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 시계태엽 오렌지 개인의 폭력과 국가의 폭력
- 개인의 폭력과 국가의 폭력
항시 개인은 보이지 않는 사회적 억압이나 정신적 갈등 속에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린 채 방황하게 된다. 인간이 한 개체로서 복잡한 사회 구조 안에 적응해나가기 위해 자아는 변형되고 주체적 행동보다는 형식적 행동을 함으로써 맹목적으로 사회속에 순응해 간다.
어느 사회 내에서든지 억압과 통제는 반드시 존재한다. 개인의 자의든 타의든 간에 개개인이 사회의 통제를 벗어나는 방법이 개인의 성찰, 혹은 죽음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완전히 통제를 벗어날 수는 없다. 그것은 과연 불가능한 것인가?
‘조직화 된 사회 속에서 마치 기계에 일부분처럼 살아가는 인간’이란 사전적 의미가 담긴 제목.
이 영화의 시작은 바로 이것이다.
영국문학가 앤터니 버지스(Anthony Burgess)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으로, 감독과 저자가 공동으로 각본을 썼다. 버지스는 제2차 세계대전중 아내가 미군 병사에게 윤간을 당한 뒤 학살당한 처참한 기억을 바탕으로 현대인의 폭력성을 규명하고자 영화작업에 참여하였다.
한 불량소년이 기계처럼 교화되어가는 과정을 통하여 인간의 본성이 정부에 의해 통제되는 미래사회를 풍자적으로 그리고 있다.
친구들과 어울려 강간과 살인 등의 비행을 일삼던 알렉스(맬컴 맥도웰)는 친구들의 배신으로 교화원에 들어가게 된다. 정부는 새롭게 개발한 루드비코 요법의 실험대상으로 그를 선택하고 실험을 통하여 알렉스는 폭력이나 성적충동을 느끼면 심한 구토를 느끼도록 개조된다. 석방된 알렉스는 예전에 자신이 괴롭혔던 사람들에 의해 잔인한 보복을 당하고 괴로움을 참지 못해 자살을 기도하다가 병원으로 실려간다. 의식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알렉스가 받은 비인간적인 실험의 실상이 공개되자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병문안을 온 정부관리는 신문기자들 앞에서 알렉스의 손을 잡는다. 사방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자 알렉스는 한 여인과의 섹스를 상상하며 자신은 치유되었다고 중얼거린다. 지나친 폭력 묘사가 논란이 되어 영국에서는 수십 년 간 상영이 금지되었고 미국에서는 X등급을 받았으나 뛰어난 작품성으로1971년 뉴욕 비평가협회에서 주는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하였다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봤을 때 세 개의 이야기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가 폭력 성향으로서의 알렉스, 두 번째가 폭력 거부로서의 알렉스, 세 번째가 다시 돌아온 알렉스 일 것이다. 정그럼 이 영화에 나타난 폭력의 정의를 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1. 폭력 성향으로서의 알렉스
달에 사람이 살고 있으나 자동차는 가솔린으로 가는 가까운 미래의 런던.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