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제3장 낭만주의
제3장 낭만주의를 읽으면서 다비드라는 예술가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 같았다. 하우저는 다비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다비드(1748~1825)는 자기 시대의 예술 정책에서 유례없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는 국민의회의 일원으로서 그런 면에서도 이미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모든 예술적 문제들에 관한 혁명정부의 상담역이자 대변자이기도 하였다. 그 브룅 이래의 어떠한 예술가도 그처럼 광범위한 영향력을 갖지는 못했는데, 그러나 다비드의 개인적 명망을 정도로 큰 것이었다. 그는 단지 혁명시대의 예술의 독재자요 일체의 예술선전, 모든 큼직한 경축행사의 개최, 아카데미가 행사하는 모든 기능, 일체의 전람회와 미술관 등을 관장하는 권위일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예술적 혁명의 장본인이요 근대미술의 어느 의미에서는 그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이른바 ‘다비드 혁명’의 창시자인 것이다. 그는 또한 그 명성과 규모 및 지속성에 있어 미술사상 거의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유파의 창시자이이기도 하다.
당대의 거의 모든 재능있는 젊은 미술가들은 이 유파에 속해 있었다. 그들은 그 우두머리 격인 다비드가 겪어야 했던 온갖 역경, 예컨대 도망과 추방 및 창조력의 저하에도 불구하고 7월 혁명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화단의 가장 중요한 유파였을 뿐만 아니라 프랑스 회화의 ‘유파’ 그 자체가 되어있었다.
그들은 실로 전 유럽적 고전주의 유파가 되었고, 미술계의 나폴레옹이라고 불린 창시자 다비드는 자기 분야에서는 세계정복자에 비견될 수 있는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다비드가 낭만주의에 있어서 왜 중요한 것인가 그것은 다비드의 등장이후 로꼬꼬가 극복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다비드가 등장하기전 고전주의는 모티브만 고전주의적이고 표현 방식만 고대풍을 띠었을 뿐, 순전히 로꼬꼬 적이었지만 그의 작품인 ‘호라띠우스 형제의 선서’는 미술사상 최대의 성공을 거둔 작품의 하나이다 라고 하우저는 말한다.
보헤미안의 발생이라는 것이 나오는데 보헤미안이라는 용어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보헤미안이란 체코의 보헤미아 지방에 유랑민족인 집시가 많이 살고 있었으므로, 15세기경 프랑스인은 집시를 보헤미안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사회의 관습에 구애되지 않는 방랑자,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는 예술가 ·문학가 ·배우 ·지식인들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고, 또한 이 말은 집시처럼 방랑하는 방랑자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보헤미안의 발생에 대해 하우저는 아래와 같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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