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 맨발의 기붕이 그의 일생일대의 도전
-나이 마흔살의 지체장애인 엄기봉씨는 지금도 성장중이다.
2006년도에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직관하고 나와서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이것은 극중 엄기봉씨의 순박함과 나이 일흔 남짓한 노모에 대한 그의 효심에 대한 것이었다. 영화는 실제 인물 ‘엄기봉’씨의 마라톤도전기에 대한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되었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외관적으론 그다지 집중력과 흥미를 이끌만한 스토리가 아니지만 관객들이 몰입하기에 충분했다. 주목할 점은 기봉씨의 마라톤에 대한 애정이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마라톤’ 뿐만이 아니라 어머니에 대한 애정, 마을사람들에 대한 애정까지를 모두 포함할지도 모른다. 이는 기봉씨가 마라톤에서 우승해서 이가 약하신 노모를 위해 틀니를 마련해주고 싶다는 말을 여러 번 한 것과 마을 이장님을 비롯한 마을 주민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었음을 고려하면 무리도 아니다. 아버지가 없는 기봉씨는 마을 이장님에 심적으로 신적으로 많이 의지하게 되는데, 그런 이장님도 기봉씨의 마라톤 전담 코치를 하겠다 자처하며 구원투수로 나서는 등 인간적으로 순박한 기봉씨를 지켜봐오며 아버지의 역할도 대신 하는 등 물심양면 힘쓰는 분이시다. 신체 나이는 마흔을 훌쩍 넘지만 정신연령은 열 살 정도의 발달수준을 가지고 있는 기봉씨는 달릴 때만큼은 아무 걱정 없이 해맑게 열 살로 돌아가 달린다. 어쩌면 그가 달리기 자체를 좋아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는 지도 모른다. 그에게 있어 마라톤이란, 단순히 ‘달리기’ 를 넘어 세상에 대한 그의 질시, 편견, 손가락질들을 잊고 그들에게 자신의 잠재된 가능성을 표출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물론 여기엔 이장님에 대한 고마움이 먼저 자리한다. 물론 처음의 시작은 마을사람들의 등떠밀림과 반신반의의 기대감이 절반씩이었지만 어찌됐건 기봉씨에게 마라톤을 접하고 계속할 수 있게 해준 이가 이장님 이었던 것이다. 그는 이장님을 단순히 자신의 ‘코치’ 이상으로 의지한다. 앞서 말했듯 열 살 남아 정도의 지능을 가진 기봉씨로선 다만 막연한 기댐과 의지였겠지만 그 이유모를 감정은 그도 점차 성장하면서 자신이 느끼지 못했던 ‘부성애’ 였음을 그도 깨달을 것이다. 극중에선 이장님 또한 자신의 철없는 친자식과 대비한 기봉씨의 순박하고 효심어린 모습에 기봉씨를 더욱 의지하는 모습을 비춘다. 특히 건강상의 이유로 기봉씨가 마라톤을 그만둘지도 모르는 위기에 처했을때 이 둘이 나눈 진솔한 대화는 이들 간의 관계가 얼마나 깊이있는지를 짐작케 한다. “네 엄마 죽고나면 너 혼자서 살아야 되는겨. 이젠 아니여. 네가 절대 남들과 다르지 않다는걸, 아니 남들보다 훨씬 낫다는 걸 내가 보여주고 싶은겨” 라는 이장님의 말에서 이들의 진솔함에 기초한 유대관계는 극대화된다. 또한 기봉씨는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 보란듯이 정상인들도 완주하기 힘든 마라톤 코스를 완주해낸다. 이 장면은 영화를 관람중이던 관객들로 하여금 모종의 짜릿한 전율을 느끼게 한다. 영화에 몰입해 있던 관객들로서도 그 동안 기봉씨의 완주 여부에 대해 가타부타 말많았던 무리들을 일순간 고요하게 하는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물론 사범대에 재학중인 학생으로서 교직에의 꿈이 있다면 앞으로 여러 특수학생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중학교 또는 고등학교의 특수학급이든 특수학교의 특수학급이든 간에 말이다. 그렇다면 이 쯤에서 영화에서 등장하는 지체장애인인 기봉씨를 비롯, 그 동안에 여러 장애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사고의 틀은 어땠는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전혀 아무런 가치 판단이 개입되지 않은 가치 중립적 사고를 했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이번 수업을 수강함으로써 직접 방문했던 특수교육개관에 대해서도 당장 각종 편견에 사로잡혀 있던 우리들이었다. 일회성의 봉사활동을 다녀온 후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었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인격체였다, 그들의 감정에 대해 더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 등의 느꼈던 점을 운운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보다 더 체계적으로 그들과 함께 소통하고 우리 사회의 전면으로 데리고 들어와 그들에게 정말 ‘평범한 삶’ 을 운용할 수 있게 하는 제반 조건을 마련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비단 우리의 인식 전환에 대한 반성뿐 아니라 제도적 대안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극중 기봉씨가 하고 싶었던 ‘마라톤’에 대해 최소한 금전적 문제로 이들이 하고싶은 일을 포기하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사회엔 대부분의 장애를 앓고 있는 이들이 경제적 사정이 좋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니, 경제적 사정이 좋지못한 장애우들이 더욱 부각되어 우리를 안타깝게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이를 해결할 방안 중 하나로 정부가 군·읍·면·리 단위로 행정구역을 세분화하여 잘 교육된 사회복지사들을 투입, 이들로 하여금 마을주민 한명 한명과 소통하게 함으로써 이들의 어려운 사정을 정부에 대변하게 하는 정책을 제안하는 바이다. 장애우들과 더불어 소외계층에 대한 우리 모두의 편견을 깨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제도적으로서 보완하는 것이 완성됨은 결국 장애우들을 향한 우리의 진정한 한 발자국의 발돋움을 의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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