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꿈치 사회』 에 대한 독서 보고서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현실 가능한 삶인가?”
서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 시대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자본에 의해 잠식당하여 무한 경쟁 체제를 통해서 더 많은 자본을 창출시키기 위해 모두를 혹사시키고 있다고 저자는 책 전체를 통틀어서 계속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이를 한 단어로 잘 표현한 것이 독일에서 처음 쓰였던 ‘팔꿈치 사회’이다. ‘팔꿈치 사회’는 팔꿈치로 옆 사람을 치며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치열한 경쟁사회를 잘 표현해주며 결국에는 자기 자신에게 마저 냉정해질 수밖에 없도록 이르게 만든다. 또한 이런 사회 속에서 개인은 느끼는 여러 가지 감정들에 솔직해지기 보다는 자기 자신을 숨기고 도피하기 위한 피난처로서 경쟁에 빠지게 되고 만다. 단순히 시대를 분석하는 데 있어서 표면적이고 통계적인 분석을 넘어서 그 메커니즘을 밝히는데 있어서 저자의 심리적이고 입체적인 측면의 접근은 많은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이 책을 통해서 독자로 하여금 여기에 있는 문제점들이 다른 이가 아닌 바로 나의 문제임을 깨닫게 해주고, 수동적으로 경쟁의 굴레 속에서 계속해서 익숙해져만 가는 삶에 대해 경각심을 불러일으켜주며, 거기서 더 나아가 능동적으로 그리고 주체적으로 이 삶을 바꿔나가야 함을 고취시키기 위한 저자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가 되나 그가 이야기하고 있는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과 같이 모색 해나가고자 하는 부분들이 과연 이 시대의 사람들이 받아들이기에 충분히 납득가능하고, 현실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서 많은 물음표가 생겼다. 실제로 책 속에서 청소년의 학업 스트레스와 관련하여 교육에 대한 강의나 토론 후에 만난 많은 학부모들도 그의 이야기의 현실성에 많은 의문부호를 표했음을 알 수 있다. 저자의 해결책은 그의 에필로그에 잘 나와 있듯이 이를 요약해보면 ‘삶의 질 중심 구조조정’, ‘시스템의 단계적인 경쟁의 탈 내면화’, ‘사랑의 원탁형 사회’, 그리고 마지막으로 운동의 출발점은 ‘나부터’ 그리고 ‘더불어’라는 소주제 그대로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빛 좋은 개살구’라는 속담처럼 과연 이것이 얼마나 그가 의도하고 의미하는 바만큼의 실속이 있는지에 대해서 계속해서 의문이 생겼다. 그리고 과연 저자는 문제에 대한 인식만큼이나 얼마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따라서 본론에서는 그가 이야기하고 있는 여러 가지 사회적 쟁점들과 그 해결방안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나가면서 그가 말하고 있는 내용들이 얼마나 실현가능한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며, 더 나아가서 가능하다면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접근하여 그 연관성을 찾아보고 그 해결책에 대해서 같이 모색해보고자 한다.
본론
쟁점 1. 대한민국 교육에 대하여
수능 시험에서 국사 과목이 선택과목으로 채택되면서 해가 갈수록 국사를 선택하여 공부하는 학생의 비율이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기본적인 한국사에 대한 지식조차 모르는 어떤 중학생의 우스운 대답조차 있었다. 이러한 인식 속에서 TV속 예능프로그램에서조차도 한국사 공부에 대한 필요성을 고취시키기 위해 프로그램을 기획한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사실들은 한국 교육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이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수능과목에 국사과목을 필수로 넣는다 해도 결국에는 암기 위주의 시험 성적만을 위한 공부로 인해서 결국에는 또 다른 문제를 양산시킬 것이다. 암기 위주의 입시 교육, 우리나라 교육 현실을 드러내주는 말이다. 결국에 19년 동안 공부하는 모든 것이 대학 진학을 위한 공부이고, 대학 진학을 위한 공부는 더 나은 취업 자리를 위한 공부이며, 좋은 직장에 취직한다는 것은 이 사회 속에서 기득권, 즉 자본 사회에서 자본과 권력은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상류층에 소속되는 것을 뜻한다. 물론, 이러한 교육 현실 속에서 환멸을 느끼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이러한 피폐한 교육 환경을 개혁하고자 하는 생각은 있지만 결국에는 현실의 벽 앞에서, 누구나 으레 하듯이 불평하면서도 순응하며 살아간다. 저자가 경제의 내면화를 이야기하면서 ‘정서적 프롤레타리아화’를 이야기한 배경과 그 과정 역시 동일하다. 강력한 경제 현실 속에서 나 자신을 ‘강자와 동일시’하면서,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내면의 요청을 받아들이듯이, 교육 현실 속에서도 느끼는 모든 것들을 뒤로 한 채 현실에 매이게 된다. 5년동안 교회에서 청소년부 교사로서 또 총무로서 봉사하면서 청소년들과 많은 이야기와 고민들을 나누었다. 그들 역시도 어떻게 보면 피해자로서 이러한 교육 현실 속에서 억압받고 아무 꿈도 없이 그저 의미 없이 공부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잘못된 것임을 다같이 인식하면서도 명확한 이야기도 해줄 수 없음에 많이 안타까웠다. 나 자신부터도 학창 시절에 그저 같은 반 친구들, 그리고 같은 학년 친구들을 경쟁 상대로 여기면서 더 나은 성적을 받기 위해, 그리고 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치열하게 공부했던 경험이 있기에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보통 청소년들에게 “꿈을 가지라”고는 외치지만 내가 보기에 이것은 단지 이상적이고 어떻게 보면 무책임한 권면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미 이러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서 이미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교육 현실은 꿈을 가질 수 없도록 청소년 아이들을 바쁜 일상 속에 가두어 전혀 그들의 미래와 적성을 위해 생각할 시간을 만들어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 현실 속에서 저자는 해결책을 제시하기에 앞서서 진정한 교육과 대학에 대한 의미를 되새겨주고 있다. 