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첫사랑을 찾아가는 지난한 여정 냉정과 열정 사이
읽는 내내 사랑이란 이토록 출구를 찾기 어려운 것인가에 대한 자문을 계속 했던 것 같다. 섬세하지만 느리게 표현된 언어의 결들을 조급한 마음으로 따라가려니 조금은 답답하기도 했다. 엄청난 반전도 뚜렷한 클라이맥스도 없어 푹 가라앉은 마음으로 읽게 되는 소설. 읽으면서 재미있던 것은 막연하게 아오이와 쥰세이를 응원하며 읽었던 어린 날의 내가 어느새 이십대 중반이 되었다는 것 그리고 쥰세이가 밀라노로 향하지 않았더라면 좀 더 짙은 여운이 남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뻔한, 통속적 스토리
이 소설에서 에쿠니 가오리의 섬세한 묘사나 츠지 히토나리의 이야기에 가지를 치는 힘을 들어내고 나면 남는 것은 일본인이지만 밀라노에서 자란 여자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자란 남자의 첫사랑 성취에 대한 이야기이다.
죽도록 사랑했던 두 사람에게 닥친 시련이란 임신과 중절을 둘러싼 사소한 오해이고 그들 사랑을 잇는 매개는 대학 동문 다케시다.
임신과 그 과정에 아버지라는 권력자의 개입 그리고 중절이라는 과정은 어쨌든 대단히 통속적인 소재일 수밖에 없다. 또한 사랑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다케시라는 인물 역시 우연히 여행을 하면서 두 사람에게 서로의 소식을 전해줄 뿐 소설에 힘을 보태는 입체적 인물은 아니다. 실제로 이 같은 소재는 드라마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이 소설은 일반문학 혹은 본격문학이라고 하는 장르의 총칭에 이르는 순수문학보다는 연애소설과 같은 장르문학에 치우쳐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여타의 일반소설보다 인기를 끌었던 것은 실제로 남녀 작가가 각자 맡아서 쓴 만큼 이별과 그 후의 일상을 대하는 남녀의 미묘한 차이를 잘 드러났다는 점, 어떤 사랑도 상대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전제로 하지는 않는다는, 사랑의 기본 속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 등의 이유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이유 - 신파를 절제하는 건조한 서술, 묘사와 공간 설정
사실 나는 읽는 내내 지루함에 몸서리를 쳤지만 이 소설은 국내에 잘 알려져 있는 만큼 인기를 끌었던 소설이다. 앞서 밝힌 것처럼 스토리는 단순하고 또 통속적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흔히 신파의 한 부분처럼 과장되게 울음을 쥐어짜지 않는다. 통속적 스토리가 주된 갈등의 원인이지만 온전히 알맹이를 내보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숨어서 살짝살짝만 그 실체를 보여준다.
두 주인공 사이에 10년이라는 세월을 설정하고 그 시간의 여백을 한껏 활용해 이별의 슬픔을 어느 정도는 덤덤한, 견뎌낼 수 있는 것으로 치환해 보여주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 시간의 틈에서 독자들은 단순히 쥰세이와 아오이의 사랑에 대한 추측이나 평가를 내리고 마는 것이 아니라 기억 저편에 묻어둔 첫사랑에 대한 추억들, 그리고 지나온 세월동안 스스로 ‘사랑’이란 이름에 정의 내린 것들을 되새겨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 같은 서술은 두 작가의 섬세한 묘사와 만나 더욱 빛을 발한다. 내가 여자이기 때문인지 개인적으로는 에쿠니 가오리의 붉은 책이 더 마음에 와 닿았는데 그 말은 즉 이별 후 10년을 겪어내는 남과여의 생활을 각자 섬세한 묘사로 드러냈다는 것이 될 것이다. 이를테면 아오이는 쥰세이와의 이별 후 현실을 살아가는 일에 너무나 무기력하지만 쥰세이는 오히려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해내는 점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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