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육식의 종말
1. 들어가는 말
과거 파르메니데스에서부터 출발한 서양의 동일자(同一者)의 철학에서는 존재자의 배후에 존재하는 유일(唯一)한 일자(一者)로서의 존재에 대한 탐구인 이른바 존재론에서 벗어나지 못했었다. 물론, 근대 철학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는 데카르트 이후에 중세의 ‘신(神)’중심의 철학에서 ‘이성(理性)’ 중심의 철학으로 이행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신 중심의 철학에서 ‘신’이 ‘이성’으로 대체되었을 뿐이지 결국에는 부동(不動)의 동자(動者)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가 파르메니데스(Parmenides)의 부동의 일자(一者:the One)를 발전시켜, 움직이지 않는 초월적 세계와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상계의 원리를 조화롭게 연결시키기 위해 찾아낸 존재 또는 개념을 일컫는다.
를 추구하는 것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이성의 인식으로 세계를 파악하면서, 그 외부에는 무엇도 남기지 않으려 하는 전체성(全體性) 이러한 전체성이라는 개념은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전체성이 아니라 엠마누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에 있어서 타자성(他者性)에 반대되는 개념의 전체성을 말한다.
이라는 서양 철학의 전반을 관통하는 특성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양 근대 철학은 세계를 주체와 객체의 이원론(二元論)으로 파악하고, 기계론적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부분의 합(合)은 언제나 전체와 일치한다는 환원주의에 빠지게 되었다. 이러한 근대적 시각은 결국 산업혁명을 통해 인류가 현대에 누리고 있는 물질적인 문명의 발전을 가져왔지만, 그 반대급부로 인간의 발전 과정 속에 지구의 생태적 순환을 인위적으로 조작방해하면서 급속도로 피폐해지는 생태계와 그로 인한 이상 징후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러한 근대적 세계관에 대한 반성, 즉 기계론적, 이원론적, 환원주의적인 근대 이성에 대한 반성으로 이성 중심으로써의 인간을 벗어나려는 노력이 시도되기 시작한 것이다.
근대 이성은 세계를 파악할 때 항상 자아(自我)와 타자(他者) 간의 대립으로 보았고, 이런 관점에서 타자는 극복되어야 할 대상으로 인식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게 있어서 상대적 타자인 자연은 극복되어야 하고, 정복되어야 할 대상이었다. 이러한 대결적이고 배타적인 인식구조는 결국에 현대의 빈부의 차이와도 무관하지 않고, 자연 파괴에도 일조를 하였다. 또한 실질적으로 이러한 자아 중심의 인식의 결과물로 육식 중심의 식사 습관과 이에 따른 생태적 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본문에서는 이러한 육식의 문제를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의 「육식의 종말」에서 다루는 ‘소(牛)’를 중심으로 다룰 것이다.
2. 육식의 발달
소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최초로 길들여졌는데, 처음에는 종교적 의식의 희생물로 이용되었다. 수메르 사람들은 수소 신을 폭풍의 신 엔릴(Enlil)로, 그의 배우자를 달의 여신 닌릴(Ninlil)로 받들었다. 해마다 토양을 비옥하게 만드는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이 범람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이 두 위대한 신들이 결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제레미 리프킨, 「육식의 종말(BEYOND BEEF)」(신현승 옮김, 시공사, 2002), p.26
이후로 오랫동안 소는, 특히 황소는 남성다움의 화신으로, 그리고 힘의 상징으로 인류에게 숭배 받아왔다. 이것은 선사시대의 벽화에서 나타난 소의 모습에서부터 로마 미트라교에서 나타나는 황소 신 등에서도 알 수 있다.
이러한 소는 시간이 흐르면서 서구문명에서 숭배의 대상보다는 점점 부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특히 영국에서의 소는 특별한 의미를 가졌다고 할 수 있었다. 우수한 품종의 소는 영국 지배 계급의 부와 명성을 나타내는 물질적 상징이 되었으며, 예로부터 소는 영국인의 부를 상징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로마 시대의 카이사르도 “소가 브리튼인 고대 영국 남부에 살던 켈트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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