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퀴스 드 사드의 소돔 120일을 읽고 소돔 120일 줄거리 소돔 120일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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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퀴스 드 사드의 소돔 120일을 읽고 소돔 120일 줄거리 소돔 120일 독후감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마르퀴스 드 사드의 소돔 120일을 읽고
인간은 영장류의 일종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포유류 중 인간만이 변태의 기질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매스컴에서 “친족 성폭행” 기사를 접하게 된다. 특히 애비가 딸을 그것도 몇 년간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자행하는 금수만도 못할 짓을 이 시각에도 하고 있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어린 숫 사자가 얼굴에 갈기털이 어느 정도 자라면 집단을 지배하는 대장 수컷에 의해 쫓겨난다. 근친상간을 예방하기 위한 동물들의 본능이다. 동물도 이럴진대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 할 인간은 온갖 상상할 수도 없는 다양한 변태성욕을 자행한다. 특히 변태의 일종인 “소아 기호증(어린아이를 보면 성욕을 느끼는 변태 성욕자)” 변태들은 현재에도 전 세계에 다양하게 사고를 치고 있다. 하물며 이 책의 내용에 나오는 변태들은 200여 전이지만 실상은 수 천년 전부터 인간은 아동에 대한 변태성욕을 자행해 왔었다.
학대를 통해 성적인 쾌감을 얻는 가학증, 학대음란증의 다른 이름이 사디즘[sadism]이라는 사실은 평소 심리학이나 성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보통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이 사디즘의 어원은 무엇일까. 바로 프랑스의 문학가인 마르퀴스 드 사드의 이름이다. 그는 다양한 소설 외에도 희극, 콩트 등 다양한 작품활동을 펼쳤는데, 내가 읽은 소돔 120일(Les Cent Vingt Journees de Sodome)은 방탕과 신성모독으로 생애의 1/3 이상을 감옥에서 보낸 그의 마지막 소설이다.
또한 이 소설은 그의 다른 작품들이 18세기 후반에 발표된 것과는 달리 1904년이 되어서야 세간에 알려졌으며, 그의 작품이 기존 체제에 대한 반항적 면모로 높게 평가된 것도 이 즈음의 일이다. 그의 파격적인 소설은 다양한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기도 했는데,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는 이 소설을 가지고 (1975)이라는 영화를 제작해 파시즘과 결부시켜 원작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기도 했다. -물론 영화는 국내에 출시되지 않았으나, 창작적인 소스에 대한 무분별한 사용으로 인해 인터넷에서 쉽게 파일을 구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보지 않아서 알 수 없지만-
사드와 그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으로 하고, 내가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아마도 호기심이었다고 생각된다. ‘아마도’라는 추측이 붙은 것은 내가 이 책의 존재와 사디즘이라는 단어의 어원을 안 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오래 되었기 때문이다. 사디즘에 대해 막연한 포르노적인 이미지와 상식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 ‘평범’한 사람으로서 누군가를 학대하는 것이 어떻게 쾌락의 장치가 되는지 조금도 이해할 수가 없었고, 이해하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기괴하고 이상한 것, 변태적인 것, 도착적인 것, 비정상 등의 단어로 수식하며 내게서 멀리했을 뿐이다.
이야기는 네 명의 호색한-혹은 변태-들의 소개로부터 시작한다. 그들은 재력과 권력을 지닌 기득권층이며, 그 힘을 이용해 갖가지 기행을 벌이고도 법의 심판으로부터 무사했을 뿐만 아니라, 더욱 본격적인 외도(外道)로 나아가고자 계획한다. 그것은 한적하고 인가로부터 먼 곳에 저택을 짓고, 미색이 뛰어난 소년 소녀들을 데려와 여러 가지 음란한 행위들을 하는 것이다. 그들은 항문성교를 즐기고 난교를 벌이며 종교를 모독하고 인분을 먹거나 먹이고, 채찍질하고, 손가락을 자르고, 가죽을 벗기며, 부러뜨리고, 내장을 꺼낸다. 납치되거나 팔려온 소년 소녀들은 이곳에서 네 호색한들의 욕망에 가련하게 희생되며, 결국에는 끔찍하게 살해되고 만다. 그것이 이 소설의 큰 맥락이다. 소돔 120일에는 갖은 방법으로 학대당하던 소년 소녀들이 힘을 합해 헨젤과 그레텔처럼 악인을 응징하고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다는 우리가 흔하고 당연하게 느끼는 해피 엔딩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네 호색한의 끔찍하고 잔악한 취미생활에 희생되는 약자가 있을 뿐이다.
나는 독후감을 위해 이 책을 읽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단지 시기상 맞아떨어졌을 뿐이다-몇번이나 독서를 그만두었다. 719페이지에 달하는 많은 내용은 이미 에로스보다는 고어나 엽기(국내 정서에 맞춘 의미가 아니라 지극히 단어 본래의 의미에 충실한)였고, 대체 이런 파렴치한 책을 다 읽어서 내게 무슨 득이 있단 말인가! 라고 자문할 만큼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는 말이 그야말로 딱 알맞았다. 책을 손에 쥐고 있던 한동안, 나는 정말로 슈뢰딩거의 고양이였다.
중간 이상쯤 겨우겨우 읽다가, 나는 책을 반납할 결심을 하고 학교로 다시 책을 가져왔다. 그러다가 수업시간을 기다리며 시간때우기 용으로 몇페이지를 더 읽으면서 나는 이전에 읽었던 잔혹동화와 마리 앙트와네트의 추문을 다룬 책을 떠올렸다. 18세기. 지금과는 달리 배고픔과 오염으로부터 분리되지 않아 죽어가는 이들은 넘쳐나던 사회. 그리고 사치와 낭비, 유흥을 일삼던 기득권층의 권리만이 강요되던 시대에 소년소녀들의 인권에 대해 논하는 것은 늑대에게 풀만 먹고 살라는 것 만큼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일 것이다. 비판적인 읽기는 몰입에 방해가 될 뿐이라는 사실을 상기하고, 나는 다시 독서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