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_ 기재기이 _ 인연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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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서평 - 기재기이 - 인연을 위하여
하나의 글을 시작하는 것은 언제나 두려움이 먼저 앞선다. 내가 과연 쓰고 있는 것이 형식에 맞는 것일까 따위를 고민하는 것이다. 과거 써본적이 있긴 하지만 글의 서두를 떼면서 느껴지는 그 아득함이란. 그래서 이렇게 얼토당토않은 말로 나의 답답함의 빗장을 조금 열어본다. 내가 과연 읽었던 소설들 중에서 어떤 걸 택해야 그런 대로 문체나마 흉내낼 수 있을까, 따위를 고민하며 멍청하게 있는 동안 매정한 날짜는 날 기다려주지 않고 훌떡 날아가 버렸다. 그런 시간에 야속함을 표하며 눈을 흘기다가 집에 있는 거 하나 뽑아서 쓰자, 라고 정말이지 막연하게 생각해 버렸다. 그래서 지금 내가 들고 있는 소설은 ‘기재기이’. 상당히 얇은 분량이라 당연히 내 눈길을 끌며 자신을 선택하라고 교태롭게 유혹하고 있어서 기꺼이 선택한 이 책은, 하지만 얕보며 시작하려는 내 손길을 부들부들 떨리게 하고, 나의 게으름과 재주 없음에 한숨을 보내게 만들고 있다.
‘기재기이’에 속해있는 이야기들은 ‘꿈’과 ‘친구’와 ‘기이한 인연’ 그리고 ‘만남’ 등을 소재들로 우의적으로 현실 속의 사회상을 비판하고 있다. 죽어라고 읽었던 소설이라 작품 내용이야 알고 있지만 단순한 ‘안다’ 와 내용을 ‘이해’한다는 것은 상당히 다른 의미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마치 아름다움을 ‘인식한다’ 와 아름다움에 ‘끌린다’는 것이 다르듯이 말이다.
‘안빙목유록’ 에서 안빙은 꿈속에서 꽃의 나라를 유람하고 돌아왔다고 했다. 거참, 그렇게 소소한 내용까지도 다 기억하고 있다니-놀랍구먼, 하고 입맛을 다시다 문득 그가 부러워졌다. 비록 그는 그 꿈이 요사스럽다 하여 다시는 그 정원에 발도 들이지 않을 것을 다짐했다고 하지만 말이다. 꿈이란 것은 수면 상태가 가장 깊이 들어갔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무슨 램 수면이라던가-하는 전문적인 용어를 써서 tv에서 설명했었지만 관심 있는 것이 아닌 이상 들으면 하루 이상을 기억하지 않는 나의 천부적 자질로 인하여 지금은 가물가물 흐려져 뿌옇게 변해버렸다. 아무튼 안빙이 꿈속에서 그토록 교태롭고 아리따운 꽃의 아가씨들을 만났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잠속에 푹 섞여있었는가를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거야말로 단잠-달콤한 잠이 아닐 수 없다. 잠은 인간이 누리는 가장 행복한 상태가 아닐까 한다. 물욕, 애욕, 시기심 따위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태초의 자신으로 돌아가 내일 따위는 염려에 두지 않는 마음의 평온상태 인 것이다.
잠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보면 어릴 적에 할머니의 품에 꼭 붙어서 취하던 몽롱한 따스함이 떠오른다. 날 쓰다듬어 주시던 세월의 어려움을 겪은 할머니의 거친 손, 그 손길에 적잖은 안심이 되어 한참을 잤더란다.
어떤 사람은 “짧은 수명에서 잠자는 시간을 빼면 훨씬 짧아질 것이다” 라고 말한다. 잠이 얼마나 흐뭇하고 달콤한 가를 염두에 두지 않은 말이다. 하지만 작년 나에게는 이 말은 거의 절대적인 진리를 가지고 다가왔다. 대학에 가야한다는 압박에 시달려 있던 나에게 잠이란 사치스런 안락함으로 여겨져 있어, 저 위대한 장군이자 황제인 나폴레옹처럼 하루에 3시간만을 자려고 노력했었다. 하지만 그런 몇 달의 결과는 상당히 처참한 나의 패배를 가져와 수업 시간을 비롯한 모든 시간에 혼자만의 몽환적인 환상의 세계에서 헤매어 결국은 이도 저도 아닌 한심스런 시간을 보내게 만들었다.
