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복지론 - 영화 감상문 - 사랑의 기적
*영화의 줄거리
어린 시절, 또래 아이들과 어느 때처럼, 놀던 주인공 11살의 레너드는 의자에 나이프로 이름을 새기다가 갑자기 손이 떨리는 증세를 느끼게 된다. 그 이후로 손은 다시 움직여졌으나 레너드는 이름을 쓰는 것조차 힘들어 졌음을 점점 느끼게 되고, 학교의 역사학 테스트 시간에는 시험의 답조차 제대로 쓰지도 못하게 된다. 이후 레너드는 손에 힘이 없고 떨게 되고, 제대로 손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친구들과 놀지도 못하게 된다. 레너드의 과거는 여기까지 였다. 그리고 전환된 시점, 1969년 브롱크스에 있는 만성질환자병원인 베인브리지병원의 신경학부에 지원한 말콤 세이어박사가 오게 되고 나서 이야기는 다시 시작된다. 하지만 세이어박사는 그가 원하는 신경학부의 연구와는 달리 정신과 의사를 맞게 된다. 영화에서도 말해주듯이 베인브릿지병원은 정신질환자, 투렛증후군, 파킨슨병, 심지어 병명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수용되어 있는 곳이었다. 그들은 평소에 앉아 있는 시체처럼, 누가 말을 시켜도 반응이 없으며 몸을 밀쳐도 반응이 없다. 보통 30~40년을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이였다. 그러다가 세이어박사는 공을 던지면 그 공만은 놀랍도록 받아내는 모습을 관찰하고, 또 환자의 이름을 불러주거나 음악을 들려주거나 인간적인 접촉을 통해 환자들의 정신을 깨울 수 있으리란 믿음을 갖게 된다. 환자들의 증상들을 파악해 봤을 때 파킨슨병 증세와 유사한 점을 파악하고 파킨슨병환자에게 효과가 있는 엘도파약을 투여하여 치료할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세이어박사는 항상 엄마가 옆에서 책을 읽어주고 있고 어떤 감각적인 자극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레너드를 만나게 된다.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않는 레너드와 대화를 나누는 그의 어머니에게 세이어박사가 잠자고 있는 아들과 의사소통이 가능하냐고 묻자, 그의 어머니는 “아이가 없다면 의사소통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 할 거예요.”라고 말한다. 레너드의 어머니는 자신이 아들과 대화한다고 믿기 때문에 아들이 그녀에게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이고, 또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이었다. 세이어박사는 부작용에 대한 병원측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시험적으로 레너드에게 엘도파를 투약하게 되고 투약을 받은 레너드에게 예전처럼 말도 하고 글도 읽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난다. 삶의 환희를 느낀 레너드는 세이어박사에게 일상적인 삶과 사랑의 소중함을 이야기한다. 레너드가 호전되었을 때 병원측에 자유롭게 산책하길 원하는 것이 좌절되자 세이어박사에게 저항을 하고 환자들을 선동하는 과정에서 약의 부작용으로 인해서 과대망상, 안면경련, 발작을 하게 된다. 레너드를 잠시 동안 사랑했던 연인 폴라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폴라는 경련으로 몸을 떠는 레너드를 안고 춤을 추며 그를 안정시켜준다. 세이어박사의 헌신적인 치료에도 불구하고 병세는 점점 더 악화되어 결국 다시 예전상태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다시는 1969년 그 해 여름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세이어박사는 브롱크스병원에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영화감상문
영화의 제목만으로 영화의 내용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처음시작은 약간은 루트한 느낌이 있어서 졸리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거의 방치되다 싶던 환자들을 세이어박사의 관심과 헌신적인 사랑과 집념으로 영화 한 장면 한 장면 에피소드들이나, 세이어가 실마리를 풀어가는 장면 장면들, 그리고 실화를 바탕으로 그린 의학 영화라는 것이 영화에 더 흥미를 느낄 수 있었고, 사람과 사람사이에 정이 느껴지는 따뜻한 영화였다. 세이어박사의 레너드를 향한 헌신적인 사랑과 레너드어머니의 아낌없는 사랑이 없었다면 레너드는 어두운 잠에서 영원히 깨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레너드의 엄마 모습속에서도 역시 부모의 자식에 대한 대가없는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정상인이 아닌 자식을 돌보는데는 사랑만으로는 안 되는 부분이 아마도 많을 것이다. 경제적인 측면이나 사회적인 부분 역시 만만치 않을 것이다. 레너드의 엄마 상은 우리에게 가족의 의미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가장 힘든 사람은 아마도 병을 앓고 있는 본인이겠지만, 그런 그를 평생 동반자로 생각한 레너드의 어머니는 세이어박사의 임상실험을 사랑하는 아들에게 행해야 하는 어려운 결정도 하였다. 그러나 레너드가 병세가 호전되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어 여자에게 관심을 가졌을 때, 어머니는 아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행복한 일이지만, 평생 간호를 했던 아들에 대한 섭섭함을 나타냈다. “언제나 착하고 정직했던 아이였다”라고 말하는 모습에서 레너드를 아직도 30년 전 어린 아이의 레너드로 바라보고 아들의 ‘있는 그대로’를 보려고 하지 않았고, 약하지 않은 레너드를 어른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잠들어 있던 옛날의 레너드를 희망하게 되고, 그런 것들이 레너드와 그의 어머니를 힘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레너드의 병이 다시 재발되는 과정에서 레너드의 어머니가 그를 도와 달라 의사들에게 애원하는 모습을 보며 나 자신 또한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써 한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가 없었다. 30년 동안 잃어버렸던 아들을 짧은 시간이나마 다시 찾을 수 있었고, 다시 찾았던 아들을 재발되는 병세로 인해 온 몸이 다시 굳어버린 성인의 아들을 침대에 눕혀 기저귀를 채우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너무나 마음이 아팠고, 살아있다는 자체... 평범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일깨워주었다.
