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hink the Great Depression)
제1장 세계대공황에 무너진 호황
1929년 3월 4일은 월요일이었다. 그 날 허버트 클락 후버는 제 31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했다. 공화당이 다시 열렬하게 지지받던 시절로 돌아갔다. 후버는 ‘만연했던 가난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말했다. 그는 선거유세 때 매 끼니마다 닭고기를 먹고 누구나 자동차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1929년 초여름부터 미국의 경제활동은 눈에 띄게 부진해지고 있었다.
1920년대의 경제성장
후버가 공약을 당시 상황에 고려한다면 실현 가능했을 수 있다. 1919년 당시 165만 8천여 대를 생산하던 자동차 회사는 1929년 생산량이 3배나 증가하여 450만여 대 가량 되었다. 정말 자가용을 소유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었다. ‘냄비마다 닭고기’ 공약 또한 1923년 1929년 사이에 12.6%나 증가하였다. 같은 기간 미국의 인구는 1억1190만 명에서 1억 2180만 명으로 증가하였다. 상품생산량도 그 사이에 23.5%나 증가했다.
자동차가 늘어남에 따라서 교차로에 자동차들이 많아지고 처음에는 교통경찰이 도로정리를 하다가 신호등이란 것도 나와서 자동으로 해주었다. 도로포장공사 계획도 확대되었고, 여가에 대한 열망은 높아졌다. 1920년대에 이동조립라인 기술은 다른 자동차 생산자들과 다르게 많은 제품의 생산에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프레드릭 테일러와 포드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이 개척한 시간동작연구(time and motion study: 작업 시간과 작업 동작의 상간관계 연구) 덕분에 노동생산성이 더욱 증가했다. 수천가지 항목들이 개선되면서 생산성은 계속 해서 증가했다. 동시에 거의 모든 사람들의 소득도 늘어났다.
쇠퇴한 산업들
1920년대 전반적인 경제발전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은 불확실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무렵 곡물 농업은 해외의 수요가 늘어나 급격히 가격이 상승했다. 1917년에서 1919년 사이의 혼란스럽던 시기에는 농장에 전망이 좋아져 농민들이 추가로 땅과 기계를 구입하게 위해 돈을 빌렸다. 하지만 유럽의 농업생산성이 급속히 전쟁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면서 농산물 가격은 하향세로 돌아섰다.
석탄 산업도 예외는 아니었다. 너무 높은 생산성과 수요의 급락은 석탄 산업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낮은 가격은 곧 광부들에게는 적은 수입과 불확실한 고용을 의미했다. 석탄 사용도 줄어들고 전기와 기름 가스사용은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쇠퇴하게 되었다. 이런 동적인 시기에 어떤 산업은 성장하는 반면 다른 산업들은 쇠퇴하기도 했다.
세금, 소득분배와 주식시장의 붐
당시 제 1차 세계대전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세수확대의 주요 원천으로 소득세를 이용했다. 1914년 4000~6000달러 최저세율은 1%였지만 1918년에는 6%가량으로 급상승 했다. 마찬가지로 1914년 75만 달러 초과 최고 세율은 7%였지만, 1918년 이후는 75만 달러의 초과한 소득의 최대 76%까지 세금을 내야 했다. 전쟁이 끝날 무렵에야 낮아지긴 했지만 인하하는 수준에는 논쟁이 여전했다. 연방정부는 1920년 내내 흑자를 누렸고 이러한 흑자는 세율이 낮아졌을 때에도 유지되었다. 최고 소득 납세자들이 생긴 덕분에 총 연방소득세의 예산 분배는 최고 소득 납세자 들이 절대적인 세율 인하를 누렸음에도 10년 내내 증가했다.
1924년에는 보통주의 주가가 오르기 시작하더니 역사상 가장 폭등한 주식시장이 열리면서 주가는 1920년대 말까지 계속해서 올랐다. 1929년 가을에 주가가 폭락하기 전까지 주가는 치솟았다. 주식시장은 붕괴되기 전까지 미국인들이 현기증을 느낄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회사를 소유하면 주가상승을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게 확실해지자. 합병작업과 새로운 주식발행이 가속화되었다. 어떤 경우에는 증권대부금의 이자가 새로운 투자의 예상수익보다 많기까지 했다. 왜 주식시장의 붐이 시작되고 폭등했는지에 대한 답은 없다. 투기성 투자자들이 현금은 조금만 투자하고 매수가의 70~80% 이상을 빌렸다. 그 돈으로 주식을 사서 주가가 오르기를 기다렸다가 팔았다. 이렇게 해서 남은 차입금이 이자를 포함해도 상회하는 수익률을 거뒀다. 증거금을 빌려주는 것만으로 주식시장을 붐을 설명할 수 없다. 그러다가 1929년 초여름부터 시작된 경기침체로 예상수익은 감소했고, 이는 월가에도 영향을 미쳤다. 1929년 9월 3일에 다우존스지수는 최고치인 381까지 올랐다가 이후 기록적인 대폭락으로 1932년 까지 줄줄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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