그 가혹한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잠을 희생하는 대가가 너무나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내가 왜 새삼스럽게 안빙의 깊은 수면을 이토록 부러워한 것일까. 그것은 이 소설을 읽을 무렵 내가 심각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기 까닭인가 한다. 한밤중에 어떤 소음도 없는 상태에서 시계의 째깍거림이 내 머릿속에 쾅쾅 울리며 꽉 감은 눈 속으로 자꾸만 오버랩 되는 내가 본 모든 공포 영화들의 괴기스런 장면들이란. 정말이지 사람이 왜 미치는가, 를 이해하게 만들고도 남음이 있게 만든다. 실재로 정신병이 있는 사람들에게 효과가 있는 요법 중에 하나는 잠을 자게 만드는 것이라 한다.
잠은 그날의 고뇌와 슬픔도 모두 스러져 버리게 하니 이 어찌 고마운 존재가 아니랴. 또한 간절한 소원은 꿈에 이루어지기도 한다. 갑갑한 현실 속에 억눌려 있던 나의 무의식이란 녀석이 그제야 활기를 치며 내가 원하던 것을 깜찍하게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꿈을 꾼 날은 하루종일 기분이 좋아 괜스레 싱글거리게 만드니 잠과 꿈은 한 쌍의 절묘한 묘약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모든 사물에는 그 나름의 영혼이 있고 감정이 있어 차가운 책상이라 하더라도 쓰는 사람이 아껴주고 공들여 청소해 주면 +파가 발산되면서 기쁨을 들어낸다고 언젠가 아침을 먹다가 라디오에서 들은 기억이 있다. 어이없는 웃음으로 넘겨버리고 말았지만 등교를 위해 내 방에 들어왔을 때 문득 내 방의 가구들이 안타까워지고 녀석들에게 미안해 졌다. 난지도 처럼 방에 늘어져 있는 옷가지들과 마구잡이로 흩어져 있는 책상 위의 물건들-그리고 세월의 무상함을 증명하듯, 혹은 나의 무심함을 반증하듯 흠집이 나있는 책상과 이미 삐걱거리기 시작하는 의자. 바닥에 닿을 듯이 쓸려 내려와 있는 이불들이 지금 괴롭다고 허걱거리며 날 향해 힘들다고 외치고 있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그리고 나와 그 정도로 살았으면 이젠 이런 거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됐을 거다, 라는 혼자만의 결론으로 방에서 빠져나와 버렸다.
그리곤 거의 잊혀져 가고 있던 그 ‘영혼’ 설을 한쪽 구석으로 마구 뭉개고 있던 귀퉁이에서 다시 끄집어 낸 것이 ‘서재야회록’이다. 요즘 유치원생도 잘 안보는, 예전 내가 읽었던 전래 동화를 아주 어렵게 써놓은 듯한 인상을 받았지만 아이고 이런, 내 가슴 모퉁이에 죄책감이란 바늘로 콕콕 쑤시며 다시 한번 내 방의 물건들을 살펴보게 만들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청소 좀 하고 살아라, 정신 사납지도 않나’-는 엄마의 귀 따가운 잔소리들을 이제는 익숙해진 고개 끄덕이며 한쪽 귀로 흘려버려 기억 속에 남기지도 않기의 절묘한 테크닉을 구사하며 살아온 지난날의 잔재가 내 방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정말로 사물에 감정이 있다면 난 ‘서재야회록’의 선비가 들은 문방사우의 한탄 어린 목소리보다 몇 배는 더 간절한 혹은 살벌한 음성에 몸을 떨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완벽한 청결을 신경쓰는 유일한 물품인 책을 제외한다면 나머지들은 으음, 내게 살의를 품고 있을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