭농사로는 주로 감자, 마늘, 고구마, 양배추 등등 작물이 재배되고 있습니다. 농업지역의 대부분은 귤 재배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특히 해발 200~400m정도의 중산간지역에서 감귤 농사를 많이 짓고 있습니다. 주요 농산물은 60년대부터 고구마가 주종을 이루다 70년대부터 감귤이 주종을 이루는 등 고소득경제작물 중심으로 바뀌었습니다.
제주가 환금작물로 감귤을 선택한데에는 농민의 자발적인 선택보다는 중앙정부가 전국을 대상으로 행한 지역적인 분업화의 한 부분으로 제주도를 아열대 작물재배지로 만들고자 하는 정책의 일환으로 배치된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환금 작물이란 팔아서 돈을 얻기 위하여 재배한 작물로써 ‘돈벌이 작물’이란 표현을 합니다. 환금작물경제의 도입으로 인하여 제주농민들은 결과적으로 생산과 유통과정에서 소외를 당하며 생계를 위한 농업이 아닌 판매를 위한 농업이 됨으로써 농산물 가격이 생산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되었습니다. 환금작물경제의 도입으로 인하여 합리성에 근거하여 운영하였기 때문에 전통적인 인간관계를 중시하던 기존의 사회조직체들은 비합리적이라 인식되어 환금작물경제에 비적응적인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전통적인 인간관계는 파편화되고 마을의 공동체성도 많이 완화되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제주 농민들은 자신들의 현재적 상황을 해석하고 그 현실에 힘을 작용시킬 수 있도록 삶을 재구성 하고 있습니다. 제주농민들이 환금작물경제로 인한 인간관계의 파편화와 마을공동체의 해체를 극복하기 위하여 전통적인 인간관계를 강조하고 전통문화를 재생하는 것은 환금작물경제에 대한 저항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또한 친목계, 넉동배기와 같은 전통적인 인간관계를 나타내는 문화요소들의 재생은 환금작물경제로 인한 인간관계의 상실에 대항적인 성격을 갖습니다. 환금작물 경제로 인하여 제주도의 경제가 육지부의 재생산 구조에 편입된 이후 제주농민의 삶은 자율성을 상실하고 마을 공동체는 구조적으로 변화하였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제주농민이 현재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며 어떻게 문화적으로 대응하는가를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책속에 소개된 달밭마을은 산남지역에 있으며 해안마을에 속합니다. 이 마을은 제주도에서도 하우스 농업을 하는 대표적인 마을 중의 하나로서 제주농민들의 경제현실을 이해하는 좋은 사례이며 제주의 밀감농사와 하우스농업의 제주농업의 중심이라 한다면, 달밭마을은 밀감농사와 함께 화훼재배를 주로 하는 지역으로서 환금작물경제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곳이라 평가 할 수 있습니다.
달밭마을은 전통적으로 밭농사와 논농사를 하다가 1970년대 이후 밀감농사를 집중적으로 하였으며, 1980년대부터는 비닐하우스를 이용한 꽃농사를 집중적으로 하고 있는 마을입니다. 일반적으로 논농사가 불가능한 제주도에서 논농사를 하였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토질이 좋다는 의미와 함께 관의 수탈이 보다 직접적으로 가해졌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실제 이 마을은 관의 수탈과 지배에 대하여 빈번히 저항하였으며, 제주도의 역사상 저항운동의 중요한 지도자 중의 한명이 이 마을에서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마을개발사업이 진행되었습니다. 초기에는 부흥부산하의 지역사회개발계에서 개발사업을 주도하였으며 1970년대부터는 새마을사업이 주도권을 가졌습니다. 정부는 생산을 위한 기반조성보다는 우선 가시적인 효과가 나는 공공시설과 생활환경개선사업을 주목표로 하였습니다. 그 결과 지역개발사업은 생산기반조성과 수익사업이 약화되어 제주농촌의 구조적 문제점을 야기하는 동인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환금작물경제가 도입되기 이전의 전통적인 생계농업으로 식량생산을 주목적으로 하는 농업과 바다자원을 이용하는 어업, 중산간의 목초지를 이용하는 목축업이 병행하였고 이러한 경제활동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달밭마을의 경제구조는 자원을 다양한 방법으로 이용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밭작물로는 주로 보리와 고구마가 재배되었습니다. 보리는 조와 더불어 제주도의 중심이 되는 작물이었으며 고구마는 전분공장이나 주정회사에 판매함으로써 현금을 구할 목적으로 재배되었습니다. 생계농업하에서 어업은 농업을 위해서도 필수적이었습니다. 바다에서 잡은 물고기는 식량이나 판매를 위해서도 사용되었지만 거름으로도 중요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척박한 토양에서 농업을 하기 위해서는 거름을 투입하는 것이 필수적인 일이었기 때문에 농업을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어업에도 적극적이었습니다. 또한 목축역시 농업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습니다. 중산간지대의 경작지의 토질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목축이 이용되었습니다. 따라서 생계농업하에서는 농업과 어업, 목축을 통해 농지와 바다 그리고 목초지라는 다양한 자원을 함께 이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농업생산성의 차이는 토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력에 의해 결정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양질의 노동력을 많이 투여한다는 것은 척박한 토양에서 생산성을 높이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으며 따라서 농업생산에서 노동력이 가장 중요한 요소로 인정되었습니다. 토지를 전혀 갖지 못한 사람도 열심히 노동하여 경제적인 부를 이룩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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