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자의 탄생을 읽고
1. 들어가며
‘남자의 탄생’이라.... 책을 읽기 전에, 만일 이 책을 교수님의 충분한 설명을 듣지 않고 그냥 우연히 제목만 보고 읽게 되었다면 다소 흑심을 품고 읽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라는 단어 자체가 들어갔다는 것이 다소 선정적인 뉘앙스를 담고 있는 것 같았고 그 단어에서 느껴지는 어색한 기분이 강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하철에서 이 책을 읽으면서도 ‘혹시나 다른 사람들이 내가 이상한 책을 읽고 있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을 가지고 책을 읽게 되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 그리고 책의 개정된 서평 내용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나서, 내가 이러한 불안감을 가지고 책을 읽었던 이유를 알 수 있게 되었다. 그 동안 나는 나 자신을 ‘남자’라는 성을 지닌 존재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그것을 초월한 무성적(혹은 초성적)인 존재로 생각해왔던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이 10여년이 넘게 지속되어 왔으니, 자연히 ‘남자’라는 단어를 멀게만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이러한 나의 경향은 최근까지 성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것을 극단적으로 꺼리는 방향으로 나타났다. 혹시라도 친구들과 대화 중에 그러한 이야기가 나온다면 직접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마음속으로는 몹시 불편하였다. 하지만, 이번에 책을 읽고 나서 그러한 행동의 이유를 조금이라도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은 나의 인생의 많은 부분을 통해서 이루어진 ‘초성적 자아’의 형성과정이었다.
2. ‘동굴 속 황제’의 탄생
“형제가 어떻게 되세요?” “누나 두 명 있어요.” “아, 그럼 무척 귀한 아들이군요. 부모님께서 정말 좋아하시겠어요.” 이것은 내가 보통 어떤 사람을 처음 만나게 되었을 때 거의 빠지지 않고 하는 대화 중 하나이다. 이렇게 대다수의 우리나라 사람들이 짐작할 수 있듯이 나는 흔히 말하는 ‘귀한 아들’로 태어났고, 다시 말해서 ‘동굴 속 황제’가 되기 매우 적합한 환경에서 태어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지만, 당시 어머니께서는 작은 누나까지 딸만 두 명을 낳은 상태에서 또 딸을 낳을 상황에 대한 부담이 크셨기 때문에, 내가 아들이라는 것을 확인하시고 나서 감격해서 눈물을 흘리셨다고 하셨다. 어쨌든, 이후 나는 다른 남자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혹은 더 철저히 ‘동굴 속 황제’로 키워졌다.
하지만, 나는 저자와는 달리 어머니 보다는 할머니의 관계가 유년기에 더 깊었다고 할 수 있다. 어머니는 약사이시기 때문에 당시 아침 8시 경에서부터 밤 9시까지 약국에 계셨다. 결과적으로 내가 어머니를 볼 수 있던 시간은 우리 집 주변에 있던 약국을 찾아갈 때나 일요일이나 공휴일이어서 어머니가 약국을 쉬실 때 밖에 없었다. 그나마 내가 약국에 찾아가는 경우에도 손님들이 계속 오거나 혹은 내가 부주의하게 약병을 깨트린다든지 하는 일이 벌어져서 어머니와의 만남이 오래 지속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주로 할머니께서 나를 돌봐주셨다. 이와 같이 할머니와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은 것은 초등학교 시절까지 지속되었다. 다시 말해서, ‘남자의 탄생’에서 저자를 ‘동굴 속 황제’로 만들어 준 어머니의 역할을, 나의 경우에는 어머니가 아닌 할머니가 해 주신 것이다.
할머니께서는 나에게 한없는 사랑을 베풀어주셨다. 우선 할머니께서는 내가 원하는 것은 즉각적으로 들어주셨다. 혹시라도 할머니께서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시지 않았을 경우에는 나는 ‘아 아...’하면서 칭얼대었고, 그럴 때면 할머니께서는 곤란해 하시면서 당신이 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설 경우에도 어떻게 해서든지 나의 요구를 들어주시곤 하셨다. 예를 들어, 내가 영어라는 외국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무렵, 할머니와 함께 시장에 갔다가 간판에 있는 ‘담배’라는 단어를 보고 할머니께 담배가 영어로 무엇이냐고 물어본 일이 있었다. 물론 할머니께서는 영어를 접해 본 일이 드물었기 때문에, 본인의 능력으로는 내 질문에 대답하실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계속해서 칭얼거리기 시작하였고, 할머니께서는 한참 동안이나 그 답을 찾기 위하여 수소문을 하셨다. 결국 한참 뒤에 할머니께서는 담배가 영어로 ‘시가렛토(cigarette)’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나의 요구를 들어주셨다.
한편, 나의 요구에 대한 직접적인 반응 외에도 할머니께서는 나를 마치 특별한 재능을 가진 특별한 사람처럼 대해 주셨다. 한글을 막 깨우칠 무렵, 할머니와 함께 길을 걸어갈 때나 차를 타고 갈 때면 할머니께서는 종종 나에게 길거리에 있는 간판을 읽어보라고 하셨고 그때 마다 나는 거의 제대로 읽을 수가 있었다. 그러면 할머니께서는 무척이나 기뻐하시며 “아이구, 역시 우리 박사님이야~~”라고 하시면서 기뻐하셨다. 이러한 할머니와의 ‘퀴즈’는 초반의 한글 읽기에서 구구단 외우기, 동물도감에 있는 동물의 이름 맞추기 등으로 점차 영역을 넓혀갔다. 그리고 나는 계속되는 할머니의 칭찬에 점점 더 우쭐해졌고 결국에는 내가 진짜 박사- 다시 말해서, 지적으로 특별히 우수한 사람-인 것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구축된 나의 동굴 속 황제(박사)로서의 지적 허영심은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즉, 남들보다 두루두루 많이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지적 허영심은 이해도 되지 않는 어려운 책을 억지로 끝까지 읽을 때 더욱 잘 나타난다.
이 외에도 할머니께서는 항상 강조하시는 말씀이 있었다. 그것은 내가 우리 집안의 장손이기 때문에 내가 앞으로 집안을 이끌어나가야 할 사람이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누나들보다 우리집에서 더 중요하다는 요지의 내용이었다. 그러한 논리의 근거는 “누나들은 시집가면 그만”이라는 점이었다. 게다가 가끔씩 누나들이 할머니나 부모님에게 “맨날 형근이만 더 예뻐해.”라고 투정부리는 것을 들을 때마다, 누나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긴 하였지만 내가 누나들보다 더 혜택 받은 위치에 있다는 생각이 확고해져갔다. 결국 할머니의 말씀은 자연스레 내 마음속에 새겨지게 되었다.
나는 할머니와의 관계에서 ‘동굴 속 황제’로 자라나게 되었다. 부모님은 내가 ‘동굴 속 황제’로 자라나는데 할머니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영향을 끼쳤다. 이는 부모님과 함께 있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훨씬 적었다는 점과 두 분 모두 할머니보다는 내 요구사항을 들어주는데 이성적으로 대하셨다는 점에 기인한다. 하지만, 두 분 역시 누나들보다 내가 중요하다는 것을 끊임없이 강조하셨다는 점에서는 할머니와 동일하다.
이것은 내가 누나들보다 우위에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였다. 그리고 이는 후에 내가 가지게 되는 남성이 여성보다 우위에 있다는 사고의 기반이 된 것이다. 물론 나는 평소에는 “남녀는 평등하다.”라는 주장에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좀 더 구체적인 사실이나 나의 이해와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일이 발생할 경우에는 금세 남성우월주의적인 태도로 돌변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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