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전쟁 잔혹사 학벌과 밥줄을 건 한판 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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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입시전쟁 잔혹사 학벌과 밥줄을 건 한판 승부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입시전쟁 잔혹사
-학벌과 밥줄을 건 한판 승부’를 읽고
눈길을 끄는 여러 책이 있었지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책이 바로 ‘입시전쟁 잔혹사’였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잔혹한 입시전쟁을 겪지 않은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누구든지 살아가면서 수 만 가지 기억을 안고 있지만 결코 잊지 못할, 그다지 기분 좋지만은 않은 추억이 대입이지 않을까 싶다. 쉴 틈 없이 이야기해도 그칠 줄 모르는 입시 이야기를 다룬 책이라니 나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이 책은 조선시대부터의 우리나라 입시교육 연대기를 보여주는 내용으로 저자의 생각을 알 수 있는 부분보다는 입시전쟁의 역사, 이미 알고 있던 내용에 대한 공감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시대별 대표적인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고, 나의 경험에 비추어 저자가 생각하는 대안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대학이 변해야 한다
저자는 입시전쟁이 분명 한국사회에 긍정적으로 미친 영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는 부정적인 측면에만 주목하였다. 입시전쟁을 해결하기 위해 입시제도의 변화와 같은 제도적 방안은 소용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만이 가지고 있는 문화, 구조 등을 쉽게 절대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가 주장하는 것이 대학, 즉, SKY라 불리는 이들 대학부터 변해야 입시전쟁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책을 읽기 전까지 왜 입시 제도를 저렇게 밖에 할 수 없는 것인가, 사교육을 줄이고 공교육을 살릴 방안이 그렇게도 없는가, 입시전쟁에서 피 보지 않고 누구나 다 만족할 수 있는 제도는 절대 존재할 수 없는 것인가 등 오로지 제도 탓, 제도를 만드는 윗사람 탓만 했다. 대학이 해결방안이 될 수 있다고는 생각지 못했다.
저자는 일단 서울대 1극 체제, SKY 3극 체제가 우리나라 입시전쟁의 문제임을 지적하였다. 여러 통계 자료에서 알 수 있듯이 SKY 출신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3극 체제를 다수로 늘려나가야 한다는 주장은 현실성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또한 저자가 말하고 있는 해결방안은 SKY의 소수정예주의이다. 우리나라 기득권층 자리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SKY대학 출신들...대학 인원을 소수로 줄이자는 것이다. 이 말을 듣자마자 떠오르는 생각은 ‘오히려 더 바늘구멍에 들어가려고 치열한 입시전쟁과 사교육 문제가 발생할 텐데 어째서 이것이 대안이 될 수 있는가’였다. 도무지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었으나, 저자가 말하듯 어차피 기존 체제에서도 서울대에 갈 실력이 안 되면 연고대에 가고 있으며, 연고대에 못 가면 다음 순위의 대학을 가고 있기 때문에 즉, 모두 오직 SKY대학에만 목매달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에는 동의하는 바이다.
입시전쟁의 시작은 언제부터였을까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의 입시전쟁 연대기를 살펴보며 시대별 특징적인 부분을 간단히 알아보고자 한다. 시대별 구분은 개인적으로 편의상 조선시대, 일제강점기, 해방정국과 부모님 세대의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그리고 나의 세대였던 1990년대부터 2009년도까지 세 부분으로 구분하였다.
조선시대, 일제강점기, 해방정국
족집게 과외와 치맛바람의 기원은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시대에 공식적 권위를 가지지 못했던 여성의 권력은 자신의 아들을 ‘큰사람’으로 만들 때 권력을 가질 수 있었다. 아들을 출세시키는 것을 존재 근거로 삼는 자궁 가족의 구조는 우리나라의 특유의 구조로 2000년대 이후에도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설립된 경성제국대학은 출세의 등용문이 되었으나, 이는 대학을 참된 학문공동체가 아니라 권력획득과 출세의 도구로 만들어버림으로써 대학교육을 왜곡하고 이후 한국사회에 학벌주의의 씨앗을 뿌린 것이다. 그러면서 엘리트주의를 양상 시켰다. 보통학교의 입시 경쟁은 점점 치열해졌고 여학생은 시집을 잘 가기 위해서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교육은 오직 생존과 성공을 위함이었다. 해방정국의 상황을 살펴보면, 해방 전 고급 일자리는 일본인들의 몫이었지만 이후 해방이 되자 조선인의 몫이 되었다. 그런데 이 때 무슨 기준으로 그 자리에 앉힐 것인가에 대한 답은 무조건 학력과 학벌 위주의 결정이었다. 교육이 출세의 지름길임을 확실하게 보여주게 된 것이다. 이로써 출세가 보장되는 서울대는 계층 이동을 하기 위한 유력한 수단이 되었다.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전쟁 이후 오직 일류 대학 졸업자만이 쉽게 정부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어린이들의 장래는 초, 중, 고등학교의 질과 평판에 따라 달라지게 되었다. 때문에 일류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시골에서는 소, 가옥, 농토까지 팔아 아들을 대학에 보냈다. 이때부터 장남의 교육을 위한 가족의 희생이 시작되었고, 1960년대 중반에는 가정교사제가 활발하게 성행하였다. 부모님의 말씀만 들어봐도 이러한 시대적 특징을 알 수 있었다. 지극히 평범한 집안에서 아버지는 5남매 중 외아들이셨는데 아들이라는 이유 하나로 경제적 지원을 혼자 받아 대학교에 진학하셨다. 고모들의 양보, 장남 우선이 당연시 되었던 것이다. 반면, 지방 도시에서 풍족하게 자라신 어머니는 가정교사와 공부방에서 공부를 하며 아들, 딸 차별 없이 대학교에 진학하실 수 있었다. 가정경제사정에 따라 대학 진학 선택여부가 결정되던 시대였다. 1970년 대 ‘충효사상’을 교육하라는 정책은 국가가 가족 중심의 학력, 학벌주의를 부추긴 것과 다름없었다. ‘충효교육’의 메시지는 정치, 사회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충’이요, 열심히 공부해서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효’였다. 1970년 대 후반부터 시행된 고교평준화 조치가 일류 학교교육 외면과 과외 열기 심화를 초래하는 부작용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1980년대 초에는 과외폐지 조치를 취하였으나 불법과외가 성행하자 이후 방학 중 학원 수강을 허용하였다. 이로써 본격적으로 입시학원, 과외 복덕방이 호황을 누리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