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중을 사로잡는 설교의 삼중주 서평
설교의 삼중주는 무엇인가. 그것은 설교의 내용과 구성 그리고 전달기법이다. 삼중주에서 악기 중에 하나가 빠진 것과 같이 설교의 세 가지 구성 중에서 어느 것 하나라도 빠지거나 약하다면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결과를 나타내게 된다.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은 설교의 삼중주가 아니라 이중주 아니면 하나의 악기만을 연주하는 외로운 연주자로 서있음을 우리는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설교 분문을 연구하는 일에만 너무 집착을 한 나머지 듣는 청중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성경연구가, 그리고 설교의 프레임은 탁월하나 부실한 성경 연구와 답답한 전달의 미숙함은 대다수의 설교자들에게 해당 되는 일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신성욱 교수님은 매우 깊고도 친절한 내용들을 구성하고 소개해주심으로 탁월한 그리고 아름다운 설교를 위하여 목말라 하는 현대의 목회자들을 위한 귀한 책을 펼쳐주고 있다.
한때는 목회의 선배님들은 성경을 깊이 연구하는 시간보다는 기도하는 시간이 더욱 많은 시절이 있기도 하였다. 지금은 어쩌면 기도가 부족한 시대이다. 그러나 기도를 성경을 연구하는 시간보다 더 많이 할애함으로 인하여 때로는 성경의 원래 저자의 목적과 현실의 적용을 배려하지 않은 채 영해를 하기도 하는 모습을 가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영해는 저자의 지적과 같이 성령님의 의도하신 것과는 다르게 해석하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인위적인 해석으로 영적인 감동과 만족만 있는 설교는 진정한 성령의 감동을 오히려 약화시키기도 한다는 것이다. 요즘은 이렇게 영해의 오류에 빠지는 설교자는 많이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준비 없는 설교자가 빠지기 쉬운 부분임을 깨닫게 한다. 또한 설교의 준비과정에서 깊은 연구는 때로는 단어의 조잡한 해석과 넓지 않은 협소한 해석을 통한 적용의 연약성이 드러나기도 한다. 이것은 무엇 보다 성경을 연구 하고자 할 때 문맥을 파악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을 제시해준다. 성경해석에 있어서 문맥의 지지를 받고 본문의 원어조차도 문맥을 따라서 해석을 해야 하는 것이다. 문맥은 본문의 분위기와 핵심 메세지를 발견하는데 매우 필수적인 것이다. 때로는 비유로 때로는 은유로 사건 속에 감추어진 보화를 찾는 것은 문맥을 통하여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성경을 연구하는 일에 있어서 영해를 배제하고 때로는 그것이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는 제외 되지만 말이다. 그리고 문맥으로 원어를 해석하고 더 깊은 설교의 연구로 나아갈 때 마지막 화살의 타킷은 적용이다. 저자는 적용에 있어서 합당한 대상에게 올바로 적용할 것을 제기한다. 합당한 대상에게 적용하는 것은 마치 물고기 종류마다 좋아하는 미끼가 다르듯이 청중들이 듣고 변화되고 행동을 유발할만한 구체적인 적용의 대상의 중요성을 언급한다. 오늘날 청중들의 분위기를 대상을 연령을 이슈를 그들이 호감을 가질만한 이야기들을 배제 한 채 선포적이고 일방적인 허공을 향한 적용은 참으로 힘없는 무기와 같은 것이다.
성경연구를 하는 행위를 떠나서 이제 성경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중요성은 모든 성경연구 방향을 말해준다. 관점에 대해서 많은 것을 성경은 보여준다. 내가 어떤 관점을 보는가에 따라서 성경은 다르게 본문을 통하여 설교하게 한다. 그러나 작고 협소한 관점은 큰 의미를 놓치게 한다. 저자는 하나님 중심 관점과 인물 중심 관점으로 볼 것을 제안한다. 보통은 그동안 성경을 묵상하거나 연구할 때 가장 먼저 하는 것은 하나님중심의 관점이다. 이것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이며 어떠한 말씀을 주시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일은 익숙한 일이다. 다른 한가지는 인물중심의 관점은 믿음으로 살아온 믿음의 사람들과 믿음의 영웅들에 관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인물중심의 관점으로 흐른다. 그래서 어느 것 하나만을 고집하기는 다소 곤란한 것 같다. 그러기에 저자는 권성수목사의 성령설교의 집필의 내용과 더불어 주장하길 설교자의 선택의 문제가 아닌 관점은 동시에 두 개를 겸비할 것을 안내해준다. 이것은 설교에 있어서 한쪽만으로 치우치기 쉬운 관점의 문제를 아무 명쾌하게 가르쳐주는 것이다. 관점이 아무렇게나 흘러 가버림으로 터무니없는 편협한 설교자의 실수가 많기에 이것은 매우 중요한 가르침이다.
