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카프카
F. Kafka
카프카는 읽기 힘들다. 하지만 카프카의 의식 과정을 차근차근 읽어가다 보면 나름대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저희 조는 토론이라는 과정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하나로 모으기보다는 개개인이 카프카를 어떻게 읽을까라는 방법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여러 사람의 글을 모아 놓은 수준이기에 읽기에는 불편하시겠지만 하나의 책을 보는 대학생 나름의 다양한 눈과 ‘카프카 읽기 방법’의 변화 과정을 살펴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위의 카페는 저희가 나름대로 글을 올리던 공간입니다.
저희의 토론은 기존의 소설을 다루던 방식대로 ‘심판’에 왜라는 의문을 달았습니다. ‘카프카가 그려낸 이 시스템의 본질은 무엇일까?’, ‘생소한 세계를 강요받은 개인의 극복 방법은 없는 것인가?’, ‘이렇게 복잡하다면 빠져나갈 출구는 가능할까?’, ‘요제프 K가 끝끝내 취하하지 못한 선고 그 자체의 의미는 무엇일까?’ 등등 우리의 의문은 일상적인 우리의 사고를 바탕으로 카프카를 이해하는데 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과정은 자신이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 하에서 나름대로의 답을 찾는데 지나지 않았다. 우리는 기독교적 원죄, 실존적 인간, 요제프K와 관련된 수많은 여자들 등을 통해 해답에 다가서려 했지만 ‘심판’은 카프카의 여느 작품과 같이 해석이 불가능했다. 그리고 잡으려고 하면 더 멀리 달아나는 카프카에 절망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잃어버린 편지’를 보는 라깡의 과정을 여기에 적용해 보기로 했다. ‘잃어버린 편지’에서 우리의 입장이 경찰국장 G의 입장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기 방식대로 편지를 찾으려는 그에게서 우리도 그와 같은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우리는 뒤팡이 장관의 입장에서 생각한 거와 같이 우리 또한 카프카의 입장에서 작품을 이해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 요제프K의 모습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왜 태어났는지, 왜 이런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지, 그리고 죽어서 어디로 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런 고민 없이 살아간다. 이는 아무 이유 없이 선고를 받은 요제프의 입장과 유사하다. 그렇다면 카프카가 그려낸 소설 속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이 되는 것이다. 요제프K의 이유 없는 선고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서로의 글을 종합해 본다.
1.요제프 K는 왜 끝끝내 소송을 취하할 수 없는가
대답은 역시 간단하다. 소송을 취할 수 없는 상태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의 언어가 영어이고 다른 언어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일본어라는 것 자체가 알 수 없는 영역이다. 요제프 K 또한 마찬가지이다. 알 수 없기에 소송을 취할 수 없다.
카프카의 여러 작품을 접하다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유 없이 무언가를 당하게 되고 그리고 당하게 되는 당사자는 결국에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 ‘ 요제프 K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어떠한 이유 없이 선고를 받는다. 하지만 그가 재판 뒤에 숨어있는 존재에 대해서는 결코 알 수 없다. 그가 알 수 있는 부분은 단지 재판장과 주변의 인물에 불과하다. 어떠한 문제가 던져지고 우리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문제가 던져진 당사자에게 물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당사자에게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다. 바로 인간의 근원적인 한계이다. 달리 표현하면, 우리 인간은 알 수 없는 존재이다. 필자가 왜 비트겐슈타인 전기 철학을 참고로 하였냐 하면, 그의 말대로 알 수 없는 영역에 대해서는 침묵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영역에 대해 침묵하자는 것이지 생각하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위의 내용과 같은 질문 ‘요제프 K는 왜 끝끝내 소송을 취할 수 없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라는 것이다. 이는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의 작업과도 유사하지만 차이점을 보인다. 하이데거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질문을 던진 반면에 카프카는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떤 곳일까라는 것에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세상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 ‘심판’이다.
2. 우리가 다른 소설을 읽어가며 메타포를 상식선에서 해석하고 내용(줄거리)에서 의미를 발견하기는 힘이 들 것이다. 체포라는 갑자기 던져진 극한 상황을 대처해 가는 인간상과 주변인물과의 관계 속에서 인간의 비참함, 혹은 필연적 연약함을 말하고자 함인가. 아니면 공권력 속에서 한사람의 인권이 유린됨을 비판하고자 함인가? 나는 삶의 국지적인 모습에서 감동 혹은 성찰을 갖는 데 초점을 맞추어 읽는데 지쳐, 체포와 선고를 세상에 던져져 살다가 죽는 인간의 삶의 총체적인 이해불능한 부조리에 대한 일침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우리는 아무 이유 없이 혹은 태어남에 대한 설명을 듣고 준비를 하지 못한 채 그냥 태어난다. 또한 우리는 한 존재의 탄생에 대해 왜? 라는 꼬투리를 달지 않는다. 만일 내가 어디서 왜 왔는지 그런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고 해도 물음에 대한 답은 우리의 삶 안에서는 해결될 수 없다. 즉 우리가 태어나면서 인생이 시작되듯이 요제프도 무슨 잘못한 일도 없는데 체포된 것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 전까지에 대한 설명은 당연히 없다. 그 후 우리는 성공, 사랑 등을 정의하고 가치를 부여하며 일정한 룰에 따라 산다. 만일 신-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관점-의 입장에서 보면 그건 재판과정 만큼이나 이해되지 않는 짜고 치는 고스톱 판의 하나일 뿐이다. 그들은 짜여졌지만-상정되었지만-정당하다거나 의미 있지 않는 -실체를 알 수 없는- 판 안에서 움직여 댄다. 누구는 고통 받고 누구는 그를 도와주고 누구는 그를 감시한다. 여전히 왜 각자가 그런 캐릭터를 맡아 무엇 때문에 그러는 지 는 알 수 없다. 그 안에서 논리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요제프는 상급재판소와 재판관을 찾다가 죽음을 맞는다. 치욕만이 남을 것 같은 삶,( 혹은 죽음) 대해 무기력한 욕을 한마디 하고는 그냥 존재는 사라지는 것이다. 우리는 재판과정을 통해 무엇을 얻어 가는가. 지루하게 진행되는 재판의 과정 결국 죽음의 선고를 받는 요제프와 대비되어 허무할 뿐이다.
태어나서 죽는 것 과정에서 우리는 던져진 채로 발버둥 처도 알 수 없고 의미 지워지지 않는 부조리한 고스톱 판에서 기계적으로 쳐 대지만 판은 언젠가 끝나게 마련이다. 우리는 판을 깔고 치울 수 없다. 이겼다고 해서 그 영광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심판을 읽고 느꼈을 씁쓰레한 느낌은 우리의 삶이 주는 느낌과 비슷하다. 카프카는 삶의 굴레를 심판이라는 하나의 에피소드로 비유해 아무 느낌과 생각도 없이 사는(살아지는)우리에게 삶과 마주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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