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 기봉이 를 보고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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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감상문 기봉이 를 보고나서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기봉이’를 보고나서
영화 ‘기봉이’를 보고나서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은 저번에 방문했던 행복 요양원에서의 일이었다. 저번 달에 특수교육학개론 시간 발표를 위해 ‘행복재활원/행복요양원’을 방문했었다. 행복요양원에 누워계시던 분들은 대부분 중증질환을 가지신 분들이셨다. 정서발달이나 신체발달 부분이 일반인에 비해 현저히 차이가 났었고 혼자서 일상생활을 하시기에는 어려운 분들이 대다수 셨다. 재활원에서 머무르시는 분들은 학교로 통학이 가능하거나 교육이 가능하기 때문에 낮에는 일상생활을 한 후 오후나 저녁에 식사를 하고 거주하셨던 반면 요양원의 분들은 하루종일 요양원에 거주하셨다. 우리가 요양원 방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악을 지르면서 반겨주셨었다. 처음엔 악지르는 소리에 깜짝 놀랐지만 기쁜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리라 생각하고 다가가서 인사를 하고 같이 책 읽는 것부터 시작했다. 낯선 사람인 나를 반가워해주는 분들도 계셨고 날 경계하듯 피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중에서 기억이 나는 분 한분이 계시는데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보이는 언니분이었다. 보조교사인지 봉사하러 오시는 할머니인지 모르겠지만 그 분께 여쭤보니 30대인거 같은데 자세한 것은 자신도 모르겠다고 하셨고 언니의 이름이 ‘숙희’라는 것만 알려주셨다. ‘숙희’언니는 정상적으로 의사소통은 불가능했고 내가 묻는 “언니 이름이 뭐에요?”나 “언니 책 읽을까요?” 같은 간단한 질문에도 대답할 능력도 없었다. 그래도 언니 옆에 앉아서 책을 읽어주고 뽀로로가 타고있는 장난감 인형자동차를 가지고 놀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와중 간식 시간이 되어서 간식인 요플레를 떠먹여 줄 시간이 됐었다. “숙희언니~ 요플레 먹어요.” 라는 내 질문에도 언니의 표정 변화는 없었다. 웃는 건지 무표정인지 모를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언니를 베개에 눕힌 후에 말했다. “언니 아~ 요플레 아~” 그 말은 알아 들으셨는지 입을 크게 벌리셨다. 그리고 맛있게 드시고 요플레 삼키고 입을 아 벌리고 요플레 삼키고 아 벌리고를 반복했다. 아직 어린 아기를 돌보는 기분에 언니가 귀여워보였다. 그러다가 “언니 이제 이거 마지막이에요. 마지막 숟가락 아~” 하는 순간 옆에서 숙희언니의 이름을 알려준 할머니가 혼잣말을 하셨다.
“마지막이 뭔지 알기나 하겠니, 쯧.”
난 그 말을 듣는 순간 굉장히 멍했다. 순간 할머니가 괜히 야속하게 느껴졌지만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다. 이 분들은 오늘이 몇 월인지 몇 일인지 몇 요일인지, 자기가 몇 살인지와 같은 것도 잘 모르시는 것 같아보였다. 앞으로의 미래를 걱정하기보단 기분이 좋으면 웃고 소리치고 박수치고 싫으면 악을 지르며 순간순간 느낌대로 살아가시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개념들이나 생각들과는 다른 차원의 세계에 살아가는 분들인가 싶어서 깜짝놀랐다. 내가 본 영화의 주인공인 기봉이도 마찬가지이다. 이 세계에 함께 살아가지만 나와는 다른 사고와 다른 관점에서 살아가는 인물 같았다. 한 가지 일이 생길 때, 다른 모든 것을 복잡하게 이것저것 재면서 결정을 내리는게 아니라 오히려 단순하게 더 고민 없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도 같고 사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과 변화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고 살아가는 것 같았다.
요즘은 시장의 변화도 빠르고 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범죄가 일어나거나 비리 같은 좋지 않은 사건사고도 많고 너무 착하게 정도만 걷다가는 바보취급을 받는 사회가 돼버렸다. 물론 나는 고작해야 인생을 이십 몇 년 살았지만, 최근 사람을 쉽게 믿으면 안되겠다고 느끼게 한 경험이 있었다. 이번년도 9월에 고등학교 때 친구가 1년 반 만에 만나자는 연락이 왔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 소개를 통해 여러 멘토링 프로그램이나 토크콘서트에 다녀오게 되었었는데 간만에 연락이 된 친구가 너무 반가워 나는 다른 것을 생각할 여지도 없었고 그때까지 친구를 불신한다는 것에 대한 개념은 잘 느끼지 못했었다. 나는 9월부터 시작해서 두 달 동안 친구가 추천해주는 어느 프로그램을 친구와 함께 교육 받았었는데 알고보니 그 교육은 정상적인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나에게 오랜만에 연락 온 친구가 어느 잘못된 단체에 빠져 일반 사람들을 그쪽 단체로 유인하는 일을 맡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나를 유인하기 위해 친구는 4명의 다른 사람까지 동원해 마치 우연인 것처럼 상황을 가장했었고, 친구가 나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상황이 막 드러났을 당시에도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태연했다. 나는 그런 모습의 친구가 너무 무서웠다. 친구였는데 이렇게까지 거짓말을 해야 했는지에 대한 배신감도 들고 그렇게 변해버린 친구가 안타깝기도 하고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었다. 그리고 몇일 동안은 친구도 못 믿을 사회라는 생각이 들어 충격에서 한동안 벗어나질 못 했었다.
그런 것들을 생각해 볼 때 오히려 기봉이라던지 내가 요양원에서 만난 분들은 조금 정서나 신체적으로는 장애를 가지신 분들이지만 오히려 더 솔직하고 진실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데 신이 인간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했을 때는 그 개인, 개인에게 해야 할 임무나 일이 있을 거라 믿는다. 전에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봤을 때 ‘ 왜 이런 각박한 세상에 하필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게 하셨을까? 무슨 계획으로 그렇게 하셨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었지만 영화 기봉이를 보고 또 봉사를 다녀온 뒤에 생각을 많이 해보게 되었는데, 난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정서나 신체적 발달이 일반적인 우리가 그런 분들에게 좀 가서 배우라고 세상에 존재하게 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진심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솔직함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친구마저도 믿을 수가 없다는 사실은 정말 충격 그 자체였고 난 당황스러웠고 사회가 왜 이렇게 각박해졌나 하고 느꼈었다. 이 사람과 저 사람과 계산적인 인간관계, 이것저것 따지고 재는 인간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영화 속 기봉이처럼 현재의 행동이 가져올 이익을 생각하기 보다 순간순간을 생각하는 순수한 마음이 있으면 좋겠고 솔직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좀 더 믿을 수 있는 진실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