설교의 삼중주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요소는 설교의 틀을 짜는 일이다. 설교에서의 틀이란 여러 가지의 종류가 있다. 설교전개 방식에서 연역적, 귀납적, 또는 3대지 방식으로 설교의 방식이 틀로서 활용이 되어 진다. 그러나 요즘은 어떤 주제에 대한 포인트가 아닌 흐름과 움직임으로 설교의 틀이 진화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현대 설교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 현대인들은 모든 정보를 예전에 비해서 나누어지고 간추려진 핵심정보만을 원하지 않는다. 결론만을 원하는 그런 정보가 아니라 전체의 흐름이나 감동이 적절히 포함되어있는 정보들이 환영받는다. 그러기에 그러한 정보들을 습득하고 익숙해진 현대의 청중들에게 포인트를 강조하는 학습의 설교보다는 흐름과 움직임으로 설교의 틀을 완성해 나가는 것은 우리들이 새롭게 연구하고 도전해 볼만한 장르임을 저자는 강조해준다. 아무런 스토리도 짜임도 없이 무조건 적인 하달 식의 명령형과 지시어들은 감동도 없는 설교를 이미 예견하게 만드는 것이다. 특별히 설교의 틀을 구성하는데 몇 가지의 단계를 통하여 설교의 흐름을 완성한다. 먼로나 세스고딘의 단계구성 법보다 저자의 6단계 구성법은 매우 유용하고 효과적인 설교흐름 구성법이다. 6단계 구성법 중에서 특별히 관심을 가지는 단계는 주의를 끄는 단계이다. 아무런 준비 없이 본문으로 달려드는 용감한 설교자들에게 저자는 청중들에게 주의를 끄는 단계로 대답하고 기발한 표현이나 유머 위트 놀라운 사실 등 청중의 반응을 유도하기 위한 수사적 질문 등을 제시한다. 우리들의 설교는 나 자신에게도 매우 용감한 아무런 준비 없이 청중의 관심을 얻기에 실패한 모습으로 설교의 시작을 시도 할 때가 있다. 들을 준비가 되지 않는 청중들과 아무리 잘 들을 준비가 되어있는 청중들에게 조차도 이미 알고 있는 성경의 본문의 소개와 전개는 지루함과 따분함 그리고 다른 생각을 하게 하는 실수를 범하게 하는 설교자가 되는 것은 우리들의 현실인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는 설교자들도 있으며 어떤 말씀의 전달이든 잘 받아들이는 청중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노력을 기울이고 주의를 끄는 시도를 첫 단계에서부터 시작 된다면 이미 설교는 성공적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영화의 시작 3분이 성패를 좌우하는 것처럼 설교의 30초의 시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많은 학자들은 주장하기도 한다. 또한 저자의 6단계 중에서 행동으로 이끄는 단계는 마지막 단계로 문제의 해결과 청중을 감동시키는 결론으로 이끄는 단계이다. 마지막 결론이 참 감동적이다로 끝나는 것이 아닌 문제의 해결과 행동으로 이끄는 작업이야말로 설교의 열매를 맺게 하는 가장 중요한 단계이다. 행동 없는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설교를 듣고 행동의 변화가 없다면 그곳은 공동묘지와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도전이 되고 바로 시행해야 하는 결단하는 그리스도인의 촉구를 결론에서 마쳐야 함을 가르쳐 준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의 삼중주는 전달의 부분이다. 전달의 영향력이 교회의 교인들의 숫자와 일치하는 통계를 소개하는 저자의 글은 충격적인 통계이다. 특별히 자연스런 대화형 설교자의 영향력은 3000명 이상의 대형교회 목회자들에게 나타나는 설교의 패턴이다. 내용도 좋고 프레임도 좋지만 전달의 아쉬움으로 더 큰 부흥의 역사를 놓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다면 전달의 중요성 중에서 저자는 몇 가지의 전달 기법을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다. 그런데 그중에서 나에게 도전이 되고 깊은 깨달음을 주는 기법이 있다. 그것은 궁금 유발형 지연기법이다. 처음부터 설교초반에 모든 것을 알게 되고 결론이 이루어진 설교시간은 설교의 기대감은 낮을 것이다. 그러나 궁금함을 유발하고 결론과 기대하는 내용들을 지연시킴으로 마지막까지 설교의 긴장도의 주도권을 설교자가 가지고 가는 것이 그 어떤 부분 보다 중요한 전달기법으로 생각이 된다. 이것이 귀납적 설교의 진수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연역적 설교는 혼자서 모든 것을 책임지는 외로운 건축가라면 귀납의 설교자는 함께 아름다운 설교의 마을을 탐방하고 느끼고 안내하는 안내자가 되는 것이다. 안내자가 단순히 정보만 주입하는 맥 빠진 발걸음 보다 호기심과 궁금증 그리고 기억에서 잊혀 지지 않고 삶의 변화까지도 이끌어 낸다면 함께 동해 하시고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강력한 도우심은 더욱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바울과 실라가 하나님을 찬미하고 죄수들이 듣는 긴 문자의 언어가 아니어도 그들이 왜 찬송하고 왜 기도하는가에 대한 영적인 궁금증이 메말라 있는 이시대의 사역에 큰 도움이 되는 지침이 될 것이다.
세 부분의 전개로 친절하게 설교에 거룩한 열정을 가진 목회자들에게 매주 강단에 서야하는 설교자들에게 귀한 안내자로 이 책은 다가온다. 아는 목사님은 이 책을 가지고 한동안 많은 목회자들에게 자랑 하고 선전하는 모습을 보며 설교의 삼중주가 한국 강단에 더 크게 쓰임 받고 기름지고 복된 강단이 되기를 소원해본다. 흔하지 않는 설교자를 위한 베스트셀러임은 확실하다. 귀한 가르침으로 매주 마다 설교의 모든 것을 주신 교수님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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