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기 레포트
20@@년 여름방학 나는 군 입대를 앞둔 친구들과 함께 군대 가기 전 마지막 뜨거운 추억을 남기기 위해 여행을 가려고 생각을 했다. 무슨 여행을 할지 고민을 하던 중 기차여행을 할까 제주도여행을 할까 고민을 하다가 뜨겁고 색다른 경험을 쌓으려고 자전거여행을 하려고 결정을 했다. 나도 그때는 학군단 최종발표를 앞둔 시점이라 마음을 비우고 친구 2명과 함께 3명이서 서울-부산 자전거여행을 계획했다. 그리고 방학하자마자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준비물은 자전거와 옷가지 가방 그리고 자전거용품과 고등학교 지리부도책, 초코바3개와 물통, 현금조금과 체크카드 이었다. 우선 출발은 나와 친구 한명은 도봉구 창동에 살고 다른 한명은 영등포구 문래동에 살아서 문래동으로 가려고 했다. 자전거여행에 필요한 모든 물품(자전거부터 전조등, 후미등, 팔 토시, 수리세트 등)은 미리 셋이 같은 것으로 샀고 밤중에 둘이서 자전거를 타고 문래동 까지 가서 다음날 오전 중에 본격적으로 출발하려고 했었다. 그래서 밤 12시에 창동에서 출발을 했는데 1시반 쯤에 한강에 도착했다. 한강의 야경은 정말로 너무 아름다웠다. 그러나 길을 잘못 들어 문래동이 아닌 정 반대쪽으로 가고 있어서 다시 돌아가느라 매우 지치고 시간이 많이 낭비되었다. 그런데 또다시 길을 잘못 들어서 우린 결국 새벽 4시에 이태원 쪽에 있는 찜질방에서 대충 잠을 2시간가량 자고 문래동으로 출발을 했다. 그리고 문래동에 아침 11시에 도착을 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매우 오래 걸렸다. 우리는 거리만 생각을 했지 도시에서의 신호등을 생각을 못 한 것이다. 그리고 엉덩이에 멍이 다 들었다. 그래서 세 명 모두 문래동에서 출발하기 전 안장을 최고급 안장으로 교체하고 출발을 했다. 오후 4시경 우리는 안양천을 통해 시흥ic에서 1번국도로 갈아타서 의왕을 지나 수원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생각한 것보다 속력이 안 나왔지만 그런 것을 지각할 틈이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도심지라서 신호등이 워낙 많기 때문에, 속도가 저조했음) 그리고 수원에 도착하기 전에 수원에서 사촌동생이 마중 나와서 길을 알려주고 같이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밤11시쯤 다시 화성 쪽으로 출발을 했는데 우리는 결국 수원역이 좀 지난 곳에서 밤을 보냈다. 이때 많이 충격을 먹었던 것이 수원역 수원광장 바로 앞에 있는 조그만 샛길에 소위 말하는 창녀촌 골목이 있어서 매우 놀랐다. 이런 큰 거리에 사람들이 많이 다니고 바로 앞에 큰 수원역사가 있는데 골목이 온통 빨간 불빛 이라니,, 그리고 다음날 화성을 지나 남쪽으로 향하는데 대전 150키로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그리고 오산을 지나 4쯤 달려 평택에 도착을 했는데 폭염주의보가 내려서 점심시간대에 냉면을 먹고 우린 피시방으로 향해 경로도 점검하고 휴식도 취할 겸 해서 들렸다. 그리고 오후 3시쯤 마스크를 추가구매하고 자전거를 타는데 여태까지의 인도와 차도가 있는 도로랑은 다른 인도가 없는 도로가 나왔다. ‘이제부터 시작 이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자전거를 타는데 차도에서 갓길로 달리려니 좀 무서웠다. 그렇게 우리는 묵묵히 달리다가 저녁쯤 천안에 도착을 했다. 천안에서 저녁으로 해장국을 먹고 나서 가려는데 매우 신기했던 것이 천안이라는 도시가 신기했다. 도로를 달리는데 풍경은 완전 시골 이었다. 