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개론 - 무신들의 섬 제주 - 제주지역사회의 구조와 변동 - 독후감
제주도가 육지와 격리되어 지내온 것이 제주문화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육지와 멀리떨어진 위치는 육지와의 교류를 힘들게 했고, 그로 인한 고립은 사회관계와 자원의 제한으로 이어진다. 이는 연구에서 가장 많이 떠올려야 했던 부분일 것이다. 교류가 많지 않았으니 제주에 들어온 문화가 육지의 원형과 비슷하단 장담도 없고, 인간관계가 섬 안으로 제한되다보니 문화의 전파를 생각해보아야하기 떄문이다.
인구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제주도민의 인맥은 거의 비슷비슷하다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생산력이 넘쳐나는 곳은 아니기 때문에 섬내에서의 어촌, 농촌, 산촌의 교류는 반드시 필요했을 것이고 그로인해 인간관계는 섬내 전체로 넓어진다. 이러한 구조는 협력을 주요한 관념으로 삼는 경우를 만드는데, 그 경우 섬내 주민들의 단체활동이 많아지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민간신앙의 표현방식인 굿도 주민들의 활동으로 안녕을 바람과 동시에 주민들간의 화합을 원했을 것이다.
민간신앙은 일제강점기에 신사참배 강요로 위기에 처했다고 서술되어있다. 그리고 조선의 중앙정부와 거리가 멀어 정책이나 포고문 같은 것이 제주도에 알려지기에 시간이 걸렸을 것이고, 일본인에게 피해를 입어도 그것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기 때문에 손해를 그대로 받아냈다. 일제의 마지막에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 제주도를 요새화할 때도 동원된 인력은 제주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존속이 어려웠을 것이다.
4.3사건은 민간신앙만이 아니라 수많은 방면의 피해를 제주민에게 입혔다. 인명피해는 셀 수 없을 정도였는데, 그 명단에는 무당도 포함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중산간위로 생산활동이 안 이루어졌기 때문에 경제적 피해조차 있었을 것이다. 힘든상황일 수록 민간신앙이 활기를 띠어야 할 텐데, 무당이 죽고, 군의 감시가 있어서 모일 사람이 적기 때문에 그것이 여의치 않았을것이다.
현대에 제주도의 문화는 서구화되어 있는 육지와 다름이 없다. 개인주의가 들어오면 이웃관계에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아파트가 자리잡고 각자 다른 일터에서 일을 한다. 그로인해 인간관계는 직장중심으로 가고 마을단위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육지와의 교류가 자유로워지고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제주도 안에서 협력하며 시장을 이룰 필요성이 적어졌기 때문에 생산관계도 많이 사라진다.
또, 문제점은 과학이 발달하면서 보통 사람들도 수 계산에 능통하게 되고 합리적으로 사고하게 된다는 것이다. 개인주의의 팽배는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지는데, 사람들은 눈앞에 보이는 것 말고 믿지 않으려고 하는 성격이 생긴다. 자연히 민간신앙만이 아니라 모든 종교에 대해 부정적이 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유명한 굿판이 아니면 잘 알지도 못하고 개인적으로 굿을 하는 경우는 또 드물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책에서는 그 영향을 상당히 적게 본다. 합리성증대의 한계를 그 이유로 말한다. 제주도민이 겪어온 경험이 그 증거인데, 가장 중요한 경험으로 4.3을 겪으면서 이데올로기에 대한 의식을 확고히 갖게 된다. 도내에 있던 소수의 사회주의자로 인한 무고한 도민의 희생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4.3의 원인 또는 악역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주의자들을 원망하는 마음이 다른 지역들보다 강하기 때문에 반공의 성격이 짙다. 그러한 감정들은 합리성을 증대시키기보다는 어느 한편에 치우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개인적 집단주의라는 용어가 쓰이는데, 집단에 속한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집단을 동원하는 형태의 집단주의를 말한다. 사회의 합리화로 개인주의가 많이 들어왔지만, 아직 농업사회와 공존하는 형태를 갖고 있으며, 인맥제한으로 집단 결속이 굳게 잡혀있던 사회였기 때문에 전통적 요소들이 많이 섞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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