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만 되면 마을 곳곳에서 제사를 하지요. 저희 집도 얼마 전 제사를 했습니다. 아침부터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제사준비를 합니다. 아버지에게 물었죠. “아빠 오늘은 무슨 제사야?” 아버지는 할아버지 형제분들 제사를 하는 거라 하셨습니다. 어렸을 적에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습니다. 왜 할아버지 형제들 제사를 하루에 같이하는지 조금도 궁금하다 생각한 적이 없었지요.
4.3사건 행사에 가는 아버지를 보면서도 저는 4.3을 6.25와 비슷한 전쟁에 하나이겠구나 하고 생각해왔습니다. 그 후에도 그 이유는 궁금하지 않고 당연스럽게 받아들여져 왔습니다. 나와 상관없는 아주 옛날 옛적 이야기인가보다 그렇게 가볍게 생각했었던 것입니다.
그런 저에게 얼마 전 아주 힘든 일이 있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위암말기판정을 받으시고 3개월의 시한부를 끝으로 눈을 감으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 4.3사건을 겪으며 받았던 고통은 할아버지가 눈 감던 그 순간까지 괴롭혔습니다. 암세포가 온몸에 퍼져서 그 고통이 마약성 진통제로도 막지 못할 때, 치매와 비슷한 증상처럼 정신을 놓으시고는 연신 ‘어머니! 어디가세요 어머니!’ 계속해서 찾으셨습니다. 어린 시절 4.3사건 때 도망 다니다 형제들이 눈앞에서 총에 맞아 쓰러져 죽어가는 것을 보았고 그 부모도 자신을 두고 도망을 가는 상황에 어린 시절 할아버지 마음속에 상처가 얼마나 컸을지 그전엔 알지 못했습니다. 전쟁이 날것이라며 두려움에 떨며 빨리 도망가야 된다고 제 손을 잡으셨습니다. 할아버지는 그때의 그 두려움을 잊지 못하시고 지금까지 안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4.3사건 안에는 이유 없이 희생된 피해자와 살아서도 산 것이 아닌 피해자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 마지막을 지켜보는 저로서는 4.3의 그 가슴 찢어지는 억울함과 말 못할 고통에 너무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현기영 소설 에서 순이삼촌이 환청증세에 시달리는 모습에서 그 당시 살아남은 사람들이 평생 가지고 가야했던 그 아픔을 너무나 공감했습니다.
제가 이제껏 생각해왔던 모습보다 4.3은 더욱 끔찍하고 잔혹했습니다. 과연 이게 정말 사람이 한 짓이 맞는가? 라고 생각될 정도로 잔인했습니다.
기념관을 둘러보며 말문이 막힐 정도로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것도 다른 나라가 아닌 우리나라 군인들에 의해 제주인들의 말도 안 되는 희생이 너무나 끔찍했습니다. 전기고문, 물고문은 기본에 사람을 거꾸로 메달아 놓고 매질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힘없는 여성을 겁탈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까지 학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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