그러다가 신호등을 하나 건너니 소규모 도시정도로 보이는 도시가 나오는데 (창동정도) 거기서 몇 블럭 더 들어가면 천안 터미널 이 있는 곳에 8차선 대로가 하나 있다. 그 대로 양옆으로는 인도가 있는데 꽤 큰 인도이다. 그런데 사람이 정말 엄청나게 많은 것이다. 마치 명동에 온 것 같았다 그런데 명동은 길이 좁아서 사람이 많아도 별로 많은 것 같지가 않았는데 여긴 길이 큰데다가 사람이 꽉 차서 정말 깜짝 놀랬다. 그 대로 옆에 건물들도 으리으리했다. 그런데 신기한건 그 대로 바로 옆으로만 가면 건물이 낮아지고 사람도 별로 없었다. 그리고 좀 더 뒤에는 그냥 시골의 풍경이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하는 의문을 뒤로한 채 조치원을 향해 페달을 밟았다. 이미 해는 져버린 후였다. 그렇게 8시반쯤 부터 달렸는데 가도가도 끝이 나오질 않았다. 밤에 국도는 매우 어둡고 한적했으며 가게들도 다 문을 닫아버려서 정말 아무것도 없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몇 시간동안 약 40키로를 달려 고려대 세종캠퍼스 앞에 도착을 했고 거기서 자취하는 친구가 마중을 나왔다. 너무 반가웠다. 시간은 밤 2시가 다되었지만 친구의 자취방에서 쉬면서 조치원의 명물이라는 파닭을 시켜먹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순대국을 먹고 초코바와 소금등 비상식품을 다시 정비하고 출발했다. 조치원을 지나서 계속 달렸다 아침 9시부터 계속 쉬지도 않고 달렸다. 우리가 출발한 날부터 계속 매일매일 폭염주의보가 내리고 있었으나 우리는 쉴 틈이 없었기에 복면을 쓰고 계속 달려서 오후 3시쯤 대전에 도착을 했다. 이때부터 내분이 시작되었다. 친구 중 한명이 이제 포기해야겠다고 대전에서 기차를 타고 올라간다고 하는 것이었다. 많은 다툼과 설득 끝에 조금만 더 우선 가보기로 하고 갔다. 만약 여기서 내가 설득당하거나 그 친구가 낙오했다면 이 여행의 의미는 분명히 반으로 반감 되었을 것이다. 대전에서 월드컵경기장을 들어갔는데 개방을 해놓고 있어서 잔디위에도 올라가서 축구선수마냥 포즈도 취해보고 휴식도 취했다. 비록 사람들은 한명도 없었지만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게 개방해 놓은 것이 매우 좋았다. 그리고 대전에서 위쪽이어서 그런지 도시가 건물이 다 새 건물이고 도로도 컷으나 사람이 없었다. 텅텅비어보였다. 그리고 계속 달렸는데 4시간이 넘게 계속 대전에 있었다. 도시를 통과하려고 하니 신호등 때문에 도저히 속도가 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대전에서 4번국도로 갈아타고 열심히 달렸다. 원래 김천까지 가려고 했는데 무리였다. 밤의 도로는 정말 무서웠고 말 그대로 깜깜하고 아무것도 없었다. 식당도 9시가 넘으니 다 문을 닫았다. 우리는 밥을 9시쯤 먹으려고 했는데 국도 옆의 식당들은 다문을 닫는다는 것을 몰랐다. 그리고 대전이 지나서의 4번국도는 소백산맥을 넘는 도로들이었다. 매우 고되고 힘들었다. 초코바3개는 이미 동난지 오래였고 물도 얼마 남지 않았다. 위기였다. 영동을 가는 길에 도로 옆에 포도들이 있었다. 종이로 다 쌓여있었다 우리는 정말 배고파 죽을것 같아서 포도를 몰래 서리했다. 그런데 포도가 딱딱하고 초록색이었다. 설익었으나 너무 배고파서 즙이나마 조금 먹었다. 그리고 죽을힘을 다해 달렸는데 저 멀리서 불빛이 보였다. 영동대교의 야경이었다. 솔직히 중랑천에 있는 다리정도의 규모였으나 야경이 제법 볼만했다. 밤 1시에 도착해서 우리는 밥을 먹고 근처 모텔에서 잠을 잣다. 그리고 자전거에 이상이 있을 때마다 내가 손을 봤었는데 브레이크가 문제가 심해 교환해야 할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 아침을 먹고 수리소를 갔는데 서울과 너무 비교됐다. 같은 김밥천국인데도 음식 값이 서울보다 더 쌋다. 