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홍등 인물들의 도덕성에 관해
간단히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이렇다. 1920년대 중국. 송련(공리)은 대학을 중퇴하고 계모의 강요에 못이겨 지극히 봉건적인 가문인 진대감댁에 넷째 첩으로 들어간다. 진대감은 네 명의 부인 중에 매일 한명을 택해 잠자리를 같이하는데 선택당한 부인의 처소에는 그날 밤 홍등을 밝히는 가풍이 조상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다.
이 영화에는 여러 부인과 민대감의 아들,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주인공인 송련과 셋째부인, 민대감의 도덕성에 관한 나의 생각을 쓰려고 한다.
우선 송련은 집안 형편 때문에 중퇴를 했지만 대학 교육을 받은 여성이다. 그렇다면 개화기의 새로운 지식을 공부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부잣집의 네 번째 첩으로 들어가 종을 부리며 사는 모습이 이중적이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며, 세상이 변하고 있는 걸 배우고 알면서도 자신이 기득권에 속하게 되자 기존의 전통적인 생활 방식을 따라 산다. 송련이 부리는 몸종 역시 첩이 되어 아랫사람을 부릴 수 있게 되는 신분상승을 꿈꾼다. 이것을 안 송련은 몸종조차도 경계하여 호되게 일을 시키며 끝내는 쓰러져 죽게 만든다. 몸종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놀라며 죄의식을 느낀다. 그러나 얼마 후엔 ‘몸종 하나쯤이야’라는 식으로 무감각해진다. 봉건적인 집안의 분위기가 송련의 도덕의식까지 무감각하게 만들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련이 처음에 대감댁에 들어올 때는 도덕적 의식이 확고했다. 대감을 모시는 부인이 홍등을 걸고 발안마를 받는 특혜를 이상하게 여길뿐더러 거의 팔려오다 시피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집안의 분위기에 익숙해져 발안마를 받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서 몸종에게 발안마를 시키는 지경에 이르고,(발안마를 받게 하는 이유도 남편을 잘 모시게 하기 위함인데..) 한번이라도 대감을 더 모시려고 임신을 했다고 거짓말한다.
그러나 셋째부인의 죽음을 목격하고는 (자신의 실수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식인의로서 양심을 회복하고 놀이개로 전락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미쳐버리는 것 같다(미친 척 한 걸 수도...)
내가 생각할 때 이 영화에서 셋째부인이 가장 인간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인간 내면에 가지고 있는 질투, 미움, 사랑 등의 감정을 숨김없이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넷째 부인인 송련이 들어왔을 때 가장 심하게 질투하며 미워한다. 그래서 송련과 대감을 모시기 위한 묘한 경쟁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송련의 거짓 임신이 밝혀지고 홍등을 영원히 달 수 없게 되자 송련을 가장 잘 이해해 주었던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셋째 부인은 대감의 첩임에도 진대감댁의 주치의와 불륜관계이다. 셋째부인은 대감으로부터 선택받기를 기다리면서 그 기다림을 다른 사랑으로 메꿔간다. 물론 불륜은 도덕적으로 옳지 못하다.(따라서 다른 사랑이라고 말하기엔 억지스러움이 있긴 하다) 하지만 지독히도 봉건적인 분위기의 민대감댁의 첩으로서, 지극히 수동적인 자세로 살 수 밖에 없었던 셋째 부인의 탈출구였다는 생각이 든다. 부인과 첩들을 대감의 선택만을 기다리는 놀이개감으로 여기는 민대감을 향한 도전의 방법으로 민대감 집안의 주치의와 불륜을 저지른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원수는 집안에 있다?) 불륜을 저지른 셋째 부인을 손가락질 하기 전에 민대감의 봉건적 사고방식을 먼저 비난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남편과 부인의 1:1의 대등한 관계가 성립되었을 때 어느 한 쪽이 불륜에 빠진 것을 도덕적으로 옳지 못하다고 비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우리 사회가 일부일처제를 인정하고 있으므로..) 꼭 1:1의 관계가 아니더라도 영화에서처럼 모든 부인을 쭉 세워 놓고 그 중에서 “오늘은 셋째부인“식으로 물건 사가듯이 선택하는 대등하지 못한 관계에서의 불륜은 비난의 정도가 낮아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대감이 다른 첩을 들이는 것 자체가 또 다른 불륜이니 말이다. 따라서 민대감의 하인들에게 죽임을 당한 셋째 부인은, 여성에게만 지조가 강조되었던 봉건사회의 희생양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민대감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민대감은 부자라고 첩들을 돈으로 사들이는 것 같다.(영화에선 직접적으로 돈으로 첩들을 사는 것이 표현되어 있지 않지만, 나는 형편이 어려운 처자들이 부잣집에 첩으로 들어오는 것을 곧 돈에 팔려 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민대감의 이러한 행동은 여성을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노리개로 여기는 거라고 생각한다. 전통사회가 많은 첩들을 허용했듯이 당시의 사회 역시도 일부다처제가 어느 정도 허용되던 때이긴 하다. 하지만 그 당시의 중국은 개화, 개혁의 물결이 높아서 급속도로 사회가 변화하고 있었다. 일부다처제라는 제도는 그 당시 사회 구성원들에 의해 만들어진 관습일 것이다. 따라서 사회가 새롭게 변화하고 있었다면 민대감은 새로운 사회에 맞는 새로운 관습을 따랐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민대감은 여성도 하나의 인격체로 여겨지고 기존의 구습들이 철폐되어져 가는 사회 변화에 둔감했다. 아니 모른 척 하려고 했던 것 같다. 여성을 수동적인 존재로 보고, 노리개감으로 생각하는 구시대적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했고, 애써 그러려고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셋째부인의 불륜 사실을 안 후, 자기집의 꼭대기방에서 죽일 수 있는 과격성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도덕적으로도 결코 깨끗하지 못한 민대감이 셋째부인의 죄를 물어 죽일 자격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다. 이러한 민대감의 태도가 셋째부인의 죽음을 목격한 송련을 미치지(미친척?) 않고는 살 수 없도록 숨통을 죄어갔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의 배경은 중국이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며 빠르게 변화해가는 때이다. 그래서 등장인물들이 가치관의 혼란을 많이 겪고 있는 것 같다. 옳다고 믿는 것에도 쉽게 행하지 못하고, 남들이야 어떻게 되든 자기의 이익만을 챙기려 드는 성향들이 강하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도덕성의 발달에 사회적 배경이 크게 작용하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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