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팔꿈치 사회’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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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팔꿈치 사회’를 읽고
우리나라가 지난 일세기동안 아주 역동적인 시절을 지나오고 난 뒤 우리의 사회는 다른 나라들보다 더 강해지고, 더 잘 살기 위해서 ‘새마을운동’, ‘금모으기운동’등을 통해서 우리의 경제를 일으켜 세웠다. 그동안 배운 것이 바로 ‘경쟁’이었다. 우리나라가 강대국들 사이에 끼여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쟁’을 통해서 살아남아야 했다. 나는 이 책을 읽다가 이야기 하는 교육적 경쟁에 주의 깊게 읽어 보았다.
어느 TV프로그램에서 경쟁을 비판하는 영상이 있었다. 유럽의 스웨덴이라는 나라의 이야기인데, 우리나라와 굉장히 상황이 비슷하다. 700년간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적은 자원과 강대국들 사이에서 ‘생존’이라는 최우선의 과제를 가지고 어린아이의 작은 재능으로라도 이용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였다. 하지만 당시 우리나라를 비롯한 수많은 나라들이 선택한 교육방법은 바로 ‘팔꿈치 사회’에서 저자가 이야기하는 경쟁의식이었다. 그저 ‘더 많은 인재를 키우기 위해서는 학생들 간의 경쟁을 강화시켜야 한다’는 취지로 경쟁의식을 부추기던 지난세기의 교육정책으로 지금 현대 사회는 서로를 눌러야만 정상에 서는 불합리적인 방식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점점 사교육비는 늘어만 가고, 지나친 교육에 대한 열정과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로 이 사회가 몸부림치고 있다. 하지만 핀란드는 이에 반대로 우열반을 폐지하고 교실에서의 경쟁을 없애고 협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일단 성적표에서 등수를 없앴다. 등수가 괜히 사람의 경쟁 심리를 일으키고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마치 오늘은 못했지만 내일은 잘할 수도 있고, 수학은 못하지만 국어는 잘할 수 있는 건데, 우리가 너무 몇 번의 시험가지고 우열을 매기는 것 자체가 학생과 국가에 비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핀란드가 세기가 지나도 바뀌지 않는 교육원칙인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경쟁이 아닌 협동을 무기로 삼아 더욱 더 ‘실용적인’ 방안을 찾아내었다. 과연 학교에서 경쟁만을 배우고 협동을 배우지 못한 학생들이 사회의 미래를 책임져야 한다면 그 사회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가?의 문제인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의 현실만 보아도 집안의 가정환경과 부모의 능력에 따라서 아이들의 출발점이 달라지고 있다. 같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고 하지만 어떤 아이는 이제 학업을 시작하고 있고, 어떤 아이는 벌써 정상에 도착해 있는 현실을 볼 수 있다. 시골에 사는 아이들은 교육적 환경에 대한 불평등으로 인해서 서울지역권의 유명 대학에 입학하기에 어려운 상황이다. ‘농어촌 특별전형’과 같은 정책들을 교육부에서 만들고 있지만 정작 사회는 더욱 피 튀기는 경쟁 의식이 일어나고 있다. 반면에 서울의 강남권에 사는 아이들은 이미 초등학교 때 고등학생의 과정까지 모두 마치고 외국의 대학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추어 볼 때, 절대로 공정한 경쟁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다. 핀란드는 이미 학교에서의 경쟁을 금지하는 국가로 유명하다. 예를 들어 핀란드는 성적표에 등수가 표시 되어 있지 않다. 등수 대신에 각자 자신의 수준에 맞게 설정한 목표를 얼마나 달성했는지를 표시한다. 그러므로 핀란드에서 말하는 것은 경쟁 대상은 친구가 아니라 ‘내 자신’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수능시험처럼 핀란드도 9년의 교육과정을 마치게 되면 딱 한번 일제고사를 본다. 이 시험을 통해서 낙오자를 없애기 위해서 부진아를 가려내어 차별을 한다. 더 잘하는 사람을 위한 차별이 아니라 더 못하는 사람을 위한 차별인 것이다. 그들을 위해서 교육비 예산을 1.5배 가량 더 사용하여 그들을 낙오자로 끝내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위해서 국가가 더욱 더 노력한다. 우리나라는 그들을 마치 인생의 실패자인 마냥 재수생이나 고졸로 끝내버리며 나라에서는 이에 대해서 더 이상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핀란드는 오히려 그러한 차별들을 통해서 서로간의 격차를 줄이려 노력한다.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학생 간의 학업성취도 편차로 유명하며, 국제학업성취도 평가에서 가장 순위가 높다. 그 다음 2위가 우리나라이다. 경쟁은 경쟁을 낳아 결국 유치원생들까지 경쟁의 소용돌이에 말려들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국민들에게 설득력이 있게 들렸고, 학교는 좋은 시민이 되기 위한 교양을 쌓는 과정이다. 그리고 경쟁은 좋은 시민이 된 다음의 일이다. 이와 같은 예를 보면 가정환경과 부모의 능력에 대한 차이로 애초에 공정한 경쟁이란 자체는 있을 수 없다. 학교의 성적표에 나타난 등수로 그 사람의 수준을 평가할 수 없으며, 정작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목표치에 얼마나 달성하였는가 이다. 그리고 경쟁상대는 친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며, 차별은 차이를 넓히는 것이 아니라 좁히는 도구로 사용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국가는 잘하는 학생들보다 잘 못하는 학생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나친 경쟁으로 이 책의 제목대로 서로의 팔꿈치를 누르면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팔꿈치 사회’를 낳게 되었고, 우리는 웃으며 공부하기 보다는 울며 공부하고 있다. 현대사회에서의 ‘경쟁’은 필수불가결한 원칙이 되었고, 현대인에게 ‘스트레스’는 잔열물로서 가장 큰 적이 되고 있는 현실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우리 모두가 더욱 더 잘 살기 위해서 노력하는 과정이라고 할지라도 과연 우리는 이것이 잘 사는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아야 한다. 최근 들어 유명 카이스트 대학에서도 여러 학생들이 자살을 하는 사건들을 볼 수 있다. 우리들이 소위 말하는 ‘공부 좀 하는’ 학생들이 그렇게 원하던 학교에 가서 자살을 하는 모습을 볼 때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경쟁하는지에 대해서 의심이 간다. 계속되는 무한경쟁 속에 인간성은 점점 사라져가는 현실을 볼 때, 과연 이 방법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해 의심이 든다.
저자는 연대와 협동을 통해서 이 경쟁사회의 고리를 풀어갈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이러한 경쟁의식이 바탕이 된 사다리적 구성보다는 원탁적 구성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쟁체재 속에서 스트레스 받고 힘들어하는 비효율적인 교육정책에서 더 나은 방향을 가기 위해서 이제는 협동을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