김밥은 여전히 1000원이었고 다른 메뉴는 서울이 가격이 오르기 전에 가격이라 500~1000정도씩 더 쌋다. 그리고 수리소에서도 나사를 푸는데 전동으로 푸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돌려서 풀고 별로 지식도 없어보였다. 지방을 폄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서울과 지방의 격차를 여러모로 느꼈었다.(나중에 대구에서 알았는데 수리도 잘못해놔서 대구에서 있던 수리소아저씨가 이 수리소 아저씨를 욕함) 영동을 지나서 김천을 가려고 하는데 그 도로에서 일주일전에 사람이 죽었다고 해서 무서웠다. 영동에서 출발을 하는 날은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태풍의 여파였다. 김천을 가는 길에 추풍령도 넘었다. 정말 여러 고개들이 있었는데 말 그대로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었다. 힘들었지만 올라갈 때의 인내는 내려갈 때 꼭 보상을 받았다. 김천에 저녁쯤에 도착을 해서 왜관을 가려고 출발을 했다. 하지만 무리였다. 계속 오르막의 코스였고 비도 거세졌으며, 타이어에 문제가 생겨 2시간동안 수리를 했으나 결국 못 고쳤다.(튜브가 나간 것이었음) 결국 우리는 끌고 가려고 했으나 앞으로 도시가 나오려면 최소한 20키로는 걸어야했다. 결국 우리는 밤 11시에 119에 구조신청을 했고 20분 만에 119아저씨가 와서 우리를 도와줬다. 짐차에 실어서 왜관까지 데려다줬다. 정말 우리나라는 복지국가인 것 같다. 비를 맞으며 짐차에 짐과 함께 타고 가니 느낌이 색달랐다. 우리가 그렇게 힘들게 가는 거리를 차는 너무도 쉽고 빠르게 가는 것 같았다. 왜관은 그리 큰 도시가 아니었다 도로도 작았고 건물도 오래돼 보였으나 사람이 많았다. 도로가 크고 건물이 새것인 신도시는 사람이 없었고 도로가 작고 건물이 작은 구 도시는 사람이 많았다. 다음날 우리는 대구로 출발해 같이 출발한 친구 중 한명의 집에 도착을 했다. 거기서 새로 물건도 정리를 하고 정비를 했다. 그리고 지하철을 타고 대구 끝으로 가서 출발을 하려고 했으나 친구아버지께서 차에 태워주셔서 대구 끝인 경산 쪽에 와서 시작을 하게 되었다. 25번 도로를 타고 말없이 밀양으로 향했다. 밀양에 다 도착할 무렵 어떤 짐차에 아저씨께서 우리를 도와주셨다. 우리는 그때 지쳐서 쉬고 있었는데 태워주신다고 하셔서 차를 타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구포역에 도착하게 된다. 하룻밤이 지나고 6일째 우리는 부산에 도착했다. 부산에 친척들의 도움으로 광안리에서 전망 좋은 곳에서 회도 많이 먹고 해운대로 가서 그랜드호텔에서 야경을 감상하며 차도 한잔 했다. 그리고 그날 밤 여행의 끝을 자축하며 술도 마시고 치킨도 시키고 재미있는 밤을 보냈다. 여행을 하면서 느낀 점은 매우 많았다. 가장 큰 것은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것, 내리막처럼 보이는 도로이지만 사실은 오르막인 도로가 많은 것, 즉 세상은 보이는 대로만은 아니었던 것과 사람들의 인심은 그리 좋지만은 않다는 것과 내가 목표했던 곳에 도착 했을 때 그것을 이뤄냈다는 성취감은 대단하다는 것이었다. 자전거는 택배로 보내고 우리는 하루 더 쉰 다음에 서울로 기차를 타고 올라왔다. 기차를 타고 올라오는 동안 자전거를 타고 갔던 길에 종종 보였는데 그때마다 마음에 뭔가 알 수 없는 벅찬 감정이 올라왔었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이 거리를 자전거를 차고 왔다는 성취감과 무엇이든 마음먹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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