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간축객서가 과연 현재에서도 통할 수 있을까
간축객서諫逐客書는 이사(李斯)의 문장으로 그가 당시 진(秦)왕에게 올린 상소문이다. 진(秦)나라 왕은 초(楚)나라 출신이었던 이사의 능력을 높게 평가해 그를 외국출신 대신(大臣)인 객경(客卿)으로 삼았는데, 마침 한(韓)나라에서 온 정국이 진의 힘을 소진시키고자 운하 사업을 추진하다 발칵 되었다. 그 후 진시황은 타국 출신 관료들을 모두 추방하라는 ‘축객령’을 반포하게 된다. 이에 진시황은 외국 출신의 관리들을 조사하였는데, 이사도 여기에 포함되었다. 그러자 이사는 떠나는 길에 추방의 부당함에 대해 간축객서를 왕에게 올렸다. 이사는 간축객서에 외국 출신의 인재를 등용한 예의 장점과 그들을 중용하지 않고 추방시켰을 때 초래될 수 있는 일들, 또 외국문물을 즐기는 왕의 모순된 모습을 꼬집으면서 논리 정연하게 서술하였다. 추방 되는 상황에서도 침착한 문체의 글 때문에 처음 배경지식 없이 간축객서를 읽었을 때 그 또한 외국 출신인줄은 몰랐었다. 하지만 배경 지식을 알고서 그가 구구절절 늘어 놓은 예들이며 왕에게 하는 충고들을 다시 읽어보니, 이 글을 쓸 때에는 얼마나 애가 타고 절실했지 생각하니 왠지 웃음이 난다. 이사가자신의 감정을 논리 정연한 문장 속에 숨겨놓았기 때문에 진왕이 그가 당당히 옳은 말을 하는 모습에 마음을 움직이게 된 것이 아니었을까?
이사의 문장에는 불필요한 설명이 없어 깔끔하게 딱 맞아떨어지는 느껴지는데, 원문을 보아도 그런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또한 간축객서에서 가장 유명한 문장인 “泰山不讓土壤 故能成其大 河海不擇細流 故能就其深”은 태산은 흙을 양보하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커질 수 있었고, 황하와 바다는 가는 물줄기도 가리지 않고 받아들였기 때문에 물이 깊어질 수 있는 것으로 해석되며, 누가 읽더라도 고개를 끄덕일 만큼 그 비유가 쉽고 적절하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렇게 짧은 문장 안에 담아낼 수 있는 그의 내공이 결국 훗날 이사가 진(秦)의 승상자리에 올라갈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今陛下致昆山之玉 - 然則是所重者 在乎色樂珠玉 而所輕者 在乎人民也”이었다. 이 부분에서 이사는 외국의 화려한 물건들을 들여오게 하고 그것들을 애용하고, 조나라와 위나라의 여자들을 후궁으로 들여놓고, 정나라 위나라의 음악은 즐기면서 외국 출신 관리들을 추방하려는 왕의 모순된 모습에, 왕께서 중히 여기는 것은 여색과 음악과 구슬과 옥 같은 것들이고, 가벼이 여기는 것은 사람들이냐며 직설적으로 왕에게 충고하고 있다. 이 구절들이 흥미로웠던 이유는 물론 이사가 왕의 행동을 거의 비꼬다 싶이 충고하는 그의 용기 있는 모습에 놀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의 상소문을 읽고 이사에게 설득되어 마음을 바꾼 진(秦)왕 영정(政)의 모습에 있기도 하다. 평소 진시황에 대해 자신의 하고자 하는 바를 절대 굽히지 않고, 엄격하며, 잔인하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도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배웠었다. 하지만 옳은 말만 하는 이사의 충고에 귀 기울여 들을 줄 알고 자신의 결정이 섣부른 것임을 인정하고 ‘축객령’을 취하한 진시황의 모습이 굉장히 새롭게 다가왔다. 그의 성격대로라면 이사의 직설적인 문장에 분해 진나라를 떠나던 이사를 불러다 처형시켰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러나 진시황의 새로운 모습이 그의 이미지마저 바꿔놓았다. 또 한편으로는 잔인한 왕이지만 신하인 자신의 말을 들어줄 줄 아는 군주를 둔 이사가 부러웠다. 요즘 우리나라는 관리 한 사람이 아니라 온 국민들이 모여 촛불시위를 하고, 데모를 하며 수 차례 정책의 부당함을 몸으로 토로하고 있는데도 정작 권력 있는 자들은 눈을 감고 귀를 닫고 못 본체, 못 들은 체 하니, 그들에게 간축객서와 같은 글을 써준 들 뜨끔하기나 할까. 어쩌면 시간이 흐를수록 인간의 덕이란 퇴화되고 있다고 생각하니 씁쓸함만이 남는다.
이미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는 이미 세계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원치 않든 원하든 많은 외국 기업들과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서 일하고 있고, 많은 한국인들도 해외로 나가 우리나라를 선양하고 있다. 문제는 너무 외국 것을 쫓으려는 것에 있다. 외국, 특히 서양의 문물이라면 무조건 좋은 것으로 여기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상한 심리는 어디서부터 시작 된 것일까? 최근 뉴스를 보면 여러 정책들을 보면 대부분 유럽 국가에서 먼저 시행했었던 것이나 시행하고 있는 것들이 많다. 하지만 대부분이 대한민국 안에서는 당장 시행하기 어려워 현실성이 없는 방안이거나 이미 열강 대륙에서 실패를 맛본 것들이다. 그를 두고 해외의 전문가들도 우리나라를 두고 충고하는 연설을 하거나 실패를 겪은 정책을 왜 하려 하는지 모르겠다며 비꼬는 것도 보았다. 최근 예로는 이미 행정부처 분리를 실시하고 있는 독일 총리가 며칠 전 우리나라 총리에게 진실을 말하자면 행정부처 분리는 좋은 방법이 아니라며 충고하는 것을 보았는데, 뉴스를 보는 국민입장에서는 ‘그런 것도 확실히 조사하지 않고 무슨 일을 하려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겠다는 목적으로 앞으로 특정 지역을 자동차로 통과하려면 요금을 내야 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방안은 이미 영국에서 시행되고 있는 것이었는데, 이 때문에 많은 영국사람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전기자동차를 이용하여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아직 전기 자동차가 배급되지도 못하였으며 길거리에 자동차 전기 충전을 할 수 있는 시설도 설치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방안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예산이 투입될 것이다.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귀담아 듣지 않고 외국의 것을 따라 하려는 국가의 모습이 참 안타깝다. 이런 현재의 상황에서 간축객서는 어울리지 않는 글인 것 같다. 오히려 나는 간축객서와는 반대되는 말을 하고 싶다. 우리나라 국민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나라 안의 인재들이 서로 화합하지 못하고 다툼만을 일삼는데, 외국의 것을 들여온들 무엇이 달라지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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