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감상문 ‘역사를 살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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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독서보고서]
‘역사를 살다’를 읽고
근현대사는 조선시대까지의 역사보다 기간은 짧지만 알아야할 것이 너무나도 몇 배로 많기 때문에 평소에도 좋아하지 않았다. 커다란 사건들만 외워두고, 나머지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하는 것이 태반이었다.
나는 역사를 승자의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한신과 기장의 역사는 우리가 한신에 발을 들여놓지 않으면 접하기 어려운 기록이다. ‘한신 신학’하면 지금도 어른들은 데모하는 골치 아픈 이미지이다. 때문에 내가 한신에 대해서, 기장의 역사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과거 우리의 역사는 단지 정치에 무턱대로 반기를 들고 긁어 부스럼만 만든 문제아의 기록이 될 뿐이다.
진정한 한신을 들여다보고 올바른 정신을 갖기 위해서는 ‘역사를 살다’를 꼭 읽어봐야 할 것이다. 사실 많은 학생들이 신학에 대해서는 많은 탐구와 고민을 하지만 그 뿌리에 대해서는 가볍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기장과 한신이 걸어온 길을 살펴보게 되어 스스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Ⅰ. 새 시대를 꿈꾸는 창조적 소수자
조선신학교(현 한신대학교)가 세워지기 전부터 지금의 우리를 만들어주신 소수자들의 노력의 흔적이 기록되어 있다.
장로회는 분단 이후 남한 교회에서 1946년 6월 12일에서 13일까지 남부 총회를 열었다. 이 총회는 통일을 기원하고 남과 북이 하나 된 총회를 그리워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또 신사참배를 범과로 인정하였다. 그리고 조선신학교 출신 교역자들에게 정통성을 부여했고, 여성 장로직의 설정을 통일까지 유보하였지만 여성 지도력의 중요성을 인정하였다고 평가된다.
조선신학교는 1940년 설립 때부터 보수주의자들에게는 자유주의 신학이 본거지, 친일 교육기관으로 매도되었다. 그러나 조선신학교는 교육이념에도 밝혔듯이 ‘자유주의 신학’을 지향하지 않았고, ‘신학의 자유’를 지향하였다. 그리고 평양장로회신학교가 폐교하는 시기에 맞물려 조선신학교가 개교하자 이를 친일적 성향이라고 주장하지만 조선신학교는 1930년 초부터 송창근을 비롯한 진보적인 교회 지도자들에 의해서 조선신학원 기성회 조직은 이미 구상되어 있었다. 단지 공교롭게 일치하였을 뿐이다.
조선신학교가 정통성을 인정받고 어느 정도 기반을 갖추어갈 무렵 평양장로회신학교가 폐교되고 편입한 51명은 조선신학교를 정통 신학 노선에 맞지 않는다고 총회에 항의 서한을 내었다. 37회 총회에서는 성서무오설과 고등비평 연구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하여 조선신학교는 정통성을 박탈당하였다. 38호헌 총회를 시작으로 기장은 출발했고,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를 교단의 공식 선교 신학으로 밝히고 지역 사회, 노사, 인권 문제 등 사회 선교를 위한 교회 갱신의 다양한 구조를 제시하였다.
희년을 맞이하여서 기장은 몇 가지 항목들에 관하여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반성하고 새로운 각오를 다져야 한다. 첫째로 일제 식민지하에서 오지 교육을 위해서 일본 교육 정책에 순응했다는 점이다. 이유야 어찌 되었던 이 때문에 친일적인 반민족 교단이라고 평 받았다. 둘째로 해방 후 조선신학교 건물의 무상 소유권 문제이다. 교육적 목적을 위한 것이라 해도 희년의 정신에 비추어볼 때 정당한지 의문이다. 희년을 맞이하여 사회적인 환원을 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장 공동체 안의 권력지향적 형태 문제이다. 민주화, 인권, 통일 운동을 통한 하나님 나라 실현에 앞장서 왔던 우리의 목적이 현실의 권력 획득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민중과 멀어지고 교회주의로 담을 쌓고 기득권층의 보호막 속에 안주하는 우리를 경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