학생은 나날이 자라는 인격체로서 존중받아야 하고 교육은 공동체 안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와 사회성을 길러주어야 하며, 학교는 극히 일부 사람의 성공을 위한 통로가 아니라 모든 이가 사람답게 살기 위한 삶의 장소로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교육의 기본적이며 이상적인 존재 의의와 그 목적에 대해서 무지하기 때문에 지금의 사태에 이르게 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자본주의와 맞물려서 어떻게 보면 교육도 그 안에서 자본주의에 맞추어 그 모습이 변질되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저자는 단순히 공동체성을 강조하며 인성을 강조하는 다소 원론적인 해결책에 머물고 있음에 그 한계점을 지적하고 싶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의도가 단지 이 시대에 자본주의에 잠식당하는 경제 현실과 그로 인해 파생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분석함으로써 경종을 울리고자 했다면 문제가 없지만 해결책 또한 제시하고 있음으로 보아 현실적 대안에 대해서 충분히 같이 공감하며 함께하자는 취지 역시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어떠한 단계적 목표 설정보다는 원론적이며 이상적인 이상향 제시는 마치 플라톤이 이데아를 이야기 했듯이 결국에는 우리가 도달할 수 없는 현실상만을 이야기함으로써 오히려 더 큰 좌절감과 괴리를 느끼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서두에서도 이미 이야기했듯이 그의 강의와 토론을 함께 한 많은 학부모들은 속 시원한 마음 보다는 불안감을 더 느꼈을 것이다. 조금 더 구체적인 방향 설정과 단계적 방안들을 제시했으면 하는 안타까움 속에서도 저자가 이야기하는 그 이상적 교육 현실의 가능성을 우리 후손에게라도 보여주고 싶은 마음 또한 있었다.
쟁점 2. 더불어 살아감에 대한 논의
현재 내가 봉사하고 있는 안산에 있는 거성교회는 뚜렷한 사명을 가지고 있다. 거성교회의 모토는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이다. “네가 없으면 내가 못살고 내가 없으면 네가 못사는 삶”이 매번 목사님께서 설교 시간에 강조하시는 말씀이다. 또한 여러 가지 뚜렷한 교회의 특징이 있는데 첫 번째로 거성교회는 모든 이의 교회로서, 두 번째로 지역을 위해 필요한 교회로서, 세 번째로 24시간 항상 문이 열려 있는 교회로서, 네 번째로 독거노인과 노숙자를 위한 무료급식을 하는 교회로서, 마지막으로 지역 사회의 모든 행사에 적극적으로 교회이름으로 참여하기 원하는 교회로서 이야기될 수 있다. 결국에 이것들이 의미하는 바는 교회는 지역사회, 즉 공동체를 위해서 존재근거를 가질 때만이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소위 몇몇 교회들이 단순히 교회 이름을 알리고 전도 목적을 위해 홍보하기 위한 시도와는 구별 되어야 함을 항상 강조한다. 그렇다. 더불어 살아감은 쓰인 언어 그대로의 의미 이상으로 구체적 계획과 목적 안에서 엄청난 노력이 있을 때에만이 가능한 삶이다. 다시 말해서 그 사회를 구성하는 이들의 주체적 참여와 제반적인 모든 사항들 속에서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만이 이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룰 때 현실 가능한 삶이다. 그래서 항상 교회에서는 신앙적 결단과 헌신을 위한 말씀으로 요한1서 3장 18절 말씀을 이야기한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바로 이것이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살기 위해 기독교적 관점에서 실현할 수 있는 모습일 것이다. 또한 예수님이 이 땅에 전하셨던 ‘하나님의 나라’와도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일 것이다. 저자가 이야기하고 있는 공동체적 삶은 마치 초대교회 시기에 공동체적 삶을 살았던 이들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었다. 예수님께서 곧 재림하심을 믿고 기다리던 그들의 나눔의 삶,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는 저자가 이야기하고 있는 ‘확장된 자아의 삶’, 즉 더불어 살아감을 위한 기독교적 모형으로서 그 생각을 실체화하고 구체화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
쟁점 3. 사랑, 평화, 우정, 환대에 대한 논의들
저자는 기본적으로 그의 논조를 전개하면서 개인의 감정과 느낌을 매우 중요시하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삶의 목적도 개인의 행복이라는 것으로 보아 개인의 질적 삶에 대해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아마도 현재의 시스템 속에서 황폐해지고 단순히 도구나, 상품화로 간주되는 인간의 존엄성 훼손에 대한 반발일 수도 있고 혹은 원래의 인간의 존재 목적으로서 응당 그래야만 함을 보여줌에서 일수도 있다. 그리고 개인에서 멈추지 않고, 사회 안에서 공동체성을 강조함으로써 이러한 개인의 행복 역시도 타인의 불행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함께 하는 삶을 통한 개인의 행복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 나오는 주요 개념들이 바로 사랑, 우정, 환대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그는 8장에서 세상의 삶을 이끄는 원리를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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