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의 아름다움에 관하여)
매 순간 우리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다르다. 중세에는 절대적 존재에 대한 아름다움을 느꼈을 것이고,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에는 르네상스를 통해 인문주의의 아름다움이 다시 떠올랐다. 그리고 끊임없는 과학의 발전 또한 아름다움을 나타냈을 것이고, 현재 우리는 자본의 아름다움을 느낀다. 물론 지금 말하는 아름다움이 진정 아름다움을 뜻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표현도 그들의 속성 또는 어떤 면에 대해서 말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진정 아름답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모든 인류의 만국 공통적으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 있다고 하여, 그것이 과연 아름다움일까? 남성에겐 여성, 여성에겐 남성, 그리고 제 3의 성을 가진 자에겐 그들만의 아름다움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가 똑같이 느끼고, 똑같이 반응하며, 똑같은 기준에 대해서 이루어지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진정으로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이를테면 ‘사랑, 행복’과 같은 추상적이지만, 늘 우리가 바라고 우리 일상에서 떠나지 않는 관념들, 또는 ‘오늘, 내일, 지금 이 순간’과 같은 시공간을 아우르는 어떠한 개념들, 또는 ‘창조, 파괴’와 같이 본질적으로 같지만 그 극면이 다른 것들, 그것도 아니라면 ‘사람, 예술작품, 자연, 언어’와 같은 어떠한 대상들을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있을 때, 나는 오히려 “모든 것이 다 아름다운 것들인데 그것에 대해서 내가 느끼는 방법과 정도는 다르다.”라고 느꼈다.
쉽게 이야기를 하자면, 음악을 들을 때 내가 느끼는 행복과 음식을 먹을 때 내가 느끼는 행복, 그리고 멋진 작품 또는 광경을 볼 때 내가 느끼는 행복은 다르다. 통합적으로 행복에 대한 물리적인 정도를 정해서, 음악을 들을 때 나의 행복은 90점이며, 음식을 먹을 때는 95점, 멋진 것을 볼 때 느끼는 것은 100점이라고 기준을 두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을 세부적으로 들어가자면 내가 소주를 먹을 때 느끼는 행복과 맥주를 먹을 때 느끼는 행복 또한 다 세부적으로 나뉘어야하는데 ‘그 중 어떤 것을 가장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는 것이 나의 고민이었다.
이러한 고민 속에서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진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확고한 대상 또는 의지가 있는 것인지 혹은 과제를 하기 위해서 말로서 표현하기 쉬운 것 중에 하나를 고를 뿐인지 아니면 나처럼 이러한 고민을 하고 있는지 말이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통해서 나온 것인가?’, ‘아름다움에 대한 확고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나는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인가?’, ‘아주 지극히 어려운 문제는 수많은 아름다운 것들 중에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을 정할 수 없는 것이 문제인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등의 여러 물음 속에서 내가 내린 해답은 더 근원적인 것을 찾아가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을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나의 대상에서 좀 더 포괄적 대상으로 생각을 해보았고, 포괄적인 대상에서 어떤 것 때문에 내가 하나를 정하기 곤란한지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의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인지 고민을 하였다. 결론은 ‘차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 모든 문제가 발생하였고, 차이라는 것이 여러 가지 아름다운 것들을 만들어낸 것이며, 그렇다면 차이가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결론을 지었다.
차이의 아름다움 대해 설명하기 전에 내가 고민한 아름다움에 대한 개념을 알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아름다움이란 아름답다의 명사형이며, ‘보이는 대상이나 음향, 목소리 따위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눈과 귀에 즐거움과 만족을 줄 만하다.’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대상, 음향, 목소리를 인식하는 것도 나 자신이며, 균형과 조화에 대한 기준을 재고, 그것에 대한 즐거움과 만족을 얻는 것도 나 자신이다. 이렇게 ‘아름답다’라는 형용사의 사전적 의미에서 볼 수 있듯이, 아름다움 또는 아름다운 것이란 극히 개인적으로 느끼는 느낌이다. 여러 사람이 어떤 작품 또는 사물이나 관념에 대해서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아름다움이라는 그 자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느끼는 사람들이 비슷한 느낌이나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한 느낌이나 감정을 3차원적으로 표현하자면, 개개인이 느끼는 높낮이, 넓이 혹은 부피에 차이가 있다. 그러한 것이 완벽하게 같을 수는 없으며, 우리는 이러한 점에서 차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에 대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차이는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아주 가까운 예로 연애를 하는 상황에서 찾기가 아주 쉽다. 나의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지금 여자 친구와는 사귄지 1년하고도 반년이 다 되었다. 나는 지금 여자 친구가 아름답다고 느낀다. 하지만 여기에는 차이가 존재한다. 여자 친구가 아름다운 것은 외적인 부분만이 아닌 내적인 아름다움도 전부 포함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완벽해야하지만 여자 친구가 아름답다고 해서 다른 사람 또는 다른 사물이 아름답다고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다. 조금 순화해서 말하자면 여자 친구가 아름답지만, 나의 어머니도 아름답고, 해질녘의 노을빛도 아름다우며 요즘 내가 즐겨듣는 가요도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여자 연예인을 보면서도 아주 아름답다고 느낀다. 이러한 차이로 인해 절대미와 상대미라는 것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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