또, 병원에서 의사와 간호사의 협력이 잘 이루어지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환자의 회복을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주고 슬픈 일도 함께 슬퍼 해 주는 모습에서 이것이 진정한 병원의 모습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으며, 세이어박사의 노력의 결실은 물거품으로 돌아갔지만, 환자들을 치료하는 동안 움직일 수 없고, 말을 할 수 없는, 환자들도 똑같은 사람이고 그들도 사랑받아 마땅할 권리가 있고 기쁨, 사랑, 아픔을 느낄 수 있는 인간이라고 말하는 세이어 박사... 병원의 정해진 룰만을 따르지 않고 환자의 입장을 고려하는 세이어박사를 보면서 미래의 전문사회복지사를 꿈꾸며 사회복지를 실천하기 위해 공부하는 우리들에게 클라이언트와의 관계에서도 그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지식과 기술을 개발하고 클라이언트의 권익옹호를 최우선의 가치로 삼고 행동해야 하며 클라이언트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존중한다는 측면에서 이 영화를 미래의 사회복지사들이 꼭 한번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이어박사의 정성과 애정으로 일시적으로 기적이 일어났을 때, 그들이 겪어야만 했던 혼란감들은 너무나 컸을 것이다. 기쁨도 크지만 잃어버린 세월에 대한 상실감의 크기가 너무나 큰 그들..하지만 잠시 동안이라도 삶의 환희를 맛보면서 사랑을 나누고 소중히 여기는 그들에게서 나는 그동안 나태한 내 삶을 돌이켜 보며 반성했다. 잠시 동안 사랑이라는 감정이 찾아온 레너드에게 또 다시 병세가 시작되어 발작이 생길 때, 레너드는 카메라로 자신을 찍어두라″눈물 흘리며 못하겠다는 세이어박사에게 연구해달라, 자신을 위해 연구해 달라″며 울부짓는 레너드의 모습과 자신의 몸에 일어나는 경련을 자신도 통제할 수 없다며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며 함께 아파하고 고통스러워 하는 세이어박사의 인간적인 모습은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자신이 더 이상 못 이겨 낼 것 같아서 잠시나마 사랑했던 여인 폴라에게 이별을 고하고... 착한 폴라는 레너드에게 한번도 춰보지 못했던 춤을 같이 춰준다. 지금 이글을 쓰면서도 너무나 아름다운...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들의 댄스가 아른거린다. 사랑의 마음이 만들어 줄 수 있는 춤의 향연에 오랜만에 나도 순수한 눈물을 오래도록 흘린 것 같다. 사람들은 삶이 뭔지, 산다는 게 무언지를 잃어버렸다. 그들이 누릴 수 있는 게 뭔지 뭘 잊고 있는지.. 삶의 기쁨을 느끼고 있고, 인생의 자유, 삶의 경이로움을 안겨줘야 한다며 흥분하던 레너드가 그토록 원하고 바랬던 소중한 삶, ‘내가 헛되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이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다.’라는 말을 가슴에 다시 한번 새겨본다.
인간의 정신은 어떠한 약보다 강하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는 세이어박사의 말처럼... 정말 강인한 정신으로 세상을 살면서 삶의 소중함을 잊지 말고 살아야하겠다. 사랑의 기적... 아름다운 언어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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