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주자의 생애.
3. 주자의 중심 사상 - 이기설.
1)리 - 리의 총화로서의 태극.
- 성즉리설.
2)기 - 기와 음양오행설.
3)리와 기의 관계.
4. 주체의 양상 - 심.
5. 수양론 - 존천리 멸인욕.
6. 학문의 방법 - 경과 격물치지(거경궁리).
7. 주자학이 주목받는 이유.
8. 오늘날 주자학의 위치.
朱子(1130-1200)란 존칭으로서, 원래 이름은 熹, 태어나서 성장한 곳은 福建城의 산간지대였다. 朱子는 어린 시절부터 『論語』,『孟子』에 의한 유가적 교육을 받았지만, 젊은 시절 호기심에서 노장․문학․시․병법 등 모든 분야에 흥미를 갖고 특히 禪에 심취했다. 19세에 과거에 합격하고 24세부터 4년간 主簿가 되어 많은 치적을 남겼다. 사상적으로는 이 무렵부터 李延平(1093-1163)의 가르침을 받았다. 34세 때 李延平도 죽고, 張南軒(1133-1180)과의 교우가 시작된다. 38세 때 호남 澤州에 家居하고 있던 南軒을 방문하여 그와 강론하고는 南軒의 설에 기울어졌다. 그러나 40세, 靜的․動的을 결합하여 그는 己發未發說을 이룩하고, 太克說도 골격을 완성하여, 朱子의 사유방법의 대강이 결정되었다. 46세 때 呂東萊(1137-1181)의 권유로 陸象山(1139-1192) 호 존재(存齋) ·상산(象山). 시호 문안(文安). 朱子가 정이천의 학통에 의한 도문학(道問學:問學第一)을 보다존중한 데 반하여, 상산은 정명도의 존덕성(尊德性:德性第一)을 존중하였기 때문에, 朱子는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성즉이설(性卽理說)을 제창하였고, 상산은 치지(致知)를 주로 한 심즉이설(心卽理說)을 제창하였다.
형제와 만나기도 했다. 47세 때 부인을 잃고 『詩經』을 탐독했고, 다음해에는 『詩集傳序』를 저술하였다. 朱子는 主簿 생활을 끝낸 뒤 약 20년 동안 관리를 우대하여 급여하는 사록만 받았을 뿐 전혀 현직에 나가지 않았다. 그는 집에 침잠하여 있는 동안 『詩集傳』,『四書集註․或問』,『太克通書解』,『資治通鑑綱目』을 저술하고,『延平答問』,『程氏遺書․外書』,『近思錄』등을 편집하였다. 50세 때 강서의 南康軍 知事에 부임하여 이곳에서 2년을 지내고, 浙江지방에서 救荒 사업에 약 1년간 종사하였다. 61세 때 福建 澤州의 지사를 약 1년간 지냈다. 조정에 出仕하여 侍講을 약 40일간 하였으나, 반대파의 책동으로 조정에서 추방당해 건양의 考亭에 돌아왔다. 이후 僞學의 금지에 의한 당국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여러 유생에게 학문을 강하다가 71세로 생을 마감했다.
진영첩 저, 『주자 강의』, 푸른역사, 2001년.
시마다 겐지 저, 김석근․이근우 옮김, 『朱子學과 陽明學』, 까치출판사, 1993.
최정묵 저, 『주자의 도덕철학』, 국학자료원, 2001.
金谷 治 외 저, 조성을 옮김, 『중국사